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역사 재구성과 왜곡의 사이 ‘자전차왕 엄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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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영화 키워드는 ‘역사’다. 그해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역시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영화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국가 전체가 100년이라는 세월을 기념하다 보니 역사를 다룬 영화가 연달아 개봉했다. 2018년 말에는 일제강점기 우리말 사전 편찬 노력을 소재로 한 <말모이>가 개봉했고, 상반기에는 <자전차왕 엄복동>과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개봉했다.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를 그린 <봉오동 전투>는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들은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개봉하기 때문에 흥행할 소지가 높다. 과거를 환기하고 기념하는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라서 영화 자체의 만듦새를 떠나 다른 척도로 평가 받기 쉽기 때문이다. 알고 있거나 잘 몰랐던 우리의 과거를 조명해 한국인으로서 지녀야 할 역사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이자 매체다.

반면에 역사를 다룬 영화들이 가진 위험성도 높다. 영화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선악 구도 같은 진부한 요소를 극대화시켜 다른 요소들은 뭉개버리고 역사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영화들은 영화의 본질적인 효용성을 넘어 사회적 기능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각색을 거쳐야 하는데 ‘역사책을 있는 그대로 지루하게 옮겨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는 역사를 강렬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전하기 때문에 최대한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한 역사 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우린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실의 행간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도 디테일과 감정, 뉘앙스가 살아 있는 영화는 존재해야 한다. <자전차왕 엄복동>이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이유는 인물의 미화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 엄복동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자전차 대회 1위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자전거 안장에서 엉덩이를 들어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내는 주법도 사실로 기록돼 있다. 방해공작을 펼친 일본인에 맞서 자전차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해 나라 잃은 조선인들의 꿈과 희망이 됐다는 것은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엄복동의 이면은 감추고 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엄복동은 자전거를 훔치거나 훔친 자전거를 팔다가 3차례 처벌을 받았다. 동아일보 1926년 7월 10일자 기사에서 엄복동이 절도 공범으로 징역을 선고받았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경향신문 1950년 4월 1일자 기사에서는 엄복동이 자전거를 훔치다 탄로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같은 날 동아일보에서도 엄복동이 남의 자전거를 훔치려다 사람들에게 적발돼 30일 기소유예 석방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영화는 엄복동이 자전거를 도둑맞은 피해자로 그리고, 독립운동을 돕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것으로 다룬다. 심지어 엄복동의 주변 인물을 독립투사로 그리기도 한다. 영화는 역사적 근거를 재구성했다고 밝히지만 이는 재구성이 아닌 역사 왜곡에 가깝다.

더 큰 문제점은 제작사 대표와 주연배우의 태도다. 주연 및 제작으로 참여한 배우 이범수는 개봉 전 언론 인터뷰에서 “자극적이고 소모적인 영화보다는 많은 분들과 의미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첫 작품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주연배우 정지훈은 “사실 엄복동이 위인은 아니지만 현대의 김연아·손흥민 같은 스포츠 스타다. 힘들었던 그 시대에 10만명이 넘는 관중을 운집하게 했고, 일본을 꺾고 우승해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준 인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역사적 인물을 미화하는게 일제에 짓밟혔던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극일정신으로 큰 공명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수작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역사에 대한 오만이 갈수록 심해져 수십 년 뒤에는 <자동차왕 곽한구>가 나올 지도 모른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