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기적보다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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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소식만 전해지던 중 단비 같은 희소식이 전해졌다. 경북 봉화군 한 광산에서 매몰된 노동자 두 사람의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다. 지난달 26일 저녁 광산 붕괴로 매몰된 두 노동자는 221시간을 추위, 배고픔과 싸우며 견딘 끝에 4일 밤 두 다리로 지상을 밟았다. “기적적으로 구출될 줄 몰랐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기적’으로 이들의 생환에 감사했다.

구조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들을 보면, 이들의 생환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마땅히 대비해야 하고, 갖춰야 할 것들.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할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이 확인되는 절망 속에 피어 올린 ‘기적’이란 말이다.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다는 광산은 주인만 달리한 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위험을 내재하고 21세기를 보내고 있다.

사고가 난 광산은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안전진단에서 작업을 멈추고 차량과 사람의 접근을 금지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채굴업체가 산자부의 명령에 따라 위험 요소를 얼마나 제거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 붕괴된 곳과 동일한 갱도에서 지난 8월 또 다른 붕괴가 있었고 1명이 숨졌다.

업체는 이번 사고 은폐 의혹도 받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26일 저녁 6시께였지만, 119에 신고한 시각은 다음 날 오전 8시 34분경이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에는 190m 아래 갱도에서 광부 7명이 작업 중이었다. 이 중 2명은 사고 후 2시간 만에 자력으로 탈출했고, 3명은 5시간 만에 업체 자체 작업으로 구조됐다. 업체는 사고 발생 후 14시간 동안 사고 사실을 외부로 알리지 않다가 뒤늦게 119에 신고했다. 밤샘 구조 작업으로 신고할 여유가 없었다는 게 업체의 해명이다.

광산안전법상 사업자가 갖춰야 할 광산안전도는 이름만 ‘안전도’였다. 20년 전에 만든 안전도를 보고 사고자들에게 식수와 음식을 공급하기 위해 진행된 시추 작업은 무위로 돌아갔다. 뚫어낸 구멍 아래에는 빈 공간 조차 없었다. 이쯤되면 완벽하게 유명무실한 안전 시스템이라고 평가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4일밤 봉화 광산 붕괴사고로 매몰됐던 사고자들이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경북소방본부)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가 발생한 밤 10시 15분 이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참사를 예견한 듯한 신고 11건이 있었다. 11건 중 6건에서 압사가 언급됐고, 9건은 사고 발생지 인근을 지칭하며 신고가 이뤄졌다. 하지만 경찰은 있는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112 신고 접수·지령 매뉴얼’에 따르면 ‘다수 신고자에 의한 중복 신고 항목’은 대형 재난·재해 등 동시다발 신고가 예상되는 경우 접수자가 상황팀장에게 통보하고 상황팀장이 모든 근무자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상황실에선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고, 이날 밤 11시가 넘어서야 소방청→경찰청→상황팀장 순서로 참사를 인지했다.

매뉴얼,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는 ‘기적’을 바라는 선량한 시민 개개인의 동분서주로 채워졌다. 이미 심장이 멈춘 희생자들의 가슴을 팔이 빠져라 눌러대고, 목청이 터져라 사람이 죽어간다고 소리쳤다. 서로가 서로를 들어 올리며 또 다른 희생을 막았다. 그렇게 기적이 또 다른 기적을 만들었다. 무너진 시스템을 선량한 개인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탱한 것이다. 그래서 ‘기적’은 추앙할 것이 아니라 경계해야 한다. ‘시스템을 지탱하라’ 권한을 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가 될 것이 자명하므로.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