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덕질에도 격차가 있다? 비서울에서 덕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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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2주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오늘(5월 30일) 주제는 ‘대구에서 문화생활 하기’, 부제는 ‘나의 덕질 연대기’입니다. 작년에 ‘성덕’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재밌게 봤어요. 감독이자 주연인 오세연 감독의 덕질 이야기인데, 그때부터 대구에서 덕질하기에 대한 여러분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특별히 주제에 적합한 초대손님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자칭 타칭 뮤지컬 덕후 성민아 님,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다운 님입니다. 각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정멤버도 간단한 자기소개와 ‘나의 덕후기’를 뽐내 주세요.

▲주제에 맞춰 특별히 초대한 손님, 자칭 타칭 뮤지컬 덕후 성민아 님(왼쪽),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다운 님(오른쪽).

성민아: 안녕하세요. 대구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상담사 겸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0년 차 뮤지컬 덕후입니다. 저의 덕질 연대기와 고민은 적어왔으니까,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이다운: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일하고 있고요. 대구에서 영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 섭외 연락을 받고 퇴근하자마자 왔습니다.

이명은: 안녕하세요. 생명평화아시아 이명은입니다. 덕후의 세계를 동경해서 덕후인 척하는 걸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서울을 놀러 간 김에 아이돌 생일카페를 가봤습니다. 요즘 MZ세대 사이 핫한 문화인데 아이돌 멤버의 생일에 맞춰서 팬들이 오프라인 카페를 대관해서 꾸미고 포토카드, 컵홀더 등을 나누는 문화예요. 물론 아이돌 본인은 오지 않습니다. 특정 아이돌 팬이어서라기보단 생일카페가 궁금해서 트위터로 ‘오늘 생일인 아이돌’을 검색해서 찾아갔어요.

유경진: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타쿠’하면 흔히 떠올리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게임에 살짝 한 발 걸치고 있는 덕후입니다. 최근엔 오덕(오타쿠의 준말)이라는 말이 양지로 올라온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오늘은 공연,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할 것 같아서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려고 합니다.

이학선: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직장 이미지가 그래요. 저도 그런 사람입니다. 어떤 것에 심취해서 밤을 새는 경험을 하고 싶은데 아직 그런 적이 없습니다.

조영태: 참여연대 조영태입니다. 덕후가 궁금하다는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보현: 뉴스민에서 일하는 김보현입니다. 유행을 쫓아가는 덕질을 하는 편입니다. 전시, 공연, 콘서트, 웹툰 등 ‘요새 유행이다’하면 일단 해보는 편입니다.

#나에게 문화생활이란 어떤 의미인가?

보현: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에 대한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사실 문화나 문화생활의 범위가 매우 넓죠. 하지만 범주화를 하면 각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늘은 최대한 열어놓고 ‘나의 문화생활’에 대해 토론해 보겠습니다.

민아: 뮤지컬과 연극 보는 걸 좋아해요. 소설책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읽는 방식이 좀 덕후스럽긴 한데, 특정 작가에 꽂히면 그 작가의 작품을 다 봐요. 최근엔 미아베 미유키에, 그것도 현대물이 아닌 에도 시대물에 빠졌어요. 아이돌 덕질도 좋아합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는데 제 ‘새끼’들이 많거든요. 이걸 어떻게 쓰실지 잘 모르겠지만, 관심 있는 아이돌의 여러 가지를 챙깁니다. 기본은 유튜브와 방송을 챙기고 콘서트를 가거나 앨범을 사기도 합니다.

명은: 덕질에 한 달 월급의 어느 정도 쓰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민아: 25%를 씁니다. 가계부를 써서 정확하게 아는데, ‘행복’ 카테고리가 있어요. 책을 사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비용이 포함되는데요. 계산을 해보면 월급의 25% 정도를 씁니다. 독립해 사는 1인 가구가 쓰는 비용으론 적지 않죠. 대구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상담을 해보면 10만 원대 단위를 쓰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명은: 전 배우는 걸 좋아해요. 최근엔 보컬수업을 듣고 있어요. 민아 님 지출보단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지출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성인 피아노 학원이나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진 분들이 많더라고요.

