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미스테리한 죽음 너머의 그 ‘고흐, 영원의 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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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벌판에 나가 총으로 자산의 가슴 부분에 격발한 뒤 피를 흘리며 여관으로 돌아와 이틀 뒤 숨졌다. 권총 자살의 근거는 사후 고흐의 가슴에서 발견된 실탄이 프랑스의 총포기업 ‘르포슈’가 19세기 말 제작한 회전식 권총(리볼버)의 7㎜ 구경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고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는 권총은 1965년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벌판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됐다. 2016년 고흐의 고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고, 2019년 6월 프랑스 파리 경매사 ‘옥시옹 아르-레미 르 퓌르’가 진행한 경매에서 미술품 수집가에게 16만 2,500유로(약 2억 1,400만 원)에 팔렸다. 하지만 고흐가 실제로 사용한 총인지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미술사학자 대부분은 고흐가 권총 자살을 했다는 데 동의한다. 경매사 측은 “여러 정밀검사 결과 고흐의 사망 시점과 이 권총이 땅속에 묻혔던 시간이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고흐의 타살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반 고흐 기념관 측은 권총이 경매에 오르자, 성명을 내고 “권총의 그 어떤 흔적도 고흐의 죽음과 공식적으로 관련됐다는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며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스티븐 나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는 2011년 펴낸 고흐 평전에서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던 고흐가 자신에게 총격을 가한 두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두 작가는 정신병을 앓았던 고흐가 어떻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었는 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영화감독인 줄리안 슈나벨은 고흐의 말년을 집중조명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을 통해 타살설을 다시 제기했다. 줄리언 슈나벨 감독은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지낸 80일간 75점의 그림을 남길 정도로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는데 자살을 할 리는 없다”고 설명했다. 각본을 쓴 장클로드 카리에는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볼 증거는 전혀 없다”며 “누구도 권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고흐의 사망과 작품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생애에서 폴 고갱과 만남을 시작점으로 삼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부터 죽음을 맞이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의 기록을 담아냈다. 주목할 점은 영화가 이야기의 전개보다 고흐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는 거다.

카메라의 시선은 피사체에 아주 가깝게 클로즈업되고 고흐의 모습이 담기거나, 그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때는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뚜렷한 예술관과 다르게 철저히 외면받은 작품과, 가난, 외로움으로 비참한 삶을 살던 고흐의 불안한 심리를 핸드헬드의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다.

또 화각과 초점, 구도는 시시각각 계속해서 변화한다. 화면의 반이 뿌옇게 변했다가, 화면이 모든 색을 잃어 모노톤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물이 지닌 내적인 고통을 구체적 갈등의 묘사 없이 오직 카메라의 시점만으로 담아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덕분에 영화는 고흐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가 아니라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를 보여준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종합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회화작품 같은 화면 연출과 내면 심리를 보여주는 촬영기법, 화면과 어울리는 음악, 윌렘 대포(반 고흐), 오스카 아이삭(폴 고갱), 루퍼트 프렌드(테오 반 고흐), 매즈 미켈슨(사제)의 연기가 어우러졌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