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도시가 아니어도 괜찮아 ‘우드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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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축제 분위기인 대입 발표날. 히라노 유우키(소메타니 쇼타)는 대학에 떨어지고 여자친구에게도 차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들과 웃고 떠들지만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니 앞날이 막막하다. 그간 특별한 어려움 없이 편안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진로를 직접 선택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거리를 거닐던 유우키는 직업안내 책자 가판대 앞에 선다. 눈을 감고 씹고 있던 껌을 뱉어 껌이 붙은 전단지 직업에 지원하기로 마음먹는다. 껌은 자위대 모집 전단지에 붙지만 그 뒤 예쁜 여성 표지모델에 끌려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유우키는 산림관리 연수생이 되기 위해 핸드폰이 터지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 가무사리 마을에 도착한다.

도시에서 살아온 그에게 날벌레가 들끓는 오지는 낯설다. 이곳에서 1년간 산림관리 연수생으로 지내게 된 유우키의 궁금증은 표지모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산림관리에는 흥미가 없다. 유우키의 불성실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산림관리 연수 담당자 이다 요키(이토 히데아키)는 벌목 교육 도중 불같이 화를 낸다. 베어진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본 유우키의 “넘어간다”는 외침이 임업을 깔보는 조롱에 가까워서다.

그날 밤, 유우키는 연수원에서 도망치던 중 오토바이를 탄 이시이 나오키(나가사와 마사미)를 만난다. 기차역에 유우키를 데려다 준 나오키는 나약한 유우키를 향해 심한 말을 내뱉지만, 유우키는 그토록 바랐던 표지모델 나오키와 만남에 행복을 느낀다. 마음을 다잡은 유우키는 발걸음을 돌려 연수원으로 돌아간다. 유우키는 점차 산속생활에 적응해나간다. 고된 일을 끝내고 먹는 새참의 맛도 알게 되고 마을 주민의 노래도 선창한다. 마을 사람들도 유우키를 점점 인정해나간다.

어느 날 헤어진 여자친구와 그 일행이 유우키가 있는 임업 현장을 견학하게 된다. 임업이 낯설었던 유우키처럼 마을 사람들을 깔보는 견학단의 태도에 유우키는 마을 사람들 대신 화를 낸다. 도시인이었던 유우키가 어느새 마을의 일원으로 동화된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유우키는 마을 축제에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우드 잡(Wood Job년)>은 미우라 시온의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 원작이다. <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를 연출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유우키가 산 사나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다. 뚜렷한 갈등구조나 극적인 전개는 없다. 그저 잔잔하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코미디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시킨다.

시노부 감독이 공들인 장면은 산속 마을의 여유와 임업의 진정성이라고 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와 느긋한 시골은 대비된다. 시골의 매력은 가무사리 마을 임업 작업반장의 대사에서 나온다. “농업은 내가 키운 채소의 맛을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임업은 아니야.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다음에 나와.”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되지만 산속은 다음 세대를 위해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내고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다시 묘목을 심는 것을 반복한다.

도시가 아니면 안 되거나, 선망 직업이 아니면 안 되는, 뒤틀린 사회 요구에 내몰려 길을 잃은 청춘들에게 영화를 권한다. 삶이 답답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 보면, 의도하지 않은 힐링을 얻게 된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 삶 앞에 부끄럽지 않는다면 그 걸로도 괜찮다는 위안을 건네주는 것 같아서.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