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벼랑 끝] ① 소성리 주민 백광순 할머니의 하루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10. 사드
연로한 소성리 주민, 까마득한 사드철회의 꿈
주 2일 물자 반입 작전→주 5일로
사드 추가 배치 주장한 윤석열 정부에 "기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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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2년 4월 26일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된 지 5년이 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결정된 사드 배치는 부지를 정하기도 전에 한국 땅에 넘어왔다. 황교안 권한대행 시절 소성리에 배치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발사대를 추가로 배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고, 사드 정식 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성리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사드 추가 배치’ 한줄 공약을 들으며, 벼랑 끝에 선 듯 까마득한 심정을 토로한다. 주민 사정에 대한 이해나 공감 없이 발표된 공약과 사드 정식 배치는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시절, 성주 사람들 사이에 생동하는 기운이 있었다.

거리에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이 빼곡했다. 시장통, 상점 곳곳에 사드 반대 스티커, 파란 나비 스티커가 붙었다. 날마다 열리는 집회에 1,000명 이상의 주민이 모였다. 그 모습을 구경하고자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박근혜 정부가 성주 성산포대에 사드 배치 계획을 밝힌 뒤, 배치 지역으로 거론되는 지역마다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평택, 원주, 음성, 칠곡에서 사드 반대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포항, 양산, 군산 등에도 대책위가 결성되거나 궐기대회가 열렸다. 성주에서도 대책위가 결성됐고, 주민들은 생업을 제쳐두고 군청 광장에 모였다.

군청에서 매일 열린 촛불집회는 주민들의 힘으로 확장되어 갔다. 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구상했고, 이를 실행할 에너지가 있었다. 주부들이 주가 된 먹거리 공동구매 단톡방이 실시간 주민 의견 창구가 되면서, 단톡방 정원 1,318명을 채웠다.

▲2016년 8월 8일 열린 27차 사드배치 철회 촛불집회.

백악관 온라인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청년들은 읍내에 대자보를 썼다. 등교 거부 운동이 있었고, 농부들은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새누리당(옛 국민의힘) 장례식을 치르고 탈당 운동이 전개됐다. 주민들은 사드 반대 시를 썼고, 작곡을 했고, 그림을 그렸다. 자체 소식지를 발행했다. 생동하는 투쟁은 그 자체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박근혜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016년 8월 4일, 박근혜 정부는 성산포대가 아닌 성주 내 다른 지역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성산포대 배치 계획 발표 1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주민들의 주된 구호는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였다. 이 구호는 과거 다른 투쟁, 그리고 다른 지역 사드 반대 투쟁과 대비되는 독특한 요구로 주목받았다. 제3부지 검토 계획에 주민들은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다. 생업을 계속 중단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 한 번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성과를 냈다고 느낀 이도 있었다.

제3부지 이전은 정부가 과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제3부지 추진은 다른 지역의 연쇄적 반발을 부를 것이기에 오히려 투쟁에 유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반도 배치 반대를 고수해, 주민 스스로 명분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바라보는 곳도 다양했다.

▲2016년 8월 18일 열린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 주민간담회
▲2016년 8월 28일 인간 띠잇기를 마친 사람들이 행진해오고 있다.

정부는 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롯데골프장 부지로 고쳐 발표했다. 그러자 성주군청이 먼저 입장을 바꿨다. 집회장으로 내줬던 군청 광장을 폐쇄하고 단전·단수했다. 주민들은 도로변으로 나와 집회를 이어갔다. 군청 광장 농성장에 행정대집행도 예고했다. 군청을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 관변단체는 소리 높여 ‘제3부지 수용’을 외쳤고, 집회 규모도 지속해 축소했다.

사드 반대 투쟁 초기, 집회 장소 이전 문제나 투쟁위 해체 등 투쟁 방향에 대한 의견은 주민들의 토론을 통해 결정됐다. 광장에서 주민들은 토론했고, 하루에 결정나지 않으면 여러 날에 걸쳐 토론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졌고, 최순실 씨의 사드 배치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주민들은 두 손 들고 환영했지만, 탄핵 이후에도 사드 배치 절차는 지속됐다.

2017년 3월, 사드 부지 마련도 전에 한국 땅에 사드가 수송됐다. 롯데골프장 앞에서 원불교가 철야 농성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며 국회에 안을 제출했지만,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은 단 29명에 그쳤다. 4월 20일 롯데골프장이 미군에 공여됐다. 4월 26일, 한국 정부와 미군은 통곡하며 막아서는 주민들을 밀어내고 사드를 배치했다.

