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실패를 분석하면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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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후강평(事後講評, After Action Review)이다. 한미 장병들은 모든 연습과 실제 야외 훈련을 마치고 그간 작전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소속부대 나아가 군의 전투력을 증진시킨다. 마치 프로 바둑기사들이 대국만큼 복기(復棋)를 중요하게 여기듯이 군에서는 전문 사후강평단을 운용할 정도로 중요시한다.

지난 8월 말까지 2주 동안 ‘22한미UFS연습을 마쳤다. 을지 자유의 방패를 의미하는 UFS(Ulchi Freedom Shield)의 하이라이트도 사후강평이다. 전문 사후강평단은 주요 전투국면을 입체적으로 복기하면서 참가자들이 토의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대안을 찾도록 유도한다.

▲지난 9월1일 대구 수성구 고모역 일대에서 육군 2작전사 예하 공병단과 한미연합사단 예하 공병대대가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부대 제공]

강평 후, 예하부대는 별도로 부대 차원에서 사후강평 시간을 갖는다. 부서별, 개인별로도 해당 임무에서 교훈을 도출하고 발전방안을 제시한다. 장병들은 발전방안을 두고 토의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다.

필자는 군 복무 중 한미연합연습에 스무 번 이상 참가했다. 그때마다 사후강평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강평에 앞서 사회를 맡은 예비역 장군은 한미장병들의 긴장을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 일순간에 풀어 버린다. 이 모습은 어느새 전통이 됐다.

강평 출발부터 마음을 여니 토의가 활발하다. 사회자가 전문 관찰단이 제시한 데이터로 주요 국면을 복기하면서 해당 지휘관(참모)에게 왜 그렇게 조치했는지 질의한다. 이 과정에서 작전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어떤 교훈을 도출하고 발전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열띤 토의 중에 숙연해질 때가 있다. 군사작전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4년 한미연합연습 때 유언비어를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와 관련 한미연합사의 공보실 자체강평에서 이라크전에 참전한 주한미군은 “불통과 불신이 있는 곳에 유언비어가 자랍니다. 한미연합군은 국민들과 소통을 통한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라고 발전방안을 제시했다.

수없이 들었던 말임에도 참전 경험자가 직접 말하니까 가슴에 와닿았다. 한미 장병들이 함께 밤을 지새우며 작전을 짜고 모의전투현장에 적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이다. 대부분 미군 간부들은 실제 전투경험이 있다. 피 흘리며 얻은 이 경험을 우리 간부들이 이어받는 계기가 연합연습이기도 하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 군은 사후강평 때 패배한 전투를 철저하게 분석하기보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다. 비록 모의전투이지만 ‘군사작전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는 ‘오히려 패배한 전투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면 장차전에서 승리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만큼 군이 실질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후강평은 자신과 소속부대가 펼친 작전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이다. 다중지능이론을 설파한 미국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1983)는 “자기성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실제 훈련만큼 사후강평도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 본질이 자신과 소속부대의 성찰이라서 그렇다.

어제 태풍 ‘힌남도’가 쓸고 간 피해현장을 본다. 복구를 마치면 관련 기관에서는 사후강평을 할 것이다. 이번에 선제대응을 했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례를 철저히 분석한다면 다음에는 그 피해를 줄 일 수 있을 것이다. 군과 정부 부처와 지자체는 비밀이 아닐 경우, 사후강평(평가)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발전방안을 공유한다면 그만큼 사회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례를 확인하면 확신에 차고, 실패한 사례를 분석하면 실력이 된다. 그 실력이 ‘성공의 길라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