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2) 한 끼 급식이 나오기까지···학교급식 조리실은 지금 (상)

(상) 첫날, 하루에도 몇 번씩 조리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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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4일의 금요일’은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뉴스민>의 집중취재 코너입니다. 간단한 단신으로 다뤘던 뉴스의 이면을 한 발 더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4일의 금요일’ 두 번째는 개학과 함께 다시 고된 노동이 시작된 급식노동자의 노동을 살펴봅니다. 최근 대구의 한 급식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하면서 그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김보현 기자가 직접 3일간 급식노동을 하며 보고 들은 것을 전해드립니다. 

(상) 첫날, 하루에도 몇 번씩 조리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중) 둘째날, “공사판이 남자들 ‘노가다’라면, 여긴 여자들 ‘노가다'”
(하) 셋째날, “10년 넘게 일하면 팔, 다리에 심 하나씩 박지”

“결혼은 했어? 애들은 몇 살이야?”

고르고 고른 학교가 급식 인원 1,000명이 넘는, 대형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초등학교였다. 평균 나이 50대 후반의 언니들은 “젊은 새댁이 벌써 이런 험한 곳에 왔냐”며 걱정 어린 말과 눈빛을 보냈다. 언니들은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얼굴을 보고 40대 중후반이라 추측했다. 그보다 어린 사람은 이런 곳에 올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루 전인 8월 29일, A 초등학교 대체 조리실무원 공고를 보고 곧바로 문자를 넣었다. 집에서 50분 거리로 좀 멀었지만 이미 몇 군데서 나이가 너무 어려 거절당한 뒤였다. 당장 다음날이 개학이라 사람이 급한 A 초등학교 영양사는 “93년생이라고요?” 여러 번 되묻고는 신분증과 통장 사본, 보건증을 갖고 오전 8시까지 오라고 말했다. 근무지는 A 초등학교 식생활관리실, 일급은 8시간 근무에 9만 1,740원.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들어준다고 했다.

A 초등학교 급식실에는 영양사 1명, 조리사 1명, 조리실무원 9명으로 총 11명이 근무했다. 급식 인원 120명당 배치되는 인원은 1명이다. 대구 시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의 학교라, 급식실에서 일하는 인력도 많은 편이다. 이날은 한 달여 간의 방학이 끝난 개학 날이지만, 나를 포함해 3명은 대체인력이었다.

조리실 안은 영역이 확실하게 구분돼 있다. 8시 20분쯤 식재료가 도착하면 검수하고 분류해 각 조리 코너로 넘겨주는 전처리 담당 2명, 밥 담당 2명, 국 담당 1명, 튀김 담당 2명, 배식카 담당 2명으로 나뉘어 움직인다. 아침 조리뿐 아니라 오후 세척, 휴게실 안 건조기 청소까지 모든 업무는 세분화되어 담당이 정해져 있지만, ‘의무방어전’ 성격이 강하다. 부족한 인력에 자기 담당만 붙들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맡은 일이 일찍 정리되면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때마다 앞치마, 고무장갑 할 것 없이 모조리 바꿔 입어야 한다. 조리 식품이나 성격에 따라 입어야 하는 조리복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해썹(HACCP, 식품 위생을 관리하는 인증 기준)을 맞춰야 한다. 교차오염 유발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구역마다, 만지는 것 마다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다르게 착용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한다. 고기‧생선은 빨간색, 튀김은 분홍색, 배식에 바로 나가게 되는 건 흰색, 세척할 땐 남색 앞치마를 입는 식이다. 그 덕에 첫날부터 서너 번 가량 조리복을 바꿔 입어야 했다. 경력이 오래된 이들은 그보다 많이 조리복을 바꿔 입으면서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A 초등학교는 대구 내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다. 식수가 많으니 배치인원도, 조리실도 다른 곳에 비해 크다. 사진의 왼편은 전처리(설거지팀) 구역, 오른편은 국을 만드는 구역이다.

나는 닭다리 오븐구이를 맡았다
튀김 담당, 메뉴 따라 노동 강도 천차만별

오늘 메뉴는 카레, 닭다리 오븐구이, 카프레제 토마토 샐러드, 백김치, 오렌지주스다. 짝꿍인 남선 언니(가명‧50대)와 나는 닭다리 오븐구이를 맡았다. 닭다리는 집에서 시켜 먹는 치킨보다 크고 실했다. 카프레제 샐러드, 카레에 들어가는 야채도 신선했다. “애들이 먹는 거라 식재료는 최상으로 들어와. 그 비싼 샤인머스캣도 나오더라니까” 남선 언니가 말했다.

튀김 담당 팀은 메뉴에 따라 노동 강도가 천차만별이다. “기름에 튀기는 튀김 종류나 전이 나오는 날은 조리부터 세척까지 일이 장난이 아니”라고 남선 언니가 말했다. 다행히 오븐구이류는 널찍한 철판에 재료를 펼치고 거치대에 끼운 뒤 오븐기에 넣어다 빼면 끝이다. 대신 힘든 건 사전 작업이다. 염질을 위해 생닭다리 1,200개를 큰 집기에 붓고 소금, 후추, 파슬리 등을 뿌리며 손을 깊숙이 넣어 뒤집고 또 뒤집었다.

