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장 뤽 고다르 회고전, 대구 로컬 영화문화에 대한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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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활동에 집중된 현재 대구 영화담론 현실

단순한 소비자로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행위 이외에 대구지역에서 영화 관련 문화는 거의 전적으로 독립영화 창작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전체 비중으로 봤을 땐 미미하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현재 상시 상영관으로 운영되는 대구지역 극장 중 3대 복합상영관(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을 제외하면 오직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 1개 상영관이 지역 내에 존재할 뿐이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에는 예술영화전용극장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동성아트홀과 실버세대를 겨냥한 그레이스실버극장이 존재했지만 현재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240만 가까운 인구를 가진 광역시의 문화다양성 측면에선 분명 심각한 편중상황인 셈이다.

반면에 정규 영화학과가 부재한 지역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젊은 창작자들의 활약으로 적어도 독립영화계에선 대구지역에서 지난 몇 년간 선보이는 신작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다. 가내 수공업 형태로 몇몇 영화인들이 품앗이로 작업하던 것에서 2019년부터 지역 독립영화 관련단체들이 힘을 모아 개설한 6개월 과정의 ‘대구영화학교’ 커리큘럼이 4기째 이어지면서 매년 1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손가락으로 세어보던 지역 영화인 소집단에 4년간 48명의 신예가 추가된 것이다. 제작되는 편수도 대폭 늘어났고 비록 아직 영화지원정책이 활성화된 몇몇 지역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일지언정 지원사업도 제법 다양한 경로로 마련되는 중이다. 그렇게 ‘양’은 ‘질’로 전환되는 중이다.

하지만 창작역량이 축적되고 다양한 경향성이 엿보이기 시작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늘어만 간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명 여러 지점에서 개선이 이뤄졌지만, 그에 발맞춰 다음 단계로의 상승 이행과 함께 주변의 기대치 역시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런 전제 하에서 속칭 MZ세대 젊은 창작자들에게 집중된 현재 대구 영화판 상황은 몇 가지 선결과제를 창작 외부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는 중이다. 영화 창작을 위한 사전준비와 창작 이후 상영 및 배급과정이 창작 외적인 핵심 숙제가 될 테다.

첫 번째, 사전준비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점은 획일화되거나 답습하지 않는 다양성의 모색과 통한다. 영화적 현실을 이야기와 이미지로 빚어내는 과정에서 실제 창작자가 처한 상황과 속한 사회현실은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조건에 대한 조응을 통해 창작자가 선보이는 영화 속 세계는 다채롭고 흥미로워지게 마련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과 함께 이미 19세기 말에 탄생해 100여 년이 훌쩍 넘은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수련 역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고사성어 떠올리지 않더라도 중요한 전제가 될 테다. 타 예술 장르에 비해 역사가 짧다지만 대중문화예술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양산되는 영화매체의 역사는 이미 너무나 방대한 데다 상호교차하며 영향력을 주고받기에 창작자가 영화역사와 현재 최신경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지만 현재 한국 독립영화계 신작은 거의 전적으로 영화제에서 선택을 받아 소개되고 이 과정에서 평가와 실적을 내야만 ‘배급’ 유통되는 방식에 의지하는 중이다. 장편의 경우는 극장 개봉이라는 벽을 넘어야 하고, 단편의 경우는 영화제와 공동체 상영,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조금이라도 더 공개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하지만 장편은 복합상영관 유통망에서 비주류에 머물고, 단편은 제대로 된 상영환경과 주목을 얻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선 (1) 상영을 위한 (하드웨어적 조건을 일정부분 갖춘) 안정적인 공간, (2) 복합상영관에서 제공하는 상업영화 목록에 국한되지 않는 자체적 선구안을 가지고 다양성영화를 소화할 관객집단의 형성이 필수적 과제가 될 테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대구지역 영화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창작자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주목할 성과를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쌓아 올리고 있다. 아무리 호평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하지만 대부분 드라마 위주인 장르적 편중과 창작세대의 주요 관심사에 국한되는 소재 한계 등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조금 더 배가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창작자들이 고금의 영화사가 남긴 유산에 좀 더 천착하고, 자신들의 작업을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하고 호응할 관객집단을 우군으로 둔다면 이런 문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지역 내에서 다양성영화를 소개할 창구의 부족함과 창작집단에 긴장을 줄 관객집단의 미형성은 늘 숙제처럼 다가오는 중이다.

