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에서도 부동산 담보신탁 전세 피해···허술한 제도 피해 키워

‘퇴거요청’ 적힌 내용증명 날아와, 세입자들은 청천벽력
신탁회사·금융사 동의서 받아야 하지만, 다들 절차 탓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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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침산동의 한 다세대주택 세입자들이 부동산담보신탁 제도 허점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신탁 주택 임대는 수탁자(신탁사)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세입자가 동의 절차를 진행할 수 없고, 신탁원부에 위탁자(집주인)의 대출 정보 등도 의무기재 사항이 아니라서 누락되어도 세입자가 알 길이 없다. 침산동 빌라 세입자 대부분은 신탁 주택이라는 걸 계약 과정에서 인지했음에도 제도의 허점 때문에 동의서 발급이나 대출 사실을 알지 못해 피해를 입게 생겼다.

침산동 빌라 17세대 전세보증금 피해 예상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A 빌라는 총 20세대로, 17세대를 건물주 B 씨가 소유하고 있다. 17세대의 세입자들은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공인중개사 또는 건물주와의 직접계약을 통해 반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중 12세대는 보증금이 1억 원 이상이다.

건물주 B 씨는 건물이 준공된 2017년 소유권 보존 등기와 동시에 전체 20가구 중 미분양된 17가구를 부동산 담보신탁했다. ‘부동산 담보신탁’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기고 받은 수익권 증서로 대출을 일으킬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건물주 입장에선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은행권 부동산담보대출보다 많은 자금을 싼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B 씨는 신탁 계약 후 부동산 신탁회사에 소유권을 넘기고 대구 한 신협에서 29억 원을 빌렸다. B 씨는 현재까지 29억 중 5억 원을 변제하고 24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건물주 B 씨가 종합부동산세 4억 원을 내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B 씨는 연간 1,900만 원 수준이던 종합부동산세가 2019년 강화 기조에 따라 3억 원까지 뛰었다고 했다. B 씨가 세금을 체납하면서 지난 5월 2일 대구 수성세무서는 건물을 공매에 넘겼고, 신탁회사가 동의하지 않은 임대차 계약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공매는 취하됐다. B 씨는 대출금과 세입자 보증금을 “토지 매입, 건축, 건물 관리 등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B 씨는 “빌라 토지를 12억 원에 산 뒤 22억 원을 들여 건물을 지었다. 등기비용, 부대비용, 이자비용 등이 4억 원 정도이니 최소 38억 원이 들었다. 대출 29억 원을 빼도 약 10억 원이 내 돈”이라며 “100% 현금을 들고 투자하는 사람이 어딨나. 이자가 월 1,000만 원 이상 나갔고 각종 세금이나 관리비 등 고정비가 200만 원 이상 나갔다. 보증금은 이런 비용들에 쓰였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 소재 한 빌라에서 부동산 담보신탁 제도의 허술함 때문에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게 생겼다. (사진=세입자 대책위원회)

‘퇴거요청’ 적힌 내용증명 날아와, 세입자들은 청천벽력
신탁회사·금융사 동의서 받아야 하지만, 다들 절차 탓만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B 씨와 반전세 계약을 맺고 A 건물에 살고 있던 17세대의 세입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들은 지난 16일 신협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으면서 부동산 계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용증명에는 ‘귀하는 적법한 계약 및 동의 없이 해당 물건(담보물)에 불법으로 전입 및 점유하고 있어 본 담보물의 채권자로서 손해가 가중되고 있다. 2023년 5월 31일까지 자진퇴거 하여주시길 요청드린다’고 적혔다. 기간 내 이사하지 않으면 명도소송 및 부동산 인도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에게 내용증명이 날아온 건 부동산 계약 과정에서 신탁회사, 1순위 우선수익자(금융사)의 동의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탁등기된 부동산의 경우 B 씨에게 임대를 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 체결 시 신탁회사와 1순위 우선수익자인 금융사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해당 빌라 부동산 담보신탁계약서 중 10조(임대차 등) 항목에 따르면 신규 임대차 또는 재임대차계약은 신탁사 명의로 체결하거나 신탁사의 사전 승낙을 조건으로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B 씨는 17세대 중 1세대에 대해서만 동의서를 받았다.

