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물 같은 사랑, ‘셰이프 오브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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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의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물체가 존재한다. 괴생명체는 물고기와 인간 사이의 낯설고 기이한 외모를 가졌다. 남미에선 신으로 숭상받았다고 한다. 과열된 우주탐사 경쟁에서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구소련의 기술을 따라잡으려던 미국은 괴생명체를 해부할 계획을 세운다.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 항공우주연구센터 청소부다.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회사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어울리며 평범한 생활을 한다. 어느 날 그는 센터의 실험실에서 인간과 어류의 모습이 섞인 괴생명체를 발견하고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람들 몰래 먹을거리로 달걀을 챙겨주고 전축을 들고 와 음악도 들려준다. 말로 뜻을 전할 순 없지만 둘은 점차 서로 이끌린다. ‘그’의 해부 계획을 전해 들은 엘라이자는 실험실의 보안 책임자 리차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를 따돌리고 ‘그’를 탈출시킨다. 리차드는 둘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두 나라의 대립과 새것과 헌것의 갈등, 정상과 비정상을 그려낸다. 장애를 지닌 엘라이자, 흑인인 젤다, 동성애자인 자일스, 그리고 양서괴물까지 영화의 주요 인물은 모두 사회가 정한 보통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엘라이자는 낡아빠진 극장 건물 위에 얹혀살고 자일스는 카메라가 발달한 시대에 영화 포스터를 그린다. 시대에 뒤처진 이들이지만 영화는 이들을 불쌍하거나 안타깝게 그리지도 않는다. 영화 속 사회적 소수자들은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사회 속에서도 삶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반대로 보안 책임자 리차드는 냉전의 분위기를 집약한 인물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캐딜락을 타고 소변을 보기 전에 손을 씻고 소변을 본 후엔 씻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성공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러면서도 냉전이란 비극 속에 괴물이 돼버린 인간 군상으로 그려진다.

영화 설정은 정형화된 세계를 완벽하게 뒤집는다. 1960년대라면 주인공이었을 법한 정부 요원은 악당이 되고, 조연이거나 악당이었을 장애인과 흑인 여성, 중년 게이 남성 등 1960년대 편견의 대상이던 존재들은 주인공이 됐다. 동화 같은 설정 속에 여러 날선 주제가 담겨 있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핵심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의 소재나 묘사가 자극적이다. 엘라이자가 성욕을 표현하거나 리차드의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비춘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다가온다.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1960년대라면 포르노였을 재료로 가슴 아린 로맨스로 풀어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도 부르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매력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생생한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내는 시각적 연출력이다. 푸른 물에 잠긴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첫 장면은 단숨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엘라이자가 ‘그’와 사랑을 나눌 때 방 안을 가득 채운 물의 이미지도 대담하고 강렬하다.

제목과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에서는 물과 관련된 이미지가 넘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차창의 물방울로 맺히기도 하고 수로를 타고 바다로 모이기도 한다.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결국 ‘사랑’과 ‘아름다움’의 기준 역시 어떤 형체나 모양으로든 변할 수 있는 물처럼, 사랑도 어떤 모양이든 본질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다만 편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시대적 배경과 장소, 등장인물로 풀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적이다. 그런데 감독은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과 호러 판타지 요소들을 합쳐 특이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2017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올해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작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