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2) 한 끼 급식이 나오기까지···학교급식 조리실은 지금 (하)

(하) 셋째날, “10년 넘게 일하면 팔, 다리에 심 하나씩 박지”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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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14일의 금요일’은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뉴스민>의 집중취재 코너입니다. 간단한 단신으로 다뤘던 뉴스의 이면을 한 발 더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4일의 금요일’ 두 번째는 개학과 함께 다시 고된 노동이 시작된 급식노동자의 노동을 살펴봅니다. 최근 대구의 한 급식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하면서 그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김보현 기자가 직접 3일간 급식노동을 하며 보고 들은 것을 전해드립니다. 

(상) 첫날, 하루에도 몇 번씩 조리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중) 둘째날, “공사판이 남자들 ‘노가다’라면, 여긴 여자들 ‘노가다'”
(하) 셋째날, “10년 넘게 일하면 팔, 다리에 심 하나씩 박지”

기사수정 : 2022.9.6 14:40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 고양이 세수를 한 뒤 버스에 몸을 실었다. 7시 45분에 도착했는데도 꼴찌였다. 서둘러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청소할 때 입을 앞치마와 토시, 고무장갑을 챙겨 미리 전용 옷걸이에 걸어놨다.

전날 모든 집기와 식기를 세척하고 말려 놨지만 아침에 출근하면 다시 재점검한다. 남선 언니(가명‧50대)와 나는 마른 행주로 환기구와 오븐, 어제 쓴 동그리(동그란 바퀴 달린 집기, 주로 무거운 철판이나 식판, 배식통 등을 담아서 밀어 옮길 때 쓴다)를 닦고 필요한 곳으로 옮겨둔다.

8시 30분, 뒷문에 세워둔 식자재 트럭에서 아저씨가 박스를 내리면 전처리팀이 검수 후 안의 물건을 빼서 박스를 문밖으로 던진다. 던져진 박스를 하나씩 접어 수레에 싣는다. 내가 수레를 잡고 있으면 바닥에 떨어지는 박스를 남선 언니가 빠른 손으로 접어서 올렸다. 잘 접히지 않는 사과 박스를 무릎으로 쳐서 힘겹게 접으며 “오늘은 박스가 좀 많네요” 했더니 남선 언니가 “이건 많은 것도 아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박스를 쌓은 수레 끌고 세 번 넘게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어”라고 말했다.

▲조리용 흰색 앞치마가 있는 소독기. 용도별로 사용하는 앞치마가 다른데, 인력이 부족해 한 사람이 여기저기 구역을 넘나들다 보니 한 시간에도 세네번씩 앞치마를 갈아 입는다.

오늘 튀김 메뉴는 ‘미트볼 조림’이다. 미트볼 완제품을 오븐 철판에 붓고 거치대에 끼워서 오븐에 넣은 뒤 꺼내서 큰 솥에 소스에 넣고 조리면 된다. 오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작업을 마무리해둔 뒤 닭곰탕 조리로 불려 갔다. 끓고 있는 큰 솥 두 개 때문에 온도부터 달랐다.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삶아진 닭고기 앞에 서서 닭다리와 가슴뼈를 골라냈다. 연기가 나는 닭고기 앞에 서 있으니 금세 얼굴에 땀이 흘렀다. 등 뒤에서 끓고 있는 국 때문에 등이 후끈거렸다.

팔을 들어 팔뚝 부분 조리복 옷감으로 눈을 닦았다. 앞에서 함께 뼈를 골라내는 언니들은 이미 온 얼굴이 젖었다. 9월까진 에어컨을 틀어놓는다고 했으니, 어디선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겠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여름보단 낫지. 한여름엔 속옷까지 다 젖으니까, 배식 전에 한번 샤워하고 옷 갈아입잖아. 마스크도 하나만 쓰면 안 돼. 젖어버리니까 두세 개씩 쓰는데도, 다 젖어“라고 전처리 팀에서 도우러 온 언니가 말했다.

오븐이 다 돌아갔다는 소리가 나자 다시 구역을 옮겨 튀김용 큰 솥 앞에 섰다. 소스가 조려지는 동안 국자로 계속 저어야 했다. 스팀이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미트볼을 솥에 붓고 빠르게 조린 뒤 배식통에 담았다. 배식통은 급식실에 갈 음식이니 흰 앞치마로 갈아입어야 한다. 흰 앞치마와 장갑으로 바꿔 입은 뒤 11개의 배식통에 미트볼을 가득 채웠다. 두 개를 들고 온장고로 가다가 바닥의 물 때문에 살짝 미끄러질 뻔했다. 나머지를 옮기기 위해 돌아오니 남선언니가 바퀴 달린 트레이에 담아서 옮기라고 말했다.

