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뒤덮은 ‘양수발전소 유치’ 현수막···“반대 말도 못꺼내”

“생태계 파괴부터 주민 생존권 위협... 군에서 일방 추진”

20:50
Voiced by Amazon Polly

“양수발전소! 최적지는 봉화다”
“봉화의 숙원, 양수발전소”
“봉화의 마지막 희망, 양수발전소 유치”

지난 1일 찾은 경북 봉화군 곳곳에 양수발전소 유치를 염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군이나 주민단체, 민간업체가 게시자로 된 현수막은 교차로, 거리, 민간건물과 마을 초입 등 곳곳에서 나부꼈다. 180m짜리 봉화대교를 따라서도 50여 개가 붙었다. 반대 취지의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군 관계자는 양수발전소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1,000개는 된다며 웃었다.

▲ 1일 경북 봉화군 곳곳에 걸려있는 양수발전소 유치를 촉구하는 현수막

봉화군 양수발전소 예정지 상부댐 지역(소천면 남회룡리)에 사는 김재기(52) 씨는 현수막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마치 모든 주민이 양수발전소 유치에 목멘 듯 보여서다. 지난 2019년에도 양수발전소 반대 활동을 했던 김 씨는 군이 양수발전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정보 제공 대신, ‘발전소 유치’만 한 목소리로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지금 군에서 하고 있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라며 “찬성도 반대도 안 하는 주민들도 있을 것인데, 저렇게 걸린 플래카드가 피로감을 주고 있다. 반대 의견을 내기도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를 군에서 만드는데,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양수발전에 대한 기대효과나 피해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피해는 어떻게 보완하겠다던지 구체적 설명을 하고 선택지를 줘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비판하며, ‘양수발전소 유치 반대주민 모임’ 명의의 문서를 꺼냈다. 며칠 전 봉화군의회 의원들에게 보낸 문서다.

양수발전소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주로 수몰, 안개, 농사 피해 등 생계와 관련한 문제를 든다. 해당 문서에도 ▲대규모 자연환경 및 생태계 파괴 ▲주민 생존권 위협(수몰 지역, 지반 위험, 안개 일수·서리 증가·일조량 감소로 인한 농사 피해) ▲2019년 유치 실패에도 무리한 재시도 ▲주민 갈등 ▲ 대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지역의 불평등 감수 문제 등 반대 이유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김 씨의 기대와 달리 봉화군의회는 지난 26일 양수발전소 유치 촉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김 씨는 “반대 의견을 가진 주민들끼리 두 차례 모임을 가졌다. 반대 의견을 가진 다른 마을 주민들과 연대를 하려고 한다”며 “양수발전소에 대한 산업통상자원부 공고가 나면 이후 본격적으로 반대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 봉화군 소천면 두음리를 지나는 송전탑

하부댐 지역 소천면 두음리 주민 이상식(66) 씨는 ‘조건부 찬성’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정을 들어 보니, 이 씨는 345kV 송전선로를 옮기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 씨는 마을을 지나는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이 쇠퇴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 씨는 “1988년도에 생긴 것으로 아는데, 벌써 35년 쯤 됐다. 고압 송전선이 마을로 지나가니까 사람들이 오질 않는다. 이 때문에 마을이 소멸 위기”라며 “여긴 주민도 많지 않고, 농경지도 많지 않다. 농사짓는 사람도 60대 이상이고 젊은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는 게 맞지만, 35년 동안 송전탑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이걸 옮 겨 달라고 하려고 한다”며 “예전에도 우리는 이런 조건으로 찬성했는데, 당시에도 받아 들여지지 않아서 찬성 분위기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씨는 양수발전소를 운영 중인 양양, 청송, 예천, 산청 지역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 씨는 “안개 피해가 있는 것 같더라”며 “공사 기간이 10년 정도로 긴데, 공사 차량이 왔다 갔다 하면서 먼지나 물이 오염되는 것 같다. 그런데 완성되면 오히려 피해가 없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찬성과 반대로 나눠져서 마을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에요. 그러지 않도록 잘 조정해가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양수발전소가 들어오게 되면 마을길이 좁은데 확장을 하고, 공사 차량이 다니고 하면 안전 문제도 걱정돼요.” (이상식 씨)

▲ 1일 경북 봉화군청에 걸려있는 양수발전소 유치 촉구 현수막

봉화군청에도 계단과 로비, 외벽 등 다양한 종류의 ‘유치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봉화군 새마을경제과 신재생에너지팀 관계자도 ‘봉화군 양수발전소 유치’라고 적힌 빨간 조끼와 목걸이를 매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군민 3,000여 명으부터 양수발전소 유치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봉화군이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군에서 일방적으로 유치 사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에 대해서 묻자, 인구감소로 인한 위기감을 호소했다. 군 관계자는 “지역에 먹거리가 너무 없는 인구소멸 위기에서 양수발전소 유치는 중요한 문제”라며 “2019년 양수발전소 유치에서 탈락한 이유가 홍보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민수용성을 위해서 더 홍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봉화군의 소멸위험지수는 0.451로,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한편, 봉화군은 지난 2019년 양수발전소 유치를 추진했으나 주민수용성 문제로 탈락했다. 이번에도 소천면 두음리·남회룡리 일원을 후보예정지로 해서 사업비 1조 원 규모의 설비용량 500MW의 양수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봉화군은 양수발전소 건설 직접지원금 1,211억 원을 비롯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추진 배경으로 꼽는다. (관련기사=양수발전소 유치전 뛰어든 봉화·영양···”특정 마을 희생 방식 안 돼”(‘23.05.29)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