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마음의 크기, 말길의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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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모임에 초대합니다. 수시로 다양한 얘기로 수다를 떨어요. 사회 문화 경제 역사 등 그 어떤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단, 정치 분야는 제외입니다.”

40년 지기들의 ‘밴드’에 올라온 제안이다. “왜? 정치 분야는 제외냐”고 알면서도 물었다. 친구는 “정치 관련 얘기가 나오는 순간 모임은 깨진다”고 단언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답변으로 들었지만 씁쓸하다. 그 누구와도 어떤 주제든 터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의 현 위치를 찾아야 하듯이 원인을 분석해 보자.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정치 성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분위기가 생겼다. 친척이나 동창일지라도 지지하는 당이 다르면 더 이상 만남도 없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캐나다의 철학자 마셜 매클루언이 1962년에 언급한 것처럼 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다. 소셜 미디어는 세계를 ‘초연결사회’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초연결사회를 대표하는 나라이다. 정보통신 관련 최강국이기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곳곳에서 소통(疏通)이 아닌 불통(不通)으로 고통(苦痛)을 호소하고 있다.

삶의 현장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도 소통이 안 되고 있다. 유독 정치 분야에서 심하다. 7남매의 막내인 필자는 형제들과 정치 관련 일체 소통이 없다. 2년 전 형제들과 2박 3일 동안 한려수도를 여행하면서 불통으로 인해 복통을 앓기도 했다.

형제들은 필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군인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무기 하나 제대로 배치 못하나!” 툭 던졌다. 사드 관련 협력 업무를 3년 이상 맡았던 필자를 비꼬는 투로 들렸다.

필자는 바로 반격했다. “뻑 하면 촛불을 드냐?”, “신성한 태극기를 함부로 흔들지 마라!” 답이 없는 주제로 입씨름하며 밤을 새웠다. 그 때문에 한산도와 여수 방문을 포기했다. 돌아오면서도 그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돌아보면 너무나 아쉽다. 이념이 뭐길래? 형제간에도 동행을 못해 여행을 못했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의 한산도에서 또 여수의 아름다운 밤바다를 바라보며 돈독한 정을 나누어야 했다. 우리 7남매는 서로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탓이다.

전 세계 80억 사람 모두가 생각이 다름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애국심이 높다고 존중해 주자. 단, 대한민국을 더 위대하게 하는 애국심이어야 한다.

설 연휴가 지났다. 수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진정한 소통을 하는 수다 모임이 기다려진다. 다짐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참석해야겠다.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야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키워야겠다. 무슨 말이든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도록 언로(言路) 즉, 말길을 넓혀야겠다. 그래야만 터놓고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