◆ 장 뤽 고다르 회고전을 둘러싼 전후사연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2022년 9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세계 영화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거장’의 죽음은 국내에서도 미디어를 제법 타기도 했다. 1930년생으로 1954년부터 영화작업을 시작했고, 세계영화사에서 한 장을 차지하는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사조의 한 축을 차지하는 감독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고다르는 그저 1960년대에 <네 멋대로 해라> 등의 상징적인 작품 몇 편으로만 기억될 존재는 아니다. 독립예술영화 평론의 아이콘이라 할 프랑스의 영화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로 활약하며 그전까지 제작사나 프로듀서 위주로 논해지던 영화를 감독이라는 ‘작가’의 예술로 재정의 내리는데 혁혁한 공적을 세운 것은 물론, 직접 창작에 나서 스튜디오 안에 갇혀 있던 영화를 현장과 거리로 해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 존재이기도 하다. 고다르와 함께 <400번의 구타>의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아녜스 바르다, 알랭 레네, 크리스 마르케, 장 마리 스트로브 등의 숱한 거장들이 이때 등장했다.

하지만 그 쟁쟁한 이름들 사이에서도 고다르는 더욱 특기할 만한 존재다.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으로 활약한 1960년대부터 60년간 끊임없이 작업을 계속해온 것도 대단하지만 대개 작품세계가 정착되고 나면 변주에 머무는 다른 감독들에 비해 중단 없는 새로운 경향에 도전하고, 영화라는 대중예술에 대해 지치지 않는 탐구와 도전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고다르는 변화무쌍한 실험을 말년까지도 멈추지 않았는데 누벨바그 시절의 파격을 뛰어넘어 68혁명 전후로는 ‘지가 베르토프 집단’ 명의로 비디오를 이용해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로 작품 활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 전후로 다시 극장상영으로 돌아와 상업적으로 허용 가능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3D 등 혁신적인 영상표현과 함께 당대 유럽과 세계의 불확실한 정세를 반영하는 실험영화들을 거듭 선보였다. 1명의 감독이 이렇게도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일 수 있는가 경이로울 만큼 고다르의 영화경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런 거장이 세상과 작별하자 세계영화계는 곧 뉴스 속보처럼 추모와 기념 특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발행 중인 영화주간지 ‘씨네21’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계열 ‘크리티크 M’ 등에서 추모특집을 발행했고,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는 마침 심사위원으로 영화제에 참석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 영화평론가 세르주 투비아나가 진행하는 <고다르와 누벨바그> 마스터클래스를 기획했다. 하지만 고다르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그의 본령인 영화상영으로 추모하는 기획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었다. 판권 수입의 문제와 명성에 비해 관객 동원이 쉽지 않은 예술영화 거장이라는 점이 난관으로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그런 다대한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고다르 회고전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부산에서 영화공동체를 추진하는 ‘씨네포크’와 누벨바그 작품 수입배급과 관련 출판 전문 ‘이모션 픽쳐스(북스)’가 함께 고다르의 작품목록 중 선별한 10여 편을 상영한다는 소식에 혹시 대구에선 기회가 오지 않을까 궁금한 나머지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너무나 소박하지만, 대구에서 소소한 이벤트를 궁리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 대구에서 고다르에게 작별인사를 전하게 된 경과

장 뤽 고다르 회고전은 본래 서울과 부산 일정을 기본으로 상영집단이나 극장들과 제휴를 통해 5-6곳 거점에서 순회상영을 구상하며 출발했다. 하지만 고다르라는 이름값과는 별개로 급하게 기획되어 별도의 지원신청 경로가 제약된 이번 회고전은 누구도 쉽게 받지 못하고 군침만 삼키는 ‘환상의 기획’처럼 취급되었다. 이미 분기별로 사전 기획된 프로그램이 채워져 있던 독립예술영화 극장과 몇 곳 되지 않는 시네마테크들도 문을 열기 난망한 조건이기도 했다.

한국의 3대 복합상영관 체인은 자체적으로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을 운영한다. CGV는 ‘아트하우스’, 롯데시네마는 ‘아르떼’라 표기한 상영관들이다. 그중 서울-부산-대구 롯데시네마 아르떼 관들이 고다르 회고전을 받았다. 그 덕분에 대구는 2022년 12월에 고다르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전국의 단 3곳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복합상영관 운영 특성상 영화상영 외에 독립예술영화극장들처럼 아기자기한 기획 이벤트가 준비되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상영만 휙 하고 지나간다면 그저 이름 모를 난해한 영화들 몇 편 상영되고 그치는 식이 되지 않을까 아쉬움이 교차한 나머지 별도의 기획을 작게나마 추진해봤다. 몇 번의 연락과 미팅을 통해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고다르의 이름을 건 소규모 상영회를 롯데시네마 아르떼 상영 앞뒤로 진행하게 되었다.

