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서로 힘이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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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탄생 100주년인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남기신 “서로 힘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말씀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요즘 어떤 일이 생기면 수습도 하기 전에 서로 탓하고 질책하는 것을 더러 보게 된다. 자기 성찰은 보이지 않는 이 시대를 미리 꿰뚫어 보고 하신 말씀이다.

서로 힘이 되어 주려면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함을 추기경의 삶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하면 힘이 절로 솟아난다. 그 반대가 되면 분노가 솟구침을 경험했을 것이다.

▲[사진=’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제공]

“내 탓이오”. “네 탓이오.” ‘내’와 ‘네’의 표기 차이지만 뜻은 천양지차이다. 함께 일하다가 누가 실수했을 때, “내 탓이오.”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닙니다. 저도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반대로 “네 탓이오.”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을 하십니까? 내가 뭐 잘못했습니까?”라며 따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 어떤 조직일지라도 서서히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진다.

추기경께서는 90년대 “내 탓이오” 운동을 펼치셨다. 진정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며 ‘내 탓이오’라고 인정하는 언행일치의 삶을 실천궁행하셨다. 시대의 큰 어른이 누구보다 겸손하고 직접 몸으로 보여 주니 이 운동은 온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필자는 김수환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추기경께서는 12살 때까지 경북 군위읍 용대리에서 사셨다. 추기경 부모님께서 용대리에 집을 마련하기 전, 이웃에 산 필자의 조부모 집에서 반년을 지내셨다.

이와 같은 귀한 인연 덕분에 온 가족이 기독교이지만 모두가 김수환 추기경을 그지없이 존경한다. 명절 때면 당연히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나눈다. 선종하신 이후에는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용대리에 있는 ‘사랑과 나눔의 공원’을 찾는다. 언행일치의 삶과 그 누구보다 겸손하시며 시대를 이끈 통찰력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이유로 새로운 갈등이 일어난다. 책임 인사의 태도가 중요하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자신부터 돌아봐야 해결책이 보인다. 상황이나 남 탓으로 돌리면 질책만 보일 뿐이다. 수신이 안 된 인사의 질책은 반발을 낳는다. 현재의 문제만 꼬집는 사람은 과거에 발목이 잡힌다. 자칫 사고보다 더 큰 갈등에 휘둘리게 될 수 있다.

자신의 탓으로 인정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실내에 불을 켜면 밖이 안 보이는 것과 같다. 자기 내면은 보이지만 타인은 보이지 않으므로 남을 질책하려 해도 질책할 수가 없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따뜻한 온기가 있다. 그 따뜻함이 누군가에게 힘을 준다.

어젯밤에도 ‘사랑과 나눔의 공원’에 갔다. 어둠이 내린 공원에서 사랑과 나눔이 없어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삶을 돌이켜 보았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돕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고 돕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추기경의 환한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 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머뭇거리다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힘이 난다. 이 다짐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