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역사] 잡아야 할 벼 도둑은 잡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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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음력 9월 18일, 아침 댓바람부터 여종 옥단玉丹이 노상추 선생의 집을 두드렸다. 옥단은 문동文洞에 있는 큰댁의 여종으로 무언가 큰일이 난 듯했다. 형님이 돌아가신 후 큰댁에는 형수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조카들밖에 없는지라, 노상추도 늘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노상추의 누이가 같은 마을에 살고 있어 한 번씩 들려보고는 있지만, 그래도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노상추였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했다. 옥단은 분이 풀리지 않는 목소리로 저간의 사정을 아뢰었다. 한창 추수의 계절이다 보니, 큰댁에서도 고남古南에 있는 논에서 벼를 추수해서 말렸다. 벼가 다 말라야 탈곡을 하고 쌀을 찧을 수 있으니, 며칠을 말렸다가 거두어들이는 일은 농사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다 말린 벼를 거두어들이려는 날 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벼 도둑들이 들이닥쳐 10마지기가 넘는 논에서 거둔 벼를 모두 훔쳐 가버렸다. 이 마을의 나락 베는 일과 벼 말리는 일정을 잘 알고 있는 이의 소행이 분명했다.

고남의 논은 10마지기나 되었다. 워낙 대규모의 피해이다 보니, 큰댁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댁 집안 종과 가까이 있는 시누이 집 종들까지 동원해서 마을을 탐문하고 살피게 했다. 그런데 이게 사단을 만들었다. 시누이 집의 여종 계란戒蘭이가 하필 헌덕獻德댁 베 짜는 곳을 기웃거렸는데, 이를 본 헌덕댁에서 베를 짜는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우리를 도둑으로 몬다’며 큰 소리를 치고 급기야 큰댁까지 밀려왔다. 그리고는 노상추의 어린 조카들을 붙잡고 머리채를 당기며 옷을 찢고 욕하며 때리기까지 했다. 이들이 안채에까지 들이닥치는 통에 노상추의 형수는 넘어지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직 어려 세상 물정 모르는 조카들이 실수한 것도 있었다. 노상추의 생각에 아무리 벼를 도둑맞았더라도 사람을 풀어 마을을 뒤지는 일은 동네 인심을 사납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일년 농사 전체를 도둑맞았으니,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후한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데, 당시 헌덕댁을 기웃거렸던 여종 계란이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는 당시 수색이 동참한 것도 아니었다. 헌덕댁에 많은 여인들이 모여 베를 짠다고 하기에 궁금한 마음에 들려본 것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레짐작만으로 자신들을 도둑으로 몬다면서 양반집에 몰려들어 행패를 부렸으니, 양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었다. 감정이 꼬일 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옥단은 씩씩거리면서 노상추에게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어린 조카들까지 봉변을 당했으니, 노상추 입장에서도 집안의 남자가 나서야 할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거센 고을 인심을 생각해 보면, 노상추의 등장은 기름을 끼얹는 일이었다. 노상추는 우선 조카인 노정엽에게 “저들이 비록 인륜이 없더라도 너는 예로써 대해 스스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다. 옥단은 억울한 마음에 노상추가 와서 직접 일을 바로잡아 주기 원했지만, 노상추가 보기에 지금은 진정시키는 게 필요했다. 아무리 양반과 양민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것마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난 상태라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양민이 양반집에 뛰어들어 어린 조카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린 것은 쉬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상추는 사람을 시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동의 원인은 이 일 하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5~6일 전에도 고남에서는 벼 도둑이 한 차례 말려 놓은 다른 집의 벼를 쓸어간 적이 있었다. 상습범의 소행이었다. 그런데 당시 피해자들은 어떤 이유였는지 점삼占三이 집과 검동黔同네 집을 조사해 달라고 관아에 요청했고, 강제로 그 두 집에서 잃어버린 만큼 벼를 징수해 갔다. 점삼이와 검동이가 벼를 훔친 것은 아닌 듯한데, 몇몇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점삼이와 검동이에게 돌렸던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상추의 큰댁에서 벼를 도둑맞았고, 큰댁의 종들도 검동이의 집을 또다시 수색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검동은 헌덕댁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헌덕댁은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큰댁의 시누이 집 종 계란이 헌덕댁을 기웃거렸으니, 사단이 날 만하기는 했다. 며칠 뒤 큰댁 종 일만日萬이 다시 찾아와 헌덕댁 사람들이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을 알려 왔다. 아무래도 노상추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노상추는 이번에도 일단 피하라고 답했다. 지금 노상추가 나서서 처리해 보려 한들, 한 해 농사지은 쌀이 걸려 있는 헌덕댁인들 쉽게 물러날 리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도 농촌에서는 추수해 놓은 농작물을 도둑맞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해, 시골 인심이 각박해진 적이 있었다. 마을마다 CCTV를 달고, 낯선 차의 마을 출입을 금했다. 특히 낯선 사람이 트럭이라도 몰고 나타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몸에 받아야 했다. 낯선 이는 잠정적 도둑으로 치부되었고, 이처럼 예민한 시기에는 낯선 마을 방문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지금도 그러한데, 234년 전인 그때야 오죽했을까?

범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잡아야 할 사람은 벼 도둑인데, 싸움은 노상추의 큰댁과 헌덕댁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큰댁과 헌덕댁 편으로 양분되었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들만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마을 공동체는 무너졌고, 벼 도둑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도 만들지 못했다. 제삼, 제사의 벼 도둑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또다시 전개되고 있었다. 이렇듯 범죄는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유리한 나비효과를 타고, 계속해서 범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아니, 피해자들이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