경진: 문화생활이나 취미 영역의 기준, 그러니까 남들보다 좀 더 좋아한다는 것의 기준은 ‘돈을 쓰는가’라고 봐요. 예를 들어 ‘유튜브를 본다’는 건 문화생활이 아닐 수 있지만 ‘좋아하는 스트리머에게 별풍선을 쏜다거나 공연을 간다’고 하면 문화생활일 수 있는 거죠. 한편으론 문화생활이라고 하면 ‘그래도 좀 있어 보이는 걸 말해야 하지 않나’란 생각도 들어요. 대학내일 기사를 보니 요즘 20대는 문화를 널널하게 정의한대요. SNS로 맛집 찾기, 모바일 웹툰 보기, 영상채널 정기구독하기도 문화라고 정의한다고 합니다.

학선: 요즘은 문화를 일하지 않을 때 하는 무언가로 퉁치는 것 같기도 해요. 여기에 등치시켜서 ‘여가와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고민도 필요하겠다 싶고요. 전 일하지 않는 시간에 누워있는 걸 좋아합니다. 부모님이나 가족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여가를 능동적으로 하는 모습을 많이 못 봐서인 것 같아요. 동경하지만 잘 모르고 어렵고 진입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학선 “(문화생활에 대해) ‘어차피 먹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포도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의 덕질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온 것 같아요”

영태: 책 보는 걸 좋아해요. 한참 사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엔 좀 시들해졌어요. 새로운 문화생활을 찾고 있어요. 집에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있으니까 ‘이렇게 나태해져도 되는가’ 싶더라고요.

다운: 저도 민아 님처럼 정리를 해왔는데요. ‘문화생활이 나에게 뭔가’가 첫 질문이길래 ‘개인에서부터 시대적인 것까지 생산한 어떤 걸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봤어요. 작게는 개인이 무언갈 만들어서 같이 공유하고 느낀 점을 나누는 것도 문화생활이 될 수 있겠죠. 좀 더 의미 부여를 하면 문화가 시대를 표현할 수도 있다고 봐요.

#나의 문화생활 연대기

민아: 답변을 적어 온 저부터 ‘나의 문화생활 연대기’를 발표해 보겠습니다. 저의 덕질 시작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일본어를 애니메이션으로 배웠어요’ 수준이에요. 대구 밖에 처음 나갔던 건 고3 수능을 마치고 간 서울 코믹 페스티벌이었어요. 대학생 땐 아르바이트를 해서 콘서트도 갔어요. 2013년부터 뮤지컬을 보기 시작했는데, 첫 작품이 부산에서 본 레미제라블이었어요. 그즈음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인 슈퍼주니어 려욱이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시작했죠. 그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다른 배우가 하는 같은 뮤지컬을 예습 차원에서 미리 보기도 했어요. 그때 뮤지컬 작품 자체가 좋아진 거죠. 그러면서 작품에 나온 배우들을 찾아보고, 그 배우들이 나온 작품을 찾아보다 정신을 차리니 대학로에서 살고 있었어요.

보현: 그럼 대구에서 대학로까지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한거죠?

민아: 네. 지금도 왔다 갔다 하죠. 평일에는 못 가니까 주말에 올라가서 낮 공연, 밤 공연을 보고 내려와요. 10년 전 체력이 좋을 땐 오전 9시 서울에 가서 10시 미술관이 오픈할 때 전시를 하나 보고 2시에 공연 보고, 6시에 공연을 본 뒤 막차를 타고 내려오곤 했어요. 요샌 체력이 안 돼서 자주는 못 해요.

경진: 그럼 덕질 생활을 학생 때부터 시작한 거예요?

