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慘事 추모시] 너만 없고 다 있다 /김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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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고 다 있다

김수상

보이던 게 안 보인다
안 보인다, 보이던 것이 안 보인다
책이며 옷이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다 있는데
너만 안 보이고 다 있다
너만 없고 다 있다

보인다
생일날 니가 써준 이모티콘 가득한 편지가
보인다
웃고 있는 너의 사진이
보인다
너에게 소리 질렀던 잘못한 일들이
보인다
말없이 무거운 짐을 들어주던 너의 어깨가

따뜻한 밥이라도 같이 먹을 걸
동네 골목길이라도 같이 걸을 걸
니가 좋아하는 노래라도 같이 들을 걸

들린다
아악, 아 아악, 누르지 마세요.
아빠 살려주세요, 엄마 살려주세요.
깔려 죽을 것 같아요. 꺼내 주세요.
제발 빨리 출동해주세요.
숨이 막혀요. 제발 제 손을 잡아주세요.

공부만 하다 깔려 죽고
일만 하다 깔려 죽고
이제 겨우 취직했는데 깔려 죽고
이제 효도란 걸 좀 해보려다 깔려 죽고
꺼내 달라고 신고하다 깔려 죽고
죽고 죽고 죽고

내가 깔려 죽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내가 숨이 막혀 손을 내밀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시민들이 울면서
심폐소생술을 할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첨단 IT 강국이면 뭘 하나
국내총생산 세계 10위면 뭘 하나
세계 속의 한류면 뭘 하나
나 하나 꺼내 주지 못하는데

깔려 죽은 나를 두고 서로 싸우는 나라
불에 타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이제는 길에서 깔려 죽는 나라
참사라 해도 좋고 사망이라 해도 좋다
희생자라 해도 좋고 사망자라 해도 좋다
꽃을 돌이라고 해도 좋다
흰색을 검은색이라고 해도 좋다
내 아들 내 딸만 살려내라
잠만 처자빠져 자지 말고
금쪽같은 내 아들 내 딸 살려내라

안 보인다
어제까지 보이던 니가 안 보인다
없다, 없다, 없다,
너는 없는데 저것들은 다 있다
제발 대답 좀 해보라
몸은 어디로 가고 신발만 돌아온 나라여,

믿고 맡겼던 저것들도 아직까지 자리에 앉아있는데
너만 없고 다 있다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애도의 시간이라고?
애도? 애들도 다 알고 있다
진짜 애도는 추궁을 통해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임을
지금은 울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하는 시간
지금은 울면서 밝혀야 하는 시간
지금은 울면서 싸워야 하는 시간
진상을 밝히려다 진상이 된 나라여,
함께 지는 저 낙엽들에게 좀 배워라
이제 당신들이 대답할 차례다

김수상
의성에서 태어났다. 2013년 『시와표현』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 『편향의 곧은 나무』,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 『물구라는 나무』가 있다. 제4회 박영근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