세입자들은 B 씨가 동의서를 받는 절차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근본적으론 공인중개사, 신탁사, 금융사, 집주인 등 개인에게 맡겨둔 신탁부동산의 임대차 계약 절차의 미비함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중 일부는 부동산 계약서에 ‘임대인은 임대차동의서를 발급해주기로 한다’는 문구를 넣어둬, 계약 당시 B 씨나 세입자, 공인중개사 등이 신탁부동산의 동의서 발급 절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뉴스민이 17세대 중 동의서를 받은 1세대와 확인이 되지 않은 1세대를 제외한 15세대의 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7세대에만 특약사항이 기재됐는데, 해당 세대들은 모두 같은 공인중개사를 통해 계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탁부동산의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 임대 계약을 하느냐에 따라 최소한의 확인 절차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16일 세입자들은 불법 점유하고 있는 집을 빼라는 내용의 내용 증명을 받았다. (사진=세입자 대책위원회)

세입자 대책위원회는 “계약 이후 집주인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동의서 발급을 미뤄왔다”고 지적하고, B 씨는 “신탁매물임을 설명했고, 추후 신탁사에서 동의서를 받아주기로도 하고 특약사항에 넣은 세대도 있다. 잘못한 부분(실제 동의서를 받지 않은 점)은 벌을 받으면 되지만, 계약 당시에는 충분히 전세금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신탁사와 신협은 집주인이 임대차 요청을 하지 않으면 먼저 알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신탁사 관계자는 “이 경우는 세금 체납을 원인으로 공매를 일으킨 거라, 신탁사와는 관련이 없다”며 “위탁자인 집주인이 신탁사에 임대차 요청을 하고, 은행 대출기관이 동의를 해주면 임차인에게 신탁사 임대차 확인서를 발급하는 게 절차”라고 설명했다.

또한 “임대차 확인서를 받은 세대는 대출 금융기관보다도 선순위로 본다. 따라서 공매로 낙찰돼도 대출금융기관 채권보다 빨리 변제될 수 있다. 물론 월세 체납, 관리 체납 등이 있을 수 있어 협의 과정은 있다. 하지만 당연히 은행보다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금액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신협 관계자는 “우리도 대출이 연체된 시점에 수성세무서에서 종부세가 체납돼 공매가 먼저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공매를 진행하는) 자산관리공사가 신탁회사 동의서가 없는 임대차 계약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공매를 취하했다. 우리도 곤란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신탁 원부서 ‘소유권 증서 발행 금액’ 빠졌다가 최근 추가
세입자 “법무사 실수로 누락”, 법무사 “필수 기재사항 아냐”

세입자 대책위원회는 신탁원부에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 정보인 우선수익권자에 대한 정보가 누락된 것도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관련 정보는 피해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인 지난 12, 15일 두 차례 ‘누락분 추가’라는 설명과 함께 추가됐다.

정태운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세입자 중 계약 당시 신탁원부를 직접 확인한 경우도 있다. 대출에 대한 내용은 없기 때문에 계약을 한 건데 단순히 법무사 실수로 해당 부분이 누락된 거라 하니 황당하고 억울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내용은 신탁원부에 ‘의무 기재사항’이 아니다. 해당 업무를 본 법무사는 “나중에 추가된 ‘소유권 증서 발행 금액’이나 ‘부동산 목록’은 의무 기재 사항이 아니다. 공매에 들어갔을 때 공매 입찰 참여자들이 참고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무사는 “최근엔 관련 이슈가 생기면서 신탁원부상 반드시 기재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라 할지라도 일괄로 올린다. 하지만 2017년 당시엔 신탁 제도를 이용한 대출이 지금처럼 활성화돼 있지 않은 시기라 빠진 경우도 있다. 등기법에 위배된 사항이 있었다면 애초 등기가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A 빌라 전세사기 대책위원회는 지자체에 건물의 경·공매 중단, 명도소송 중지, 부동산 인도명령 철회, 수성세무서의 종부세 부과 중단 등을 요청하고 있다. (관련 기사 대구서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수면 위로···“대구시, 적극적 대책 마련해야” (23.05.23.))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