사드 배치 이후,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를 외쳤던 주민도 투쟁 방향을 두고 여러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성주읍내 주민 중심인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는 6개 단체 연합 대책회의에서 빠졌다. 투쟁 방법에 대한 이견과 내부 갈등 때문이다. 당시 사드 배치 지역인 초전면 소성리 중심으로 투쟁을 강화하던 사드배치철회초전투쟁위원회는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로 개편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투쟁은 이어졌다. 소성리 현장에서 투쟁을 이어가던 주민들은 문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철회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9월, 문 정부는 사드 발사대를 추가로 배치했다.

사드 배치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소성리에는 사드 반대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사드 추가 배치를 거론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고, 소성리 주민은 희망을 찾지 못하고 고립감을 호소하고 있다.

▲2017년 9월 7일 새벽, 경찰은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저지하던 시민들을 진압했다.

연로한 소성리 주민, 까마득한 사드철회의 꿈
주 2일 물자 반입 작전→주 5일로
소성리 주민 백광순 할머니의 하루

소성리 주민 백광순(78) 할머니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선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 사드 기지로 향하는 외길이 백 할머니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이다.

▲지난 5월 26일 오전 소성리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 도로에서 사드 반대를 외치고 있다

1968년 소성리에 시집와서 소성리를 떠나지 않은 백 할머니는 늘그막에 아스팔트에 앉아 머리띠를 두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시집살이를 했고, 시부모 간병수발, 자식 돌보는 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평온한 시절을 보내나 했더니, 소성리에 사드가 들어오면서 평온이 깨졌다. 소성리 정착 50년 만의 일이다.

백 할머니는 사드 배치 지역으로 소성리가 언급되기 전에도 성주읍내에서 열리는 사드 반대 집회에 나갔다. 그 이후에도 줄곧 반대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5년이라는 세월은 백 할머니의 몸에도 흔적을 남겼다.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집회에 나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 일도 점점 버겁다.

백 할머니는 주 2회 새벽마다 마을회관 앞 도로에 나가 사드 철회를 외친다. 오전 5시 40분, 주민들은 집에서 나와 사드 기지로 향하는 도로 가운데서 열리는 원불교 법회에 자리 잡는다. 백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사드 기지로 향하는 수송 차량을 막아선다. 차량을 막아선들 물자 운송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 할머니는 사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사드 배치에 저항하겠다고 몸으로 표현할 뿐이다. 경찰이 주민과 연대 시민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새벽 법회가 끝나면 백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과 아침을 먹고 비닐하우스로 가 작물을 돌본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 물을 대고 잡초를 캔다. 새벽부터 냉기를 뿜는 아스팔트에 앉았더니 허리가 더욱 시리다.

백 할머니 집은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걸음으로 3분 거리다. 시집와서 평생 지낸 이곳에서, 창문 너머로 사드 기지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백 할머니는 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면 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처방받은 약봉지를 뜯어 물과 함께 삼킨다. 집안일을 하거나 초전면에 나가 볼일을 보고 나면, 오후 4시부터는 다시 사드 반대 팻말을 들고 마을회관 앞으로 향한다.

▲백광순 할머니가 밭일 도중 허리를 펴고 있다

“아침에 평화 행동하고 오면 약 먹을 시간이야. 밭에 한번 갔다가 마당 쓸고 쉬다 보면 해가 기울어. 오후에도 평화행동하러 나가야지. 또 인부들 오가는 거 보면 신경질이 나. 주민들이 사드 싫다는데 꼭 저기서 일해야 하나. 아직도 생각나. 4월 26일에 미군들이 차 안에서 웃으면서 우리를 촬영하고 갔잖아. 그 심정을 말로 할 수가 없어. 자꾸 생각나. 기가 차서 눈물 나고. 지금도 한번 이겨보질 못했어”

