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홍준표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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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패러독스. 우리말로 하면 홍준표 역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이 그의 직설적인 언사로 드러나 버리거나, 요원해 보이던 정책이 강한 추진력 덕에 일순간에 실현되는 모습을 보면 실소가 입 주위로 번진다. ‘그걸 그렇게 말한다고?’ 또는 ‘그걸 이렇게 해버린다고?’ 같은 신선함과 놀람의 연속이랄까.

“우리나라 의료는 모두 공공의료”라는 그의 ‘선언’은 ‘신선했다’. 그가 말하는 ‘공공의료’라는 것이 수익을 영리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우리나라 의료는 모두 공공의료’라는 선언은 우리 의료 시장의 모순을 드러냈다. 실제 우리나라 의료가 모두 공공의료라고 생각하는지 시민들에게 물으면 다수 시민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거다.

대구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2020년 실시한 시민 인식도 조사를 보면, 시민들은 공익성(70.9%)과 저렴한 진료비(70.1%), 취약계층 대상 진료(48.5%)로 공공의료를 이미지화했다. 그다지 공익적이지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취약계층은 가급적 다른 병원으로 돌리는 우리 옆의 병원을 떠올리면 시민들이 ‘우리나라는 모두 공공의료’라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78.6%에 달하는 민간의료보험 가입 비율도 이를 뒷받침한다.

‘물은 공공재’라는 선언도 마찬가지다. 대구 취수원 이전을 두고 논란이 일자 홍 시장은 권기창 안동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물이라는 게 전국적으로 공공재”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 ‘물 가지고 야박하게 구는’ 구미시장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동시에 그는 공공재인 물 가지고 ‘인심 쓰는’ 안동시장에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상생’을 말했다. 상생의 결과물로 안동에서 대구까지 직행하는 ‘맑은 물 고속도로(하이웨이)’를 놓겠다고 했다. 고속도로라니, 그 직관적인 명명이나 상상력이 재밌다.

하지만 그가 ‘공공’을 말한다고 해서 그의 정책 방향이 공공적인가는 다른 문제다. 홍준표 패러독스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 의료가 모두 공공의료이기 때문인지 그는 추가로 지방의료원을 짓는데 소극적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필요성이 강조됐고, 시민 공감대가 너르게 형성되고 있음에도 추진되던 사업 자체를 멈춰버렸다. 홍 시장이 놓을 ‘맑은 물 고속도로’는 어떤가. 그 고속도로는 나들목이 없다. 오직 대구로 한 길이다. 안동과 대구 사이의 여러 도시가 물 부족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공공재’에 대한 인식은 빠져있다.

빠져있는 공공적 인식은 호평을 받을 수 있는 그의 정책에도 후한 점수를 주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홍 시장은 산하 공공기관장 연봉을 일률적으로 1억 2,000만 원으로 제한하는 제도(살찐고양이법)를 시행했고, 합의제 감사위원회도 주저없이 도입했다. 지난 수년 동안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도입을 촉구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미뤄졌던 제도들이다.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홍준표라는 인물의 개인기에 의존해 도입된 만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도의 공공적 의미에 대한 숙고가 드러나지 않은 채 ‘시장의 결단’만으로 도입된 정책은 언제든 또 다른 시장의 결단으로 사라지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기도 쉽지 않다.

공적 숙의와 논의를 통해 정책의 공공적 가치에 동의하는 시민이 늘어난 정책은 다르다. 홍 시장이 ‘결단’으로 원점으로 돌리려 한 전임 시장의 여러 정책 중 신청사, 취수원, 제2대구의료원 등의 문제가 여러 반대에 부딪혔거나 부딪히고 있는 이유도 그 차이다. 공적 숙고와 논의는 정책의 공공적 가치를 다듬고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만큼 힘이 생긴다. 어쩌면 홍준표 시장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도 이 길일지 모른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