[전병규 칼럼] 6.25전쟁의 숨은 영웅, 지게부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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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굽히고 앞만 보고 걸어라!” 6.25전쟁 때, 군번도 없이 총도 없이 지게로 40kg 포탄을 포화속에서 나르며 전선을 누빈 지게부대원의 수칙이다.

당시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된 지게부대원은 사망 2064명, 실종 2448명, 부상 4282명이었다. 특히, 1950년 8월, 대한민국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 전투(8.3∼8.29)에서 하루 평균 50여 명이 전사했다.

전장에 아들이 참여한 미8군사령관이자 유엔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은 “만약 지게부대가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의 미군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다”면서 이들의 활약을 극찬했다.

지게부대의 활동을 보면 진영 간 분열되고 불신이 만연한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는다. 지게부대원은 온몸으로 말해 주고 있다. “지게를 질 때 허리를 굽히듯이 겸손하게 서로 인정하고 화합하라.”

▲KBS 영상 갈무리

오는 7월 1일이면 선출직 공직자들이 취임한다. 선거 때와 달리 목이 뻣뻣해지려는 일부 공직자들은 지게에 쌀 20kg 2포대를 얹고 져보면 알 것이다.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지게를 질 수 없다. 땀이 비 오듯 하기에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저절로 겸손해질 것이다.

필자의 선친(1917년생)은 지게부대원으로서 다부동 전투에 참가했다. 살아생전 ‘친구들 중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이웃에 살았던 외삼촌과 당숙도 전사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포화 속을 누볐음에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제야 왜 침묵하셨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과 미군은 필사적으로 적을 막아 냈다. 이 전투에서만 아군은 10,000여 명이, 북한군은 17,500여 명이 전사했다. 참혹한 전투현장에서 미군이 촬영한 지게부대의 활동사진을 보고 또 본다. 모 방송에서 취재한 지게부대원의 증언을 들으며 당시를 상상해 본다.

지게부대원들은 포탄과 식량을 40∼50kg 짊어지고 가파른 고지로 올랐다. 전투가 치열할 때는 잠 한숨 못 자고 포탄을 날랐다. 때때로 걸으면서 졸다가 언덕에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지게부대원들이 포화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른 것은 포탄만이 아니었다.

후방에서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들면 지게부대원들은 여름에 밥이 쉴까 봐 쉬지 않고 고지로 뛰어올랐다. 차가운 겨울에는 주먹밥이 얼까 봐 아무리 숨이 가빠도 뛰었다. 넘어지고 미끄러져도 누구 한 사람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전쟁의 참화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엄숙한 사명감에서 우러난 위국헌신의 정신이었다.

6.25전쟁 72주년이 다가온다. 호국영령들과 수많은 참전 영웅들이 유월 하늘 아래 떠오른다. 이 영웅들이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포탄과 식량을 날랐던 지게부대원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가려진 숨은 영웅이다.

지게부대원들은 군번도 없이 총도 없이 오직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포화속을 누볐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지원했어도 무용담을 자랑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오셨다.

요즘 내우외환의 어려운 시기에, 이분들이 전하는 무언의 음성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준엄한 꾸지람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지게를 질 때 허리를 굽히듯이 겸손하게 서로 인정하고 화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