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 ③ 그들은 왜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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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플 때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보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더욱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들은 미등록 단속의 두려움 속에서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들이 있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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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누리 (이주민건강권실현동행)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문화적, 민족적 동질성을 떠나서 다른 나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 노동을 떠나게 되는 데는 강제적 이주, 전쟁, 자연재해, 혼인 등 여러 요인이 존재할 것이나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식민종주국이나 강대국에 종속적인 경제구조로 인하여 만성적인 실업과 가난에 처해있는 국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한 이주, 즉 경제적 이유로 국경을 넘는다. 그래서 지금 시대의 이주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요한 이주’라고 부른다. 게다가 교통과 통신 수단, 인터넷의 발달은 과거보다 훨씬 활발해진 이주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UN은 전 세계 이주민 2억 7,200만 명 중 1억 8,100만 명은 노동자로 추산한다.

한국은 3면이 바다, 북쪽으로는 휴전선이 있어 비자 없이는 입국이 자유롭지 않은 국가다. 그렇다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입국한 이들은 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등록자가 되는가? 첫 번째는 고용허가제(EPS)가 이주노동자를 미등록자로 만들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한국의 합법적인 노동비자 제도로 최초 3년에 3회의 사업장 이동 기회가 있으며, 1년 10개월에 2회의 연장 기회가 있다.

그러나 사업장 이동이나 연장 시 사업주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사업장을 변경하거나 제한 횟수를 넘기면 미등록 신분이 된다. ‘사람이 불법이 아니라 제도가 불법을 만든다’며 고용허가제를 노예제도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근로기준법상 업종 간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사업장 이탈이 미등록자를 만들고 있다.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하면 농축산어업 종사자에게 근로시간, 휴일, 휴게시간이 적용되지 않아 무한정 일을 시키더라도 법 위반이 아니다. 더구나 업종 특성상 5인 미만인 경우가 많아서 연장 수당이 없으며, 주말도 없이 일해도 추가 근무수당이 없다. 근로기준법 63조 제외 조항을 개선하여 차등을 없애면 미등록자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지만, 법 개정을 미루는 것은 누구에게 이득이 있어서일까?

마지막으로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만들어 내는 미등록자 양산을 살펴보자. 높아지는 한국의 위상은 가난한 아시안들에게 코리안 드림을 꿈꾸게 하는 신기루가 되어가고 있다. 인구 대책으로 출발하여 국민으로 포섭하는 결혼 이주정책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비정착, 단기 일자리 정책의 대상이 되어 보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한 비국민 영역을 차지한다.

설사 노예 노동에 머무르더라도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에는 짧은 기간의 노동으로 그 꿈을 채울 수 없다. 심지어 고액의 입국 브로커 비용을 지불하고 찾아온 이들은 우선 입국 비용부터 갚고 그다음에야 돈을 모은다. 단기 일자리 정책으로 불가피하게 미등록자가 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등화된 비국민으로서 바닥의 일자리이며, 동시에 권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요즈음 영세한 공장이나 농촌에서 노동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업주의 아우성을 많이 접하게 된다. 현행 고용허가제와 근로기준법을 개선하면 미등록자를 줄일 수 있고, 단기 일자리 정책을 개선하면 노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지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한다면 이주노동자들도 좀 더 떳떳하게 노동할 수 있고 권리도 찾을 수 있다. 건강하게 한국에서 일하다 명예롭게 돌아가는 그 뒷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의 경험을 소중하게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미 세계 시민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희정 성서공단노조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