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7) 의회 경고에도 희망 회로만···경산지식산업단지 유동성 위기 전말

경산시의회, 사업 위험성 여러 차례 지적
끝나지 않은 유동성 위기
당장 차환한 170억 원, 이자율도 중요
"기존보다 파격적인 이자율 제시했을 것"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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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지식산업단지 발행 어음 만기 직전 일부 투자사의 투자 포기로 빚어진 사업자의 채무불이행 위기는 한고비는 넘긴 분위기다. 경산시가 급히 추경예산 279억 원을 편성해 채무불이행 사태를 대비했고, 당장 9일 만기 되는 채권 170억 원은 신규 투자를 유치한 덕이다. 다만 여전히 어음 1,000억 원 이상이 순차적으로 만기를 앞두고 있다. 레고랜드발 투자 기피 현상도 숙지지 않아 유동성 부족 위기 가능성은 여전하다.

유동성 위기 속, 경산지식산단 민간개발사자의 자구 노력보다 경산시의 분주한 모습만 눈에 띈다. 경산시가 민간사업자의 사업비 조달을 위해 특수목적기업(SPC)이 발행하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특수목적기업이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 2,717억 원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업에서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금액보다 큰,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최대규모다.

경산지식산단 사업이 건실하게 진행됐다면 지급보증에 따르는 위험성은 그만큼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업은 장밋빛 전망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사업 부실에 대한 경산시의회의 수십 차례에 이르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산시는 희망 회로만 돌린 것으로 확인된다.

▲11월 경산지식산업단지 내 부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경산시의회, 사업 위험성 여러 차례 지적
경산시는 긍정적 전망 일관

시의회 지적은 경산지식산단 사업자인 경산지식산업개발㈜가 설립된 2012년도부터 확인된다. 당시부터 최근까지 확인되는 시의회 지적사항은 ▲민간 사업자 이익만 보장해주는 불합리적 계약(독소조항) ▲사업비로 경산시 예산 과다 지출 ▲입주 기업, 부지 내 아파트 등 부동산 수요 과대평가 ▲인근 일반 산업단지와 차별성 부족 등으로 추려진다.

경산시는 산단 산업연구물류 용지 분양이 75%에 미달할 경우 경산시가 매입하도록 확약했고, 사업비 대출을 위해 경산시가 지급 보증에 나서 불합리한 계약을 맺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의회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사전 설명 없이 경산시가 사업자와 협약부터 맺었다.

2013년 5월 22일 경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경산시 대출약정 참여와 미분양 시 매입 조항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오전에 개회한 회의는 오후까지 이어졌는데, 의원들은 우려 제기를 하고도 경산지식산업지구개발사업 관련 실시협약과 의무부담 동의안을 원안가결했다. 의회가 위험성을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며 동의안 가결에 반대한 의원은 1명(박정애 통합진보당 경산시의원) 뿐이었다. 아래는 당시 회의의 한토막이다.

박정애 위원 위원장님, 그런데 우리 의원들에게 동의안을 낸 것은 우리의 고유권한인데 이 부분들에 대한 책임이 차후에 이러한 위험들이 발생되지 않게 하려고 집행부가 상당히 노력을 할 겁니다.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일이 터졌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우리 의원들이 받아야 됩니다. 나중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법적인 문제로든지 아니면 도의적인 문제로든지 책임을 져야할 시기가 왔을 때 그 책임을 지시겠습니까?

위원장 박형근 그 관계는 아까 정회시간에 충분히 논의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다 알고 있는 상태이고.

박정애 위원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정말 조금 더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장 박형근 박 위원님, 이미 누차 여러 가지 이야기가 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위원님 생각은 그렇지 않으니까, 박 위원님 생각만 그런 것이니까,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잖아요?
의견의 일치가 안 되니까 표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박정애 위원 저는 책임을 지시겠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지실지 모르겠는데 이게 우리 예산이 1조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가는데.