백 할머니는 지난 4월 23일, 사드 배치 5년을 사흘 앞두고 오랜만에 소성리에서 열린 사드 반대 집회가 자꾸 떠오른다. 코로나19 탓에 대규모 집회는 열지 않다가, 방역 수칙이 완화하며 오랜만에 연 집회였다. 그날 백 할머니는 소성리를 찾은 연대 시민들을 반기며, 다른 할머니들과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우리 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잖아.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우리 심정을 모르잖아. 자식들이 이제 나더러 ‘엄마, 그만 나가면 안 돼? 엄마가 이길 수가 없잖아’라고 해. 알지.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해. 그래도 나는 신경 안 쓸 수가 없어. 내가 죽고 없으면 모르지만, 창밖으로 경찰이 다니고 차량이 다니는 게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그래. 경찰 다니는 것만 봐도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막막해. 정말로 막막해. 이길 방법이 없어. 윤석열 정부가 정식배치 한다잖아. 우리는 힘이 없어. 나 사는 동안에 사드 저거 빼는 거 못 보고 죽는다는 그런 마음이 들잖아. 나이 들어서 먼저 돌아가시는 할머니들도 있어요. 요양원에 가는 사람도 있고, 자식들이 못 나가게 하는 사람도 있어. 아파서 못 나오는 사람도 생겨. 나이 많은 사람은 한 해가 다르거든. 나도 몸이 자꾸 안 좋아. 원망스러워. 가슴이 답답해. 경찰서에 불려갈지도 몰라요. 소환은 안 왔지만 앞으로는 우리도 예외가 아닐 거 같아요. 나이 80에 경찰서 불려가면 자식들이 걱정하잖아. 나이 들어서 자식한테 못 할 일이잖아. 이겨 보지도 못하고 억울해. 그래도 힘이 되는 건 연대자들 뿐이다. 고마워. 그분들에게 힘을 받아서 계속 나가는 거지. 한 명 한 명의 힘이 크거든. 정말로 반갑고 고마워.”

▲지난 4월 23일 사드 배치 5년을 맞아 소성리에서 사드 철회 집회가 열렸다.

오후 4시, 백 할머니는 다시 마을회관 앞 도로에 가서 사드 반대 팻말을 들었다. 오후에는 오전처럼 길을 막아서지는 않는다. 주민 몇몇이 길가에 앉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드 기지를 나서는 차량을 향해 힘없이 팻말을 흔들 뿐이다.

백 할머니의 사정처럼, 사드에 반대하는 소성리 주민들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주 2회 진행되던 사드 기지 물자 등 수송은 6월 현재 주 5회로 늘었다. 주민들은 이제 아침마다 경찰과 충돌한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은 소성리 상황과 주민들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해에도 할머니 몇 분이 돌아가셨어요. 지금 나오는 할머니들도 고령이라, 건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요. 저도 할머니들 상태를 보면 우울한데, 저뿐만 아니고 모두 그렇게 느껴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어요. 윤석열 정부는 애초에 당선도 되기 전에 사드 추가 배치 운운했잖아요. 그 순간 우리는 포기하는 심정이 됐어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짓밟겠구나. 지금은 무슨 바람도 없어요.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견뎌낼지 생각뿐이에요. 5년 후가 됐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솔직히 장담을 못 하겠어요. 함께 연대하던 분들도 많이 떠나갔어요. 비전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수 떠났죠. 할머니들도 아파서 자기가 빠지면 옆자리가 허전할까 봐 나오세요.”

임 부녀회장은 새 정부 들어 물자 반입 횟수가 늘어난 점 외에도 주민들의 사드 반대 집회에 당국이 점점 강경한 분위기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얼마 전에 차량 통행을 방해했다고 검찰 조사를 받았어요. 아침 9시에 갔는데 오후 2시까지 조사를 받았어요. 이제 걱정되는 건 다른 할머니도 조사받게 될까 봐 그것이 걱정이에요. 점점 더 강도가 세지고 있거든요. 연행자도 나올지도 몰라요. 할머니들은 자식들 걱정시킬까 봐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지금 통행을 막는 건 일단 상징적인 거죠. 소성리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는 뜻이죠. 이것도 안 하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겠죠. 솔직히 답은 보이지 않아요. 그렇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요. 더 단단하게 뭉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연대 오던 사람들도 멀어지고 있어요.”

사드 투쟁이 5년을 넘긴 시점, 임순분 부녀회장은 소성리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9일,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키던 주민 이채구 할아버지가 투병 끝에 작고했다. 주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마을회관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채구 할아버지가 떠난 소성리 마을회관. 천막이 고요 속에 덩그러니 놓였다. 천막 끝에 걸린 사드 반대 깃발이 소리 없이 흔들린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