보이는 데서 넘어지지 않으면 산재는 그림의 떡
골병은 조금씩···“10년 넘게 일하면 팔, 다리에 심 하나씩은”

샤워를 마치고 함께 나온 남선 언니와 명선 언니(가명‧40대)와 마주보고 앉았다. 같은 날 4주의 계약직 일을 시작한 명선 언니는 경험 삼아 지원했다고 했다. 한 달 이상 경력을 쌓아두면 교육청 정규직 지원에 유리하다고도 했다. “좀 힘들어도 정규직이니까 좋지. 가족 수당도 나오고, 추석‧설 수당 챙겨주고 주말‧공휴일 다 쉬고. 우리 나이에 이런 일이 잘 없어”

명선 언니는 전날 팔을 잘 못 짚어서 바깥쪽 손목 부분에 멍이 퍼렇게 들었다. 넘어질 땐 몰랐는데 집에 가 보니 팔이 욱신거렸다. 아침에 보니 길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남선 언니는 팔 안쪽 큰 흉터를 보여줬다. 고무장갑 안쪽으로 뜨거운 물이 들어가 크게 물집이 잡혔다고 했다. 산재 신청은 안 되냐고 물었더니 “다들 이 정도 상처는 있으니까 그냥 혼자 밴드 붙이고 말지”라고 답했다. 손목 보호대, 밴드, 파스에 부황자국은 다들 기본 착장이다.

▲청소를 마친 오후 조리실 내부 풍경. 시간에 맞춰 급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오전엔 커다란 집기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10년 넘게 일하면 팔, 다리에 심 하나씩 박지” 지나가던 언니가 툭 말을 얹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학비노조)가 올해 5월 학교 급식노동자 조합원 514명의 근골격계 질환, 산재사고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49.3%가 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질환명은 허리디스크, 회전근개파열,퇴행성관절염, 엘보우 통증 등이다.

치료비는 대부분 자체 비용이나 실비보험을 통해 처리했으며,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산재 처리를 꺼리는 이유는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겨우 대체인력을 구한다고 해도, 복잡한 조리실 구조와 업무 성격상 숙련자가 일일이 확인하고 지시해야 하니 1인분 몫을 기대하긴 어렵다. (관련기사=대구 학교 급식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진단 49%, 1.8%만 산재 처리 (‘22.06.21))

굽고, 튀기고, 끓이고···
고용노동부, 폐암 산재 건강진단 진행

지난 6월에는 대구 한 학교 조리실에서 18년 일한 조리실무자가 폐암 산재 승인을 받았다. 대구에서 급식실 종사자가 폐암 산재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노조는 “이 조리실무자의 1인당 담당 식수 인원은 18년 근무 내내 100명 이상이었다. 환기 시설이 있었지만 조리 설비에 막혀있거나 일부는 노후된 채로 방치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리실 바깥 급식실은 창이 크고 공기가 잘 통한다. 에어컨과 선풍기도 여러 대 배치돼 있다.

밥을 먹는 사람의 공간과 밥을 하는 사람의 공간은 전혀 다른 공기를 갖는다. 조리실은 튀김기와 오븐 위쪽으로 작은 창문이 전부이지만, 급식실은 한쪽 벽면 전체가 큰 창이다. 창의 크기 만큼 공기의 질도 차이가 컸다. 급식실에는 에어컨과 선풍기 여러 대가 동시에 돌아가지만, 조리실은 구석 한 켠에 에어컨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지난 5월 기준 근로복지공단의 학교급식 노동자 폐암 산재신청 현황에 따르면 산재신청 64건, 승인 34건, 불승인 5건, 진행 중이 25건이다. 산재 인정을 받은 학교급식 노동자 중 5명은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폐암 건강진단 실시기준을 마련해 교육청에 알리고, 올해 8월까지 학교 급식실 조리 종사자 중 55세 이상 또는 조리업무 10년 이상 종사자에 대해 국가암검진에서 폐암 선별검사로 사용되는 저선량 폐 시티(CT) 촬영을 실시하도록 했다. 노조는 이 결과 나오면 산재 신청 건수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정경희 학비노조 대구지부 지부장은 “7월에도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원으로 일하던 선생님 한 분이 탈진한 일이 있엇다. 여름엔 더 심하지만 사실 근무환경은 계절 상관없이 덥고 환기가 잘 안된다”며 “더 이상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노동환경을 만드려면 노후시설 교체, 인력 충원, 현실적 대체인력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