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현 시인의 신작 ‘반대편으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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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안고 사는 사람보다
초록을 내려놓고 사는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꽃내음에 젖어 사는 사람보다
마른 풀에서도 꽃향기를 느끼는 사람이 더 생각나는

단풍으로 물든 사람보다
단풍으로 물들게 해 주는 단풍나무 같은 사람이 더 보고 싶은

벌써 시월도 끝이네 하는 사람보다
아직도 시월이야 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 주고 싶어지는

– ’10월’ 전문

▲김윤현 시인 (사진=정용태 기자)

지난달 30일 김윤현 시인의 신작 시집 <반대편으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가 한티재 시선으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표제시 ‘반대편을 향하여’를 비롯한 시 72편을 4부로 나눠 싣고, 배창환 시인의 발문 ‘낮춤, 비움 그리고 중용과 평화의 시’를 더했다.

요즘 와서는
자꾸만 반대편이 그리워진다
내가 볼 수 없는 또 다른 나
육체를 건너뛴 그 너머 영혼
질문에 대한 엉뚱한 응답이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과 풍경
아아, 낮에는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이 그립고
더 이루려는 미래보다 없어서 더 정겨웠던 과거
내세우기만 했던 앞보다 받쳐 주기만 한 뒤가 더 그립다
너무 나아가기만 했던 걸까
자꾸만 반대편으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햇볕을 쬐려 나아가기보다 햇빛이 들 때까지 기다리며
무엇을 뒤집어 보려는 걸까
반대편을 향하는 그리움이 내게는 있다

– ‘반대편을 향하여’ 전문

배창환 시인은 발문 ‘낮춤, 비움 그리고 중용과 평화의 시’에서 “시인은 새로운 패러다임, 곧 중심이 해체되거나 모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며 “시인은 현실 삶 속에서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말하자면 ‘중심에서 중용으로’ 가야 할 삶의 방향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겨울에도 어는 일이 쉽지 않은 세월
모두가 잘못될 것에 대하여 겁이 없어졌다
전기를 믿고 난방 기구를 믿고
원자력 발전을 조상처럼 믿어
춥지 않은 겨울에 대하여 겁이 없어졌다
북극에서는 빙산이 녹아내려
북극곰은 녹아내린 얼음에 발걸음이 둥둥 떠내려가고
빙하 속 바이러스가 살아나 순록이 쓰러지고
꿀벌이 떼로 죽어도
그다음 누가 죽을지 겁이 없어졌다
겨울 아파트에서는 반팔 티 입고
맛집을 검색하여 시켜 먹으며 겁이 더 없어진 사이
얼음 아래서 조용히 겨울을 지내려던 쉬리 갈겨니
얼음이 얼지 않아 잠들지 못하는 겨울
이제는 겨울도 따뜻하게 죽어 가고 있다
그다음 누가 죽을지에 대하여
모두가 겁이 없다 없어졌다

– ‘잠들지 못하는 겨울’ 전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안 그런다고 // 안 그런다고 다짐해 놓고 // 시에다 // 또 // 잔소리만 잔뜩 퍼붓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시인은 인류 생존의 위기에는 잔소리를 참을 수 없었는지 ‘도도여, 도도여!’에서 멸종한 새 도도를 호출하고, ‘잠들지 못하는 겨울’에서 담담한 일상의 말들로 기후재앙으로 닥칠 인류의 멸종을 경고했다.

시인의 철학적 사유가 보이는 ‘중심과 중용’, ‘자전거와 지구’를 비롯해 고향 경북을 소재로 쓴 ‘판전’, ‘주산지에 와 보니’, ‘가야산 해인사’ 같은 시편을 담았다. 팔공산 갓바위를 두고 쓴 시 ‘갓바위에 묻다’는 부처의 선문답 같은 말씀과 재치있는 대답이 눈에 띄는데, 시인이 외친 마지막 문장은 “오마이 갓!”이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창립 30주년 기념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대회’에서 대금 연주를 선보인 김윤현 시인(사진=정용태 기자)

봄날이었을 것이다, 꽃을 보며

누군가는 울기를 구만두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슬픔을 비워 냈을 것이고

그 누군가는 고독을 녹여 냈을 것이다

그래서 봄날은

꽃이 없으면 안 되겠기에

당번을 정하듯 꽃들을 교대로 피우는 것이리라

– ‘꽃 피는 봄날’ 전문

김윤현 시인은 195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사대 국어과를 졸업하고, 1984년 <분단시대>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질까>,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다>, <들꽃을 엿듣다>, <지동설>, <발에 차이는 돌도 경전이다>, <대구, 다가서 보니 다 詩였네> 등이 있다. 1994년 계간 <사람의문학>을 공동 창간했으며 현재 편집위원이다. 대구작가회의 대표를 지냈고,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