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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발전소! 최적지는 봉화다”
“봉화의 숙원, 양수발전소”
“봉화의 마지막 희망, 양수발전소 유치”
지난 1일 찾은 경북 봉화군 곳곳에 양수발전소 유치를 염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군이나 주민단체, 민간업체가 게시자로 된 현수막은 교차로, 거리, 민간건물과 마을 초입 등 곳곳에서 나부꼈다. 180m짜리 봉화대교를 따라서도 50여 개가 붙었다. 반대 취지의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군 관계자는 양수발전소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1,000개는 된다며 웃었다.
봉화군 양수발전소 예정지 상부댐 지역(소천면 남회룡리)에 사는 김재기(52) 씨는 현수막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마치 모든 주민이 양수발전소 유치에 목멘 듯 보여서다. 지난 2019년에도 양수발전소 반대 활동을 했던 김 씨는 군이 양수발전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정보 제공 대신, ‘발전소 유치’만 한 목소리로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지금 군에서 하고 있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라며 “찬성도 반대도 안 하는 주민들도 있을 것인데, 저렇게 걸린 플래카드가 피로감을 주고 있다. 반대 의견을 내기도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를 군에서 만드는데,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양수발전에 대한 기대효과나 피해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피해는 어떻게 보완하겠다던지 구체적 설명을 하고 선택지를 줘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비판하며, ‘양수발전소 유치 반대주민 모임’ 명의의 문서를 꺼냈다. 며칠 전 봉화군의회 의원들에게 보낸 문서다.
양수발전소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주로 수몰, 안개, 농사 피해 등 생계와 관련한 문제를 든다. 해당 문서에도 ▲대규모 자연환경 및 생태계 파괴 ▲주민 생존권 위협(수몰 지역, 지반 위험, 안개 일수·서리 증가·일조량 감소로 인한 농사 피해) ▲2019년 유치 실패에도 무리한 재시도 ▲주민 갈등 ▲ 대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지역의 불평등 감수 문제 등 반대 이유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김 씨의 기대와 달리 봉화군의회는 지난 26일 양수발전소 유치 촉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김 씨는 “반대 의견을 가진 주민들끼리 두 차례 모임을 가졌다. 반대 의견을 가진 다른 마을 주민들과 연대를 하려고 한다”며 “양수발전소에 대한 산업통상자원부 공고가 나면 이후 본격적으로 반대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부댐 지역 소천면 두음리 주민 이상식(66) 씨는 ‘조건부 찬성’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정을 들어 보니, 이 씨는 345kV 송전선로를 옮기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 씨는 마을을 지나는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이 쇠퇴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 씨는 “1988년도에 생긴 것으로 아는데, 벌써 35년 쯤 됐다. 고압 송전선이 마을로 지나가니까 사람들이 오질 않는다. 이 때문에 마을이 소멸 위기”라며 “여긴 주민도 많지 않고, 농경지도 많지 않다. 농사짓는 사람도 60대 이상이고 젊은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는 게 맞지만, 35년 동안 송전탑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이걸 옮 겨 달라고 하려고 한다”며 “예전에도 우리는 이런 조건으로 찬성했는데, 당시에도 받아 들여지지 않아서 찬성 분위기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씨는 양수발전소를 운영 중인 양양, 청송, 예천, 산청 지역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 씨는 “안개 피해가 있는 것 같더라”며 “공사 기간이 10년 정도로 긴데, 공사 차량이 왔다 갔다 하면서 먼지나 물이 오염되는 것 같다. 그런데 완성되면 오히려 피해가 없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찬성과 반대로 나눠져서 마을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에요. 그러지 않도록 잘 조정해가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양수발전소가 들어오게 되면 마을길이 좁은데 확장을 하고, 공사 차량이 다니고 하면 안전 문제도 걱정돼요.” (이상식 씨)
봉화군청에도 계단과 로비, 외벽 등 다양한 종류의 ‘유치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봉화군 새마을경제과 신재생에너지팀 관계자도 ‘봉화군 양수발전소 유치’라고 적힌 빨간 조끼와 목걸이를 매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군민 3,000여 명으부터 양수발전소 유치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봉화군이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군에서 일방적으로 유치 사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에 대해서 묻자, 인구감소로 인한 위기감을 호소했다. 군 관계자는 “지역에 먹거리가 너무 없는 인구소멸 위기에서 양수발전소 유치는 중요한 문제”라며 “2019년 양수발전소 유치에서 탈락한 이유가 홍보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민수용성을 위해서 더 홍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봉화군의 소멸위험지수는 0.451로,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한편, 봉화군은 지난 2019년 양수발전소 유치를 추진했으나 주민수용성 문제로 탈락했다. 이번에도 소천면 두음리·남회룡리 일원을 후보예정지로 해서 사업비 1조 원 규모의 설비용량 500MW의 양수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봉화군은 양수발전소 건설 직접지원금 1,211억 원을 비롯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추진 배경으로 꼽는다. (관련기사=양수발전소 유치전 뛰어든 봉화·영양···”특정 마을 희생 방식 안 돼”(‘23.05.29)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