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FBI 심리분석관이 가르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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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윌슨은『살인의 철학』(대운당,1978)에서 연쇄살인과 이상범죄를 ‘문명의 과부하에 짓눌린 인간이 내지르는 비명’으로 해석했다. 그는 문학평론가였다. 연쇄살인과 이상범죄의 현장을 누빈 범죄 프로파일러의 책으로 한국에 처음 번역된 책은 로버트 K. 레슬러와 톰 샤흐트만의『FBI 심리분석관』(미래사,1994)이다. 그 후로 범죄 프로파일러의 책이 허다하게 출간되었지만, 그 어느 책을 선택하든『FBI 심리분석관』의 복습에 지나지 않는다.

연쇄살인은 똑같은 살인자에 의해 1회 이상 일어난 살인을 일컬으며, 이상범죄는 금전적 이득처럼 드러난 동기가 뚜렷하지 않는 범죄를 일컫는다. 형식의 범주와 인식의 범주는 하나로 취급될 수 없을 것 같지만, 범죄 프로파일러들은 연쇄살인과 이상범죄를 별개로 보지 않는다. 이상범죄는 거의가 성적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저질러지는데, 환상은 만족을 모른다. 때문에 이상범죄의 장본인은 자신의 환상을 완성시키고자 거듭 범행에 나선다.

정상이었던 사람이 35세를 넘어서면서 갑자기 사악하고 파괴적인 살인자가 되는 일은 절대 없다. 동물학대나 여성의 속옷을 훔치는 성충동 유발 절도 등, 이들이 악명을 떨치게 될 전조는 사춘기나 그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다. 속류 사회학자들은 “살인범들의 공통점은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나온다고 단언하기도 하는데, 레슬러는 많은 살인범들은 “절망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수입이 안정된 가정에서 삶을 시작”했으며, 반 이상이 “처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사는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말한다. 문제는 가난이나 양친의 존재 유무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기능부전(機能不全: 정해진 목적을 수행하기에 기능과 힘이 불완전하거나 부적당한 상태)에 빠진 가정이 문제다.

연쇄살인범이자 이상범죄자들은 사이코패스라는 말로 더 익숙한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를 겸하는데, 사이코패스와 극단적인 나르시스트는 호환이 가능하다. 실제로 제프리 클루거가『옆집의 나르시스트』(문학동네,2016)에서 열거한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은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빼닮았다. 두 부류는 공감 능력이 없으며, 자기중심적이고, 주변 사람을 이용하고, 밥 먹듯 거짓말과 허풍을 떨고, 책임을 지거나 실수를 인정하는 법이 없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나는 절대 안 잡혀!’라는 자만에 빠졌다가 전기의자에 앉게 되는데, 이 역시 나르시시즘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레슬러가 짚었듯이, 클루거 또한 나르시스트는 집안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나르시시트 대학생들의 현재 성격과 과거 성장 과정을 분석한 연구들은 “연구 대상 중 상당수가 칭찬을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너무 적게 베푸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났으며, “아이가 무언가를 성취하면 박수를 쳐주고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었지만 진정한 따뜻함이나 묵묵한 관심을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수는 있지만, 서로의 성과를 비교하는 것 말고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나르시코패스(narcissist + psychopath)가 양산된다.

『FBI 심리분석관』을 읽으면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범행과 범죄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에만 몰입하면, 사람만 보느라 이 책의 또 다른 측면인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역사와 제도를 놓치게 된다. 레슬러가 FBI에 출근한 1970년에는 범죄 프로파일링을 담당하는 행동과학부가 없었다. 행동과학부는 1974년쯤에 만들어졌는데 FBI의 상층부는 범죄 심리 분석 자체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FBI는 범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엘리트 집단이며 FBI의 목적은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것이지,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거나 외부에서 불러온 심리학자들의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레슬리와 그의 동료들이 FBI의 관료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은 “허락을 구하기보다 용서를 구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설득하는 전략은 압박받는 청소년과 연인들이 부모나 학교에 대항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