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정치의 실패 보여준 사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09:32
Voiced by Amazon Polly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가 열린 2일, 주민설명회장 앞에서 만난 소성리·김천 주민의 얼굴 주름이 더 깊어진 듯했다. 2016년 사드 배치 추진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명을 달리 한 주민의 빈자리가 보였다. 뒷북 환경영향평가의 의미란 허울뿐이긴 했으나 결국 사드 배치 절차가 종결된다는 뜻, 즉 정식 배치라는 뜻이고 주민들도 그 무게감을 느끼는 듯했다.

무거운 현장 분위기 때문에 길목을 막은 주민 절규 속에 강제로 사드를 들인 2017년 4월 그날의 충격도 언뜻 떠올랐다.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사드 배치에 저항한 7년, 저항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진행 중이지만, 돌이켜보면 명확히 확인된 것 하나가 있다. 정치의 실패다. 결과론적으로 성주 사드 배치 과정에서 정치는 실패했다.

▲2일 오전 9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민·김천시민들이 주민설명회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의미한 사건도 있었다. 사드 배치 과정 초기, 성주군청에 매일 수천 명의 인파가 몰리던 시절 광장에 ‘대중의 힘’이 있었고 정치는 그 힘을 두려워했다. 지역 정치가 요동쳤다. 지역 기반 정당과 연결고리 없이 당선되기란 불가능한 지역에서 성주군의원 8명 중 4명이 자진 탈당했다. 당시 국회의원과 군수는 이후 재선에 실패했다. 그 시절 길거리에 가득한 현수막 아래 성주에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기대가 가득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사드 배치 철회’ 외침은 사드 기지 인근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들을 수 없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 시절 탈당했던 군의원 중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그 시절 ‘민주주의’를 외쳤던 정치인 중 지금도 그만한 목소리를 내는 이도 없다. 민심을 거슬러 강압적으로 전쟁 무기를 배치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행정 권력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던 국회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대외적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우리 정부 외교는 모호성 속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명하게 한미일 동맹 강화를 추구하면서 다른 이웃 국가와 불필요한 갈등 상황도 감수하고 있다. 사드 정식 배치가 그 대표적 상징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중국 갈등 격화 상황에서 보이듯 국제 정세도 대결 구도로 치닫고 있다. 대결 구도가 강화하는 시대에 반전 평화를 향한 목소리는 힘을 잃어 간다. 반대로 대결과 전쟁을 외치며 반지성주의를 자극하는 정치세력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줄곧 경고하던 상황이다.

악화 일로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의 득표나 집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치는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결과 공포를 자양분으로 하는 정치 세력은 대결과 공포라는 쉬운 길을 추구할 테다. 그렇지 않은 정치 세력이라면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숨지 말고 평화를 말해야 한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행정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국회의 과거를 평가하고 정비해야 한다. 시름에 빠진,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는 주민들에게도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