롯데시네마 아르떼 상영관에서 고다르 회고전 프로그램을 받아서 상영해준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그 덕분에 서울이나 부산에 가지 않고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냥 극장에서 시간 될 때 영화를 보고 나오는 것만으로 고다르라는 거장에 대한 회고와 기념이 완성되는 걸까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다. 상업영화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예술로서의 영화작품을 온전히 소화하고 교감하기엔 만만치 않은 노릇인데 고다르는 그중에서도 ‘첨단’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일평생 작업해온 거장 아닌가.

그래서 롯데시네마 동성로 지점 2관(아르떼)에서 12.10(토) ~ 12.18(일)까지 9편의 회고전 상영이 진행된 것과는 별개로 지역의 복합문화 공간 ‘필름통’(중구 동산동 454번지) 김중기 대표와 상의해 2차례의 상영회를 준비했다. 김중기 대표는 매일신문 영화담당기자와 대구문화재단 활동을 펼치며 현재 공간 명칭의 유래가 된 ‘필름통’ 예술영화극장을 2003년부터 운영하는 등 지역 영화문화에 꾸준히 관심 갖고 소개해 온 영화평론가이다. 새롭게 청라언덕-서문시장 인근에 문화공간을 개설했지만 마침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공간을 지역사회에 소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었다. 이번 기회에 좀 더 본격적으로 공간을 알리고 활동을 펼치려는 의도로 흔쾌히 품은 들어가지만 수익은 기대할 수 없는 기획전을 감당해주셨다. 지역에 예술영화극장이 상설운영 중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수고인 셈이다.

▲고다르 회고전 1203 필름통 씨네토크

◆ 고다르와 대구 영화문화를 위한 의무방어전 진행상황

‘시네필 Cinéphile’이라는 용어가 있다. 직역하면 ‘영화광’쯤 되겠지만 개념상 학구적인 영화애호가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면 무방할 테다. 영화애호가와 엄밀히 다른 표현은 아니지만 불어 원어에서 보듯 프랑스 누벨바그와 함께 탄생한 용어이기에 그 누벨바그의 주역 중 하나인 고다르와는 근접도가 높은 편이다. 상업영화에 대비되는 독립예술영화, 즉 ‘작가’의 주도하에 완성된 영화들을 주로 소화하면서 관람에 그치지 않고 토론과 비평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측면에서 유사한 용어들과 차별화되는 존재들이다. 물론 고다르나 트뤼포처럼 수백 수천 편의 영화를 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창작영역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

‘시네필 감독’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것처럼 국내 영화인 중에서도 시네필 지향을 가진 이들이 갈수록 늘어가는 중이다. 특히 박찬욱 감독 같은 경우 초반 거듭된 흥행 실패로 인해 영화평론가 활동이 한때 주업이 되었을 정도이고 걸출한 평론을 다수 남긴 바 있다. (평론가 시절의 글들은 <박찬욱의 오마주>라는 제목으로 현재도 절찬리에 판매되는 중이다) 타인의 영화와 참고해야 할 선례들을 풍성하게 소화하는 것은 곧 좋은 창작을 해내는 데에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리고 고다르라는 영화사에서 혁명적 전환을 몇 차례나 주도한 작가의 일생에 걸친 결실과 마주하는 건 분명 플러스 요소일 테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구의 영화문화 현실은 ‘시네마테크’라 불리는 영화박물관 기능이 거의 공백으로 비워진 상태에 머물러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다른 극장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이지만 1개 관으로 다양한 요구를 온전히 소화하기란 불가능한 과제다. 한국독립영화와 로컬 창작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 아래 시네마테크 기능은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거기에 절대량이 부족한 공적 지원, 그것도 들쑥날쑥 미래를 차분히 기획하기 힘든 조건 아래에서 관객의 호응도, 재정적 수익과도 거리가 먼 기획전은 아쉽긴 하지만 받기란 참 계륵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대구 지역 내에서 예술영화와 시네마테크 기능을 소화하기 위한 구상이 결국 구체화되어야 분담과 극복이 가능한 쟁점이다.

