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하방한 ‘대구시장’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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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앙정치에서 비켜나 주는 것이 선의의 경쟁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옛날 영남의 선비들은 괘방령을 넘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갔고 추풍령을 넘어 낙향했다고 합니다. 저도 이번에는 추풍령을 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3월 31일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하면서 홍준표 당선자가 한 말이다. ‘중앙정치’에 비켜서 대구를 ‘파워풀’하게, ‘체인지’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했다. 대구 50년 미래를 바라보고 대구를 재건하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5선 국회의원, 현 여당의 대표 2회에,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그가 대구 재건하고 미래 50년을 설계하겠다고 나서면서 시민들은 압도적 지지로 그를 시장으로 당선시켰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가 지난 2일 당선 후 SNS에 쓴 21건 중 7건이 대구 관련 글이다.

그런데 당선 후 홍 당선자의 관심은 대구보다 비켜서겠다던 ‘중앙’에 더 가 있는 것 같다. 지난 2일부터 26일까지 그가 SNS를 통해 쓴 글 21건 중 대구 시정과 관련해 쓴 글은 7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2일 쓴 당선 소감이나 8일 쓴 자신의 대구시장 도전을 향한 외부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외하면 시정과 직접 관련된 글은 5건으로 줄어든다. 20% 수준이다.

80%는 중앙 정치 현안에 너르게 걸쳐 있다. 경찰국 신설, 산업부 블랙리스트, 전임 정부 인사들의 사퇴 문제나 누리호 발사 성공까지 언급하지 않는 사안이 없다. 이준석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 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당내 분란에 대해선 TV 토론회에 나서서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며 일갈했다. “다 내보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 나가면 빈 자리는 어쩌려나 하는 궁금증은 뒤로하더라도, 인수위원회 회의도 참석 않고 보고만 받겠다고 한 홍 당선자가 50년 대구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홍 당선자는 후보 시절부터 말과 공약, 당선 후에도 대구의 미래는 통합신공항 성공에 달렸다고 강조해왔다. 그가 밝힌 7대 대구 비전의 가장 앞 순번을 통합신공항과 공항산단 조성이 차지했고, 뒤따른 미래 첨단산업 육성이나 공항후적지 개발도 공항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져서 사실상 공항에서 시작해 공항으로 끝난다고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어떻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 당선자는 국비 통합신공항 건설을 어떻게 해낼 것이냐는 경쟁자들의 물음에 ‘윤석열 대통령이 동대구역에서 약속했다’는 답을 반복했다. 180석 거대 야당이 비협조하면 어쩔거냐는 물음에는 ‘그 당 대통령 후보도 약속했다’는 말로 눙쳤다. 선거 때 후보자들의 말과 공약이 높은 확률로 수포로 돌아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그가 ‘약속’만을 방패 삼는다는 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국토부에서 항공전문가를 신공항추진단장으로 영입하고, 새로운 공항 특별법 발의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은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발의만 된 법안이나 항공전문가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법을 통과시킬 것인가 또는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현행법에 따른 추진 없이 마냥 기다릴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년 뒤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부산, 울산, 경남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내세울 수는 있을까? 통합신공항이 오늘에 이르는 지난한 역정에 부울경이 매번 큰 벽으로 있었다는 걸 다시 상기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오늘부터 발표되는 홍 당선자의 시정 계획에서는 알 수 있을까?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