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생존’이 지겨운 중장년에게 건네는 ‘삶’에의 초대 / 남재일

주형일의 <생존사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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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단어는 ‘살아 있음’과 ‘살아 나감’ 두 개의 진행형을 포함한다. ‘살아 있음’은 현재의 사실이고 ‘살아 나감’은 미래를 향해 열린 꿈이다. 미래를 향한 인간의 시선은 불안을 동반한다. 모든 인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는 죽음이고, ‘살아 나감’은 애초에 ‘살아 있음’을 부정당하는 시점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된 삶의 실존적 조건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오래된 철학적 처방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죽음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여 자유롭고 창의적인 ‘살아 나감’을 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처방대로 삶을 꾸려가는 것은 쉽지 않다. 죽음을 응시하고 삶의 서사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용기와 상당한 철학적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은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 나감’의 서사를 구축하는 고된 노동 대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살아 나감’보다 ‘살아 있음’을 우선시하며 ‘살아 있음’을 하루하루 연장하는 방식으로 ‘살아 나감’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행태는 선행하는 물질적 조건을 사안 전체의 중요성으로 혼동하는 일종의 유물론적 착시다. 삶을 상상하는데 생물학적 목숨은 필수적인 물질적 조건으로 전제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궁극적 가치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속성, 즉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이 사회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태를 ‘치명적이지만 가치 없는’이란 관형어로 표현했다. 건강을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건강만 가진 사람의 삶은 그닥 행복하지 않다. 반대로 부와 사회적 인정을 모두 가졌지만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역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은 부재의 형태로만 의미화된다. 건강의 극단적 형태인 생물학적 목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목숨의 박탈은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지만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삶에 별다른 의미를 추가하지 못한다.

‘치명적이지만 가치 없는’ 것들을 궁극적 가치처럼 강조하면 ‘치명적이지 않지만 가치있는 것’들이 파괴된다. ‘살아 있음’의 강조는 ‘살아 나감’의 서사를 구축할 기회를 축소한다. 단지 살아있기 때문에 파생되는 ‘살아 있음’의 일상적 에피소드는 그 자체의 무의미를 과장된 자기현시로 채우려 들 공산이 크다. 그 양상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생존을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내세우고 타자에 대한 만연한 적대와 배제가 정당화되는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사회이다. 주형일이 <생존사회>에서 그리는 한국사회는 창의적 방식으로 ‘살아 나감’을 꿈꾸지 못하고 ‘살아 있음’이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된 사회다. 애초에 생존은 절박한 약자들의 다급한 삶의 과제일테지만, ‘생존사회’는 생존이 모든 구성원의 지배적인 삶의 양식이 된 사회다.

“생존의 방식은 글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사는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항상 적대적인 타자와의 대립과 싸움을 내포한다. 내 생명을 위협하는 적대적 존재들에 맞서 그들을 이겨야만 나는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모든 가정과 행동은 살아남는 일에 집중된다. 감정은 생존을 위해 통제되고 행동은 생존을 위해 재조직된다. 자기 계발, 인간관계 형성, 자연과의 교류 등이 모두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적보다 우위에 서고 적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때에 비로소 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에 타자와의 모든 관계는 계산적이고 파과적이 된다.”

‘생존사회’는 목숨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거나 더 많은 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내 몫을 호시탐탐 노리는 가상의 적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병적인 사회이다.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보장하는 급진적 개인주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현시되는 성공한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소비자본주의의 판타지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저자는 생존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삶의 방식’으로 명명한다. ‘삶의 방식’은 “주어진 생명을 만끽하며 사는 것”이며 “자신을 존중하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자연을 모두 아우른 타자를 존중한다.” “남을 이기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구를 반영한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방식’은 타자에 대한 일체의 비교우위를 버린 자율적이고 자족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생존사회>가 <피로사회>처럼 사회를 본격적으로 진단하고 거기에 대한 어떤 정치적 해법을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으로의 이행은 소수에게나 가능한 낭만적 처방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생존사회>은 <피로사회>와 결이 다르다. <피로사회>에 비해 <생존사회>은 사회의 성격에 대한 진단보다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개별적 삶의 성격에 주목하고 그 전환을 촉구하는 일종의 철학적 자기계발서다. 책 전체가 개별적 주제를 갖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통합된 짧은 에세이로 구성돼 있다. 내용도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 더 많은 부분은 삶, 시간, 죽음 등 실존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점이 <생존사회>가 여타의 다른 ‘ OO사회’부류의 책들과 변별되는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저자의 논문을 읽으면서 받았던 인상이 책으로 구현된 느낌을 받았다. 문화연구 전공자인 저자의 논문은 구조와 개인이 만나는 장소로 ‘문화’라는 영역을 가정하고 개인의 경험을 거기에 대조하는 진지함을 ‘요란하지 않게’ 드러내 보였다. <생존사회> 역시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살며 고민했던 지점들을 묵직한 중저음의 언어로 조목조목 드러내 보인다. 절제된 언어이지만, 생존이 목적이 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거부의 입장은 선명하고 단호하다. 한국사회의 생존문화에 지쳐 새로운 ‘살아 나감’을 모색하는 중장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남재일 경북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