필름통은 롯데시네마 아르떼가 온전히 소화하기 힘든 시네필을 위한 기능을 극히 일부나마 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을 진행 중이다. 우선 12.3(토)에는 고다르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SF 느와르라는 독특한 조합의 1965년 영화 <알파빌>과 함께 해당 작품에 대한 ‘오마주’ 성격의 2001년 단편 <M/T교수의 외출>을 필름통에서 연속 상영했다. 그리고 단편을 연출한 한상준 영화평론가의 작품해설 시네토크를 상영 후 진행해 영화가 품은 배경과 설정들에 대해 깊게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 고다르 기획전을 기획한 이모션 픽쳐스의 지원으로 공식 상영본을, 비 극장 상영 공간 중에선 지역 내 최고수준의 환경(10채널 사운드, 180인치 스크린)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10여 명의 참석자들은 낯선 과거로부터 온 실험성 강한 영화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관람하고 이어진 영화해설 시간에도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몰입하고 있었다. 상업영화관에선 접하기 힘든 풍경이다.

기획전을 공동 주최하는 부산의 영화공동체 씨네포크 김이석 대표(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가 대구 아르떼관 회고전 프로그램 중 12.16(금) <영화라는 사소한 비즈니스의 흥망성쇠> 상영 후 작품해설을 진행하는 수고를 해주셨지만 넓은 객석에는 군데군데 몇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1시간 가까이 고다르의 작품세계에 대한 해설은 충실했지만 그 기회를 누릴 수 있던 이들은 너무 적었다. 단지 머릿수의 많고 적음 뿐 아니라 머릿속에 고다르의 영화와 해설을 접하면 참 좋을 것 같은 얼굴들이 아른아른 떠올랐다. ‘접속’의 연결통로로서 역시 복합상영관의 현재 운영체제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렇게 지역의 신세대 시네필들과 ‘통’하지 못한 채 어렵게 기획된 대구 고다르 회고전의 메인 상영은 막을 내렸다.

◆ 아직 1번의 상영회가 남아 있사옵니다!

하지만 아직 대구에서의 고다르 회고전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필름통에선 12.3(토) 상영회(실은 고다르의 생일이 12월 3일이었다)에 이어 “고다르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이브”라는 표제로 두 번째이자 결말을 짓는 상영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고다르의 숱한 작업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대표작이라 할 <네 멋대로 해라> (1960)와 <남성, 여성> (1966) 2편이 상영되는 것은 물론, 고다르의 작품세계 전반을 개괄해줄 임재철 영화평론가의 씨네토크도 마련되어 있다. (임재철 평론가는 회고전 실무를 담당한 이모션 픽쳐스 대표인데다 고다르는 물론 누벨바그 거장들과 직접 소통해왔기도 하다) 지역에선 쉽게 접근하기 힘든 기획 상영회라 자부할 만하다.

물론 이 2편을 본다고 해서 장 뤽 고다르라는 문제적 거장의 영화세계를 온전히 소화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름은 들어봤으나 실제로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이 절대다수인 실정에서 왜 이렇게 고다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지 궁금하다거나, 거장이라는 이름값이 명불허전임을 확인해보려는 이들에겐 늦었지만 입문 기회로 추천하려 한다. 특히 <네 멋대로 해라>는 그야말로 할리우드 고전영화에서 ‘현대영화’의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소재와 형식의 조합이며, <남성, 여성> 또한 전 세계가 격동에 빠져들던 1960년대 중후반 파리 청년들의 고민과 방황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려낸 작업인지라 6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청년 시네필과 영화인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이기도 하다.

물론 크리스마스이브에 생소한 예술영화 거장의 고전영화를 보러 시간을 투자할 이는 많지 않을 테다. 하지만 고다르의 작품들은 그저 영화사 서적 한구석에 얌전히 있기에는 여전히 지금 다시 봐도 흥미롭고 참고가 될 구석이 차고 넘치는 것들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공간에서 그 시대의 고민과 기운을 압축한 채 숨어 있는 영화들을 확인하는 것은 대구라는 (상대적으로 도시 규모에 비해 빈곤한 영화문화를 가진) 지역에서 새로운 영화문화의 상상력을 조금이나마 복원하는 데 유의미한 실행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지역에서 어렵게 시도되는 작은 기획들과 이를 감당하는 공간에 조금 더 관심과 격려가 필요할 때다. 새해에는 대구 내에서 다양한 경향과 시대를 초월한 예술영화 상영과 영화비평에 대한 토론이 보다 활발해지길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