순서는 일주일마다 돌아간다. 이번 주 튀김 담당이었다면 다음 주는 전처리 담당이 되는 식이다. 특별히 더 힘들거나 덜 힘든 게 있는지 물었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쨌든 일이 되는 게 중요하니까. 내 일이 덜 힘들거나 빨리 끝나면 다른 사람 업무에 붙어야 돼. 메뉴에 따라서도 업무강도가 달라져. 튀김 메뉴로 전이 나오는 날에는 튀김 자리에만 4명이 내리붙어있어”

이날도 닭다리가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앞치마를 갈아입고 오렌지주스 팀에 불려 갔다. 150ml의 급식용 오렌지주스는 네 개가 한 세트로, 단단한 비닐에 묶여 있었다. 한 명이 젓가락으로 비닐 사이를 뚫어서 건네주면 다른 한 명이 비닐을 벗겨 낱개로 펼쳤다. 언니들은 90개씩 담은 배식용 통을 번쩍 들어 냉장고로 옮겼다. 지나가던 밥 담당 언니가 “이런 일 하지 말고 영양사 공부해” 속삭이고 앞질러 갔다.

배식은 11시 40분에 시작하지만, 유치원 두 반과 6학년 한 반에 가는 배식카를 준비해야 한다. 지난 학기까진 배식카 16개를 준비해 교실로 올렸다. 급식실이 학생 수에 비해 작은 데다 코로나19까지 있어 어쩔 수 없었지만, 일일이 개수를 세 작은 통에 나눠 담고 빠진 것 없이 챙기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코로나19는 급식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학교는 아이들의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며 각 반으로 배식카를 올려보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조리실 인원 중 코로나19 확진자라도 발생하면 초비상이었다. 학교는 정상 급식을 강행하니 대체인력이 곧바로 구해지지 않으면 남은 사람들이 몸으로 때워야 했다.

“그땐 정말 다들 바쁘고 예민했지. 젓가락 한 쌍, 반찬 하나라도 빼 먹은 반이 있으면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가서 가져다주고 왔어. 그때 비하면 지금은 훨씬 수월해. 좋은 시절에 왔어” 남선 언니가 말했다. 그러면서 언니들은 배식카 2대를 교실에 올려보내기 직전까지 반찬 개수를 세고 또 셌다.

아이들은 두 학년씩 한꺼번에 왔다. “닭다리 두 개 주세요”, “머스타드 소스 빼고 주세요”, “카프레제 샐러드에서 토마토 빼고 치즈만 주세요” 요구사항이 많았다. 저학년은 급식판을 자기 몸 가까이 당겨 들어, 자꾸 배식카에 음식이 흘렀다. 오전부터 한 번도 앉지 못해 저릿한 다리를 두드리며 잠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언니들은 그 짬에도 급식실에 들어가서 부족한 반찬을 채우거나 오전에 다 하지 못한 뒷정리를 했다.

배식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듬뿍 담은, 다 식어버린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곧바로 뒷정리에 투입됐다. 음식물 찌꺼기 통에서 손으로 닭다리 뼈를 골라내 쓰레기통에 담았다. 30초 전에 먹은 카레가 속에서 받쳤다. 75L짜리 쓰레기봉투가 금방 꽉 차 휴게실에서 새것을 꺼내 왔다. 급식실로 나간 집기를 조리실 안으로 끌고 와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닦고 호스로 물을 쏴 세척했다.

▲휴게실 캐비닛에 붙은 급식도구 사용 표준화 안내서. 3일간의 일이 끝날 때까지 각자의 위치와 색깔별 용도가 익혀지지 않았다.

오후 2시부터 30분 동안 쉬는 시간이다. 몇몇 언니는 청소를 시간 내 마무리한다고 휴게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6시간 만에 처음 편하게 다리를 펴고 앉았다. 절로 끙끙 소리가 나왔다. 언니들은 두루마리 휴지를 베고 자거나 엎드려 쉬었다. 과자를 믹스커피에 찍어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대부분 팔목에는 손목 보호대가, 허리에는 파스가 붙어 있었다. 등에 부황 자국이 선명한 언니도 있었다. 아무도 파스, 보호대 따위로 유난을 떨지 않았다.

노조, “배치인력 늘려야···”
학교 식수 인원, 공기업 대비 2배가량 많아

“아직 어린데 왜 왔어. 더 나이 들어서 와. 우리 딸은 시켜도 못 한다” 언니들이 궁금한 게 많은 얼굴로 계속 물었다. 정규직이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는 공무직 노동자로,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에만 33만 명, 지자체와 교육청까지 합하면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지만 8시간의 근무 시간 중 쉬는 시간은 30분 뿐이다.

노동조합은 배치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꾸준히 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 측 설명에 따르면 대구는 급식인원 120명당 조리인력 1명이 배치된다. 2018년 국회 정책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공기업 평균 식수 인원은 1인당 65.9명이다.

급식 인원이 1천 명이 넘는 A 초등학교는 조리사를 포함해 10명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급식을 완성한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급히 대체인력을 구하지 않는 한 나머지 사람이 한 명의 몫을 몸으로 버텨내야 한다.

“오늘은 개학 첫날이라 그런가 좀 수월하다” 2시 30분이 되자 하나둘 몸을 일으켜 작업을 마무리하러 나갔다. 청소가 마무리되면 각자 자신의 앞치마와 고무장화를 씻어 소독기에 넣은 뒤 휴게실에 들어가 모든 옷을 벗어 재낀다. 순서대로 4명씩 화장실 겸 샤워실에 들어가 온몸을 씻고 세탁기를 돌리면 하루가 끝난다. 그렇게 언니들은 자식에게 시킬 수 없는 일을 매일 해낸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