위원장 박형근 그것을 모르는 상황 아닙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박정애 위원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책임을 지시겠습니까?

성기호 위원 집행부의 부시장까지 불러서 얼마나 심도있게 논의를 했습니까? 나는 이제 더 논의를 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회까지 해서 다 논의한 것을 또 새삼스럽게 그러고, 그러면 새로 할 겁니까?

위원장 박형근 이의가 들어왔으니 가부결정을 합시다.

박정애 위원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도 더 논의할 시간이 있는데 왜 이렇게 급박하게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위원장 박형근 거수로 표결을 하겠습니다. 원안대로 가결하자는 분 거수로 표결해 주세요.
(거수표결 : 5명 거수)
예, 5명입니다. 그러면 원안대로 가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위원님, 됐지요?

불합리한 계약은 최근 경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소속 이선희 의원(국민의힘)은 경산지식산업개발㈜에 출자한 건설사는 모두 이익을 얻었는데 경북개발공사는 대처가 없다고 지적했다. 경산지식산업개발㈜는 현재 대우건설이 29%, 경북개발공사 19%, 한국투자증권 19.9%, 하이투자증권 10.1%, 대저건설 9%, 신흥건설 7%, 태왕이앤씨 6%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경산지식산업개발㈜에 출자한 대우건설 등 건설사들은 사업 성패와 무관하게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부지 조성, 건축 공사 사업 수주 등을 통해 영업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출자사인 투자증권사는 어음 이자를 통한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공기업인 경북개발공사와 지급보증에 나선 경산시는 보장된 이익은 없고 손해 또는 손해에 대한 위험만 부담하는 상황이다.

이재혁 경북개발공사사장은 “개발공사는 사업청산 이익에 대해 지분을 받는다”며 “투자에 대한 이익을 챙기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건물하고 차량 부품도, 땅 사고 건물 지어준 시국에 또 세 건 200억 이상 투자되어야 되잖아요”
_  이기동 자유한국당 경산시의원, 2018년 7월 19일 경산시의회 행정사회위원회

“경산시에서 평수로 환산하지는 않았지만 최대치는 3만 4,000평부터 작게는 1,500평정도 규모의 땅을 7군데에서 사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걱정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유심히 관찰하고 진행을 보겠습니다. 잘못되면 경산시가 아니라 시민의 손실”
_ 김봉희 국민의힘 경산시의원, 2020년 6월 9일 경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민간사업에 대한 경산시 예산 과다 지출 문제도 지적됐다. 경산시가 2013년 작성한 경산지식산업지구개발사업 설명자료에 따르면, 사업비 총 1조 363억 원 중 국비 2,161억 원, 도비 548억 원, 시비 1,279억 원이 배정됐다. 민간사업자를 위해 합계 3,988억 원의 세금이▲진입도로 ▲내부간선도로 ▲용수시설 ▲폐수시설 ▲지하철 연장 등에 쓰였다.

“(경산지식산단)1단지 쪽 H 아파트, W 아파트 2개 모두 분양률이 굉장히 낮은 상태다”
_ 남광락 더불어민주당 경산시의원, 2019년 11월 18일 산업건설위원회

“일반산업단지와 지식산업단지가 별다른 게 없다. 기업도 경산시에 있는 기업이 희망을 많이 하더라. 그렇다면 기존 지역에는 슬럼화가 되는 것···그와 관련한 연구단지, 건물, 땅, 운영비도 줘야 한다”
_ 엄정애 정의당 경산시의원, 2018년 11월 22일 산업건설위원회

