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진 않는다 ‘악질경찰’

17:17
Voiced by Amazon Polly

국내에서 사회의 아픈 기억을 상업영화 소재로 삼은 사례는 꽤 많다. 범국민적 상처와 고통으로 남은 사건을 섣부른 신파나 분노를 담아서 아쉬움이 남기거나, 애도의 형식을 갖춰 호평을 받은 작품도 더러 나왔다. 다만 아물지 않은 국민적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에는 거부감이 크다. 사건과 영화 개봉의 시간차가 짧은 때는 영화계 안팎에서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나온다.

영화 <악질경찰>은 아직 아물지 않은 민감한 사건을 범죄 누아르란 상업적인 장르물 소재로 다뤘다. 이정범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보며 참담함과 분노를 느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범죄 드라마 장르에 녹였다”고 말했다.

영화는 범죄를 일삼던 비리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의문의 폭발사고에 휘말린 뒤 세월호 참사로 절친을 잃은 소녀 미나(전소니)와 얽히면서 인간적인 성장을 하고 폭발사고 배후의 악덕 재벌기업에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조필호는 세월호 참상을 기억하는 소녀를 만나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깨닫고 시궁창 같은 세상을 만든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각성한다. 결핍이 있는 남성의 범죄 누아르에 세월호 참사를 곁들인 선택은 최악으로 보인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의 상흔을 직접 드러낸다. 도입부부터 안산시, 단원경찰서 등을 보여주며, 실제 참사 당시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 변고를 당한 안산 단원고의 텅 빈 교실, 딸을 잃은 유가족의 사연 등을 부각한다. 그런데 조필호의 각성과 세월호의 관련성은 깊지 않다.

조필호가 처음 세월호 참사와 마주하는 순간은 참사 생중계를 TV로 보며 애인과 모텔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경찰이 유가족, 미나와의 조우로 정의감을 찾는다는 것은 아무리 주인공의 각성을 표현하는 장치라고 해도 쉬이 동의할 수 없다.

물론 미성년자 성매매를 강요하는 불법 산부인과 의사, 비리 검사 등의 악행을 겪으면서 변해간다고 하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관객은 얼마나 될까. 세월호를 매개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지 않아도, 세월호를 허구의 비극적 사건으로 대체해도 영화를 전개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영화가 세월호란 소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탓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사연과 부패한 기업, 검·경의 카르텔을 대비시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국민 감성과 동떨어진 표현 방법이다. 세월호를 화두로 어른들의 악행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은 이해하지만 적절하지 않다. 아물지 않은 세월호의 상처를 굳이 이런 식으로 들춰내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이 때문에 물이 가득한 욕조에 갇힌 조필호가 생니가 빠지도록 몸부림쳐 겨우 숨을 틔워내는 모습으로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것도 마뜩 지 않다.

세월호 참사가 상업영화라는 형식을 띠고 보다 많은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된다. “잊혀지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기억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공감 대신 다른 감정이 피워난다면 어떨까.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