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나의 언론사 입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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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공채 시험을 치렀다. 한 지역방송사 취재기자 필기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나왔다. 장문의 시험 문제를 요약하면 장애인을 위한 방송콘텐츠는 어떠해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반신반의하는 생각으로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장애인’으로 그들을 가둬버릴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다양한 취향을 가졌을 것이라는 전제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서술을 했다. 또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보완도 있어야 한다고 썼다.

이후 실무평가에서 마주쳤던 사장실에 앉은 ‘선배’ 기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 회사에서 여성인 기자는 가장 저연차 1명이었다. 수 년 간 언론사 시험 면접 전형에서 만난 면접관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쉽지 않은 시험’이겠구나, ‘(롤모델이 없어) 10년 뒤 내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늘 떠다녔다. 게다가 지방에서 줄곧 살아온 나는 ‘서울말’을 구사하길 요구하는 카메라테스트도 쉽지 않았다. 또 서울에 집중된 언론사 시험을 위한 교통비와 숙소, 이동시간 등을 고려하며 시험에 집중하는 건 힘들었다. ‘서울 사는 것은 스펙’이라는 말 역시 절실하게 느껴졌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화 ‘양쯔강 돌고래’ 편에서 회사 구조조정 가운데 사내부부 중 여성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부분이 나온다.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는 처음엔 이같은 회사의 방침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찾아내지 못한다. 차별을 읽어내기 위해선 맥락이 필요했다.

인권변호사 류재숙(이봉련 분)은 아버지의 항렬을 묻는 판사에게 “이 사건은 성차별이며, 여성이라서 항렬자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판사님이 제대로 이 사건의 본질을 공명정대하게 바라볼 지 우려가 된다”고 지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체감하기위한  약자감수성이 장착되어야 이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삶에서 ‘장애물’을 만나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출처= 채널 ENA)

우영우 역시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어려웠다. 드라마 속에는 ‘약자감수성’이 느껴지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그는 여성 주인공이자 장애인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영우가 만나는 의뢰인 또는 피고인, 피해자들은 성소수자, 새터민, 장애인이다. ‘사회 체제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이도 있다. 때론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어린이들이나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부족한 사람들도 보여준다. 개발 사업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시골마을도 나왔다. ‘고래덕후’인 영우는 “돌고래에게 수족관은 감옥”이라는 말도 한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사건들은 대부분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곳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떠올리게 하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당탕탕’ 성장하는 영우를 보며 시청자들도 한뼘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사회적 약자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거나 고정관념에 가두는 대신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하되, 사회적 장애물을 낮추는 사회적 노력과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확장되길 바란다.

<뉴스민>의 첫 공채 입사자기도 한 나는, 처음으로 면접장에서 여성 면접관을 만났다. 입사 이후에 때때로 “회사 생활은 어떠냐”고 묻는 취재원들과 후원회원의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망설인다. 이곳에서 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찾고, 그들에게 견고한 현실에 작은 균열을 내길 모색한다. 이게 그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