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공공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한 한국감정원이 법적 절차를 어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26일 한국감정원은 성과연봉제를 1, 2급 간부에서 3급 간부로 확대 적용하는 보수규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22일 전국금융산업노조 한국감정원지부는 성과연봉제 확대 찬반투표를 했고, 투표에 참석한 조합원 361명 중 357명(72.7%)이 찬성했다. 이어 26일 서명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임시총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의결했다.
성과연봉제 확대 결정은 대상 급수뿐만 아니라 비율도 늘어났다. (연봉 내 20%에서 30%로 확대) 또, 개별 성과에 따라 기본급에도 평균 3% 차등을 둔다.
하지만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이 법적 절차를 어겼으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선, 한국감정원이 교섭권이 없는 한국감정원지부 조합원임시총회 의장과 교섭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산별노조인 한국감정원지부는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가 대표 교섭권을 가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지부 지도부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찬반투표가 시작되자, 도입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 모두 사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한국감정원지부는 금융노조 산별이기 때문에 교섭권이 금융노조에 있다. 사측이 교섭권도 없는 지부랑 교섭하고 이사회까지 통과시킨 것”이라며 “금융권사용자협의회가 성과연봉제 도입 등 교섭안을 내놓고도 한 번도 교섭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개별 공기업이 힘이 약한 개별 지부와 교섭해 성과연봉제를 관철시키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합원 임시총회 자체가 불법이었다. 찬반투표 이후 사측이 총회를 열라는 압박이 있었다”며 “지도부가 사퇴를 선언했지만 절차상 대의원대회 인준을 받아야 사퇴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시총회 의장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은 조합원임시총회가 열린 22일 당일 오후 기다렸단듯이 운영위원회를 열어 보수규정 등 관련 규정 개정을 마무리했다. 조합원임시총회는 노조가 친기업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지도부를 탄핵하고 새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제도다. 이를 사측이 역으로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처음 사측이 사내 인트라넷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당시에는 반대가 더 많았다. 개인 PC로 설문하다 보니 무기명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았다”며 “처음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작업을 한 거다. 그래서 이번 찬반투표가 70%가 넘는 찬성이 나왔다.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투표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금융노조는 이에 대해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제소를 한 상태다. 또, 조합원 임시총회 의장과 사측이 맺은 교섭에 대해 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감정원 노사협력부 관계자는 “노조 지도부가 총사퇴한 후, 여론조사를 해 보니 회사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찬반투표와 임시총회를 열어 의결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노조 입장에서는 다른 공공기관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 같다”며 “노조 지도부가 사퇴한 후, 조합원들과 저희가 내부적으로 해결한 부분이다. 부당노동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지난 9일 오는 6월까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완료하지 못한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임금 동결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금융노조를 포함한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0일 ‘공공부문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