입주 기업·부지 내 아파트 등 부동산 수요 과대평가, 인근 일반 산업단지와의 차별성 부족 등 지적도 나왔지만, 경산시는 긍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2017년 6월 15일 산업건설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장호원 당시 경산시 경제환경국장은 “경산은 타지역과 다르기 때문에 분양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대우건설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에서 만약에 너 돈 투자해라, 땅 안 팔리면 시에서 일정부분 부담해줄게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기 때문에 SPC에 대우건설이 그 당시에 어려운 상태에서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2021년 6월 8일 산업건설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최윤정 경산시 중소기업벤처과장은 “지식산업지구가 타 경자구역보다 분양이 잘 되지만 일반 제조업보다 신세계라는 대기업이 하나 들어오면서 저희 시의 고용 창출이나 여주나 시흥처럼 경산의 지역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경산 프리미엄 아웃렛이라는 명칭이 되기 때문에 그 하나만으로 경산을 홍보하는데 큰 가치가 있다”고 신세계아울렛 입점 가능성을 두고 긍정 전망을 소개하기도 한다. 현재 신세계아울렛은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지 용도 관련 적합성 등 협의 난맥으로 기약은 없는 상황이다.

박정애 전 경산시의원(현 경산시 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은 “최경환 장관 시절에 진행된 사업인데, 당시 검토해보니 인근 큰 산업단지도 많아서 지리적으로 큰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됐다. 그런데도 시 입장에서 불합리적인 조건을 걸고 사업을 진행했다”며 “혈세 낭비 부분에 검토를 충분히 하고 싶었는데 압박이 심했다. 다른 의원들도 지적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최경환 장관과 고위 공무원이 추진하는 사업에 반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와서 여러 위험성이 드러나고 있는만큼, 나를 포함한 책임자들의 책임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산지식산업지구 착공식에 최경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했다. (출처=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끝나지 않은 유동성 위기
당장 차환한 170억 원, 이자율도 중요
“기존보다 파격적인 이자율 제시했을 것”

정부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대형 증권사들이 조성하는 채권시장 안정펀드 등을 통해 중소형 증권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매입한다는 취지의 자금시장 안정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같은 대책에도 기본적으로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당분간 자산유동화기업어음 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 활성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공인회계사는 “PF자금이 말라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업비 조달이 어려울뿐더러 자금 경색 상황이 지속되면 기본적으로 (신규 투자나 차환 시) 이자율이 10%는 넘어갈 수도 있다. 그 비용을 다 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 와중에 (기업의) 부동산 같은 자산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이라서, 사업성 자체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자율을 높게 제시해도 투자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양적완화 시기에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어서 영업 손실이 나는 기업조차 차입금을 끌어와서 사업을 많이 진행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기 침체기다. 사업성이 불투명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투자 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산지식산단이 9일 만기 도래한 어음 170억 원을 새로 투자받았다 하더라도, 기존 이자율보다 더 높은 이자율을 제시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자율과 관련해 경산시는 “기업의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자산유동화 방식 채권 상품에서 지급보증은 이자율을 줄이는 측면도 있어, 문제가 불거지지만 않으면 효율적인 방식일 수는 있다”면서도 “취약성도 있다. 지방정부가 보증채무를 지면 기본적으로 우발채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현실적 채무가 된다. 어음(ABCP)은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계약 마다 (손해 우려가 없도록) 완벽하게 해야 한다. 경산시가 지급보증 했으면 결국 경산시의 채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정부나 한국은행에서 제시하는 채권시장 안정화 대책이 어느 정도 시장 안정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큰 흐름은 금리와 부동산 시장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대책”이라며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시 (채권시장의) 자금 조달에도 부담이 생기고, 부동산 가격도 경착륙 하는 상황이 되면 (경산지식산단과 같은 부동산 PF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산지식산업지단지 조성 사업은 기계부품특화단지, 첨단메디컬신소재, 첨단의료기기, 연구시설 등 관련 기업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2012년 시작됐다. 현재 1단계(280만 9,000㎡)는 공정률 98%, 2단계(98만 7,000㎡)는 공정률 60%다. 1단계 산업용지는 2015년 분양을 시작해 분양률은 93.4%이며, 2단계는 조성이 완료된 부지 중 33.3%를 분양했다.

▲11월 경산지식산업단지 내부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