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업무개시명령과 법치주의 / 김해원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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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화물연대 파업 관련 “시멘트 분야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 개시 명령을 발동한다”며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모양이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노사 법치주의”라는 해괴한 용어는 처음 들어보는 데다가, 대통령이 법치를 거론하면서 권력 행사를 향한 확고한 의지와 절대적 불타협을 거론하니 일개 국민으로서 망측하기 그지없다.

법은 절대적 정의나 절대 선의 표상이 아니다. 특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법은 본질적으로 타협의 산물이며, 제한된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서 상대적 타당성과 합리성을 일부 담보하려는 불완전한 시도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법 그 자체 또한 성찰의 대상이며 또 그래왔다. 계속되는 법률의 제·개정과 법률에 대한 위헌 선언 등은 법의 불완전함에 대한 뚜렷한 증거이기도 하다.

하물며 법에 따른 통치, 즉 법치주의는 (권력 행사의 효율성과 확고함을 뒷받침하려는 이념이 아니라)법 그 자체도 정의롭지 못한 것일 수 있다는 의심과 함께 법에 내포된 타협의 정신을 존중해서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절제할 것을 요청하는 권력 통제를 위한 이념이다.

설사 불법을 응징해야 할 경우더라도, 위임받은 권력을 정의 실현을 위한 확고한 신념에 따라서 행사해서는 안 된다. 권력 행사에 있어서 확고한 태도는 대개 난폭함으로 드러나고, 신념은 자의를 거룩하게 하는 치장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법이라는 낙인의 정당성과 근거를 되묻고 법의 정신에 대한 존중과 법에 따른 제약 아래에서 삼가고 삼가서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권력을 사용하도록 통제하여 국가폭력을 순화하고 권력 행사에 따른 인권 훼손을 억제 및 최소화하려는 것이 법치주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치는 공권력 주체의 ‘주저함’이나 ‘자제’ 및 ‘성찰’과 호응하는 이념이지, 권력의 확고한 행사를 위한 ‘결연함’이나 ‘비장함’ 혹은 ‘불굴의 의지’ 등과 어울릴 수 있는 이념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확고한 권력 행사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면서 법치에 기대는 것은 양두구육, 그러니까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매하는 격’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장으로서 국무회의에 상정된 심의 안건인 ‘시멘트 분야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가결되었음을 선언하고 의사를 정리할 권한은 있어도, “시멘트 분야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선언할 권한은 없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14조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발할 수 있는 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장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또 다른 헌법기관인 ‘행정 각부의 장’과 그의 권한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것으로서, 법치국가의 권력기관다운 발언과 거리가 멀다.

권력이 법치를 말한다고, 법치국가가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법에 기대어 권력 행사를 절제하는 데 애쓰기보다 권력 행사를 법으로 치장하는 것에 급급하면, 권력을 제어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 법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면서 권력 집중의 위험성과 권력 남용의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거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계기가 되어왔음을, 권력은 기억해야 한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29일 진행한 결의대회 이후 지역별 거점에서 투쟁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화물연대본부 대구경북지부 제공)

2.
물론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법률(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른 것이다. 특히 해당 법률 14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하여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조항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은 운송사업의 경영에 대한 국가의 일정한 통제 혹은 관리 조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업무개시명령이 헌법 126조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는 규정의 의미에도 부합하는 것인지를 권력은 고민했어야 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충분히 밝히고 설명했어야 하며, 언론은 권력의 설명을 면밀하게 검증했어야 한다. 검증의 결과를 바탕으로 권력은 자신의 판단과 입장을 다시 성찰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과 설명 및 검증 그리고 그에 따른 권력의 주저함과 성찰의 과정을 거쳐서 이번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었는가? 국토교통부 장관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기 전에, 헌법 126조에 따른 요건 특히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가 충족되었다는 점과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14조에 따른 요건 특히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성실하게 설명 및 입증하고 업무개시명령으로 자유로운 운송업무가 억압당한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한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특히 헌법은 32조 3항에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관련 법률을 집행해야 할 책임이 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행정 각부의 장 등과 같은 권력기관에 있다. 따라서 ‘안전운임제’ 고수 및 확대를 요구하는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전에, 정부는 우선 화물자동차를 이용해서 운송업무라는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근로조건과 그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데 적정한 것인지를 면밀하게 살피고 미흡한 부분들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했어야 했다. 과연 이러한 의무를 정부는 다 하였는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해주었기 때문이다.

3.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해야 할 당사자는 운송사업자와 운수종사자이다. 그런데 해당 법률상 운송사업자는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의 허가를 받은 자”라는 점에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을 경영하는 자를 겨냥한 것이고(3조), 운수종사자는 “화물자동차의 운전자, 화물의 운송 또는 운송주선에 관한 사무를 취급하는 사무원 및 이를 보조하는 보조원, 그 밖에 화물자동차 운수사업에 종사하는 자”라는 점에서 운수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겨냥한 개념일 것이다(2조 8호).

따라서 이번 국토교통부 장관의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운송에 관련된 사업자와 노동자 양자 모두에게 위협적인 권력 행사가 될 수 있다. 특히 운송업무를 하지 않으려는 운송사업 경영자(사용자)와 운수종사자(노동자)에게는 헌법이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강제노역을 강요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의 자유와 경영의 자유 양자 모두를 ‘노사 법치주의’라는 허명으로 위협하는 권력에 대항하여, 화물운송 노동자와 화물운송 사업자가 단결하고 이러한 단결에 (그동안 “경제의 민주화”를 강조해온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자단체는 차치하더라도) 자유를 특별히 강조해온 전경련 같은 사용자단체만큼은 자유의 이름으로 연대하여 함께 맞서야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맞섬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119조 1항을 통해서도 뒷받침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윤석열 정권은 유별나게 자유를 강조해오고 있으니, 자유에 기대어 억압에 맞서서 권력행사를 교정하는 것은 승산이 있다고 본다.

집권한지 1년도 안 된 합헌적 권력이 벌써부터 헌법정신을 왜곡하고 스스로 내건 가치를 폄훼하는 자기부정적 정권이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싫기 때문이다.

김해원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