민아: 계산해 보니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했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소득이 생기기 시작한 게 2012년 즈음이거든요. 적지만 월급을 모아서 갔어요. KTX를 못 타면 무궁화를 타고 올라가기도 했어요. 대학로 뮤지컬은 비교적 싸거든요.

경진: 저도 직장을 가진 게 덕질 생활에 큰 사건이었어요. 금전적 여유도 생겼지만, 학생 땐 온전히 내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이랄 게 없잖아요. 진로에 대한 심적 부담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직장인이 되면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온전히 쉴 수 있으니, 갖고 싶던 걸 사서 여가를 보내거나 하는 게 가능한 거죠.

학선: 학생 때 취미가 마술이었어요. 처음 마술을 봤을 때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을 본 경험이 많진 않아요. 마술은 주로 영상으로 교류하거든요. 앞에 말해주신 분들과 다르게 전 오히려 돈을 벌면서 취미가 끊어졌어요. 처음 취업을 19살에 왜관에 했거든요. 몇 년을 외딴 곳에서 지내다 보니 인생에 흥미가 없어졌어요.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짐가방을 이만큼 둘러매고 왜관에서 자주 나왔거든요. 어느 순간 체력도 체력인데, 뭔가를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먹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포도 같은 마음이 든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의 덕질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온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현: 아직 ‘할 수 없는 상태’라 말하기엔 너무 젊은데요.

영태: 나이가 들수록 자극의 역치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땐 SF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는데 현실을 살면서 더 이상 같은 걸 봐도 그때 그 기분이 들지 않더라고요.

민아: 문화의 기본 속성은 확장이라고 봐요. 다들 너무 의미를 찾는데, 전 문화생활이 삶의 쉼표라고 생각하거든요. 일하는 현장에서 나를 똑 떼어내서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 넣는 활동이에요. 뮤지컬을 보거나 SF 소설을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뮤지컬을 보는 2시간 30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늘 토론에 섭외를 받고 ‘내가 뮤지컬을 왜 좋아하지’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누가 떠먹여주는 책 같은거예요. 뮤지컬은 음악과 춤으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잖아요. 아주 강렬한 강도로 메시지가 다가오는 거죠. 영화보단 뮤지컬이 더 높은 감도가 있어요.

지금 진행 중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딤프)에 ‘나인투파이브’라는 영국 뮤지컬이 올라왔거든요. 1980년대가 배경인데 ‘10년 후면 동일한 노동을 했을 때 여성과 남성이 같은 임금을 받는 게 당연해질 거야’라는 대사가 나와요. 물론 2023년인 지금도 세시스탑(남녀 임금 격차 문제를 제기하는 퍼포먼스)을 하죠. 제가 이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공무원 아저씨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그 자막이 그들에겐 좀 새롭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음악극 태일’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서울에서 ‘목소리 3부작’으로 만든 음악극인데, 그걸 보면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30 세대가 좋아할 법한 감성이에요. 실제로 어떤 분이 친구를 데리고 보러 갔대요. 서울 친구인데, 그 작품을 보고 대구에 와서 남산초등학교를 갔다더라고요. 전태일이 청옥에 다녔을 때를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하잖아요. 그게 문화예술이 할 수 있는 확장인 거죠.

▲민아 “문화의 기본 속성은 확장이라고 봐요”, 다운 “그 확장을 어릴 때 경험하고 직업까지 삼게 된 것 같아요”

다운: 민아 님이 얘기하신 확장을 저도 어릴 때 경험하고 직업까지 삼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자주 접했거든요. 그 장소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가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거죠. 20대 초반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슬픈 영화를 많이 봤는데, 영화 속 장소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것 같아요.

학선: 문화에서 불평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을 시기·질투 했어요. ‘저 사람들은 왜 뭐가 하고 싶을까, 누군가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많이 봐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던 거죠. 예전엔 문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건데, 위험한 생각이죠. 지장이 없으면 그만이 아니잖아요. 기름칠을 안 해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문화생활을 통해서 하고 싶은 게 생기기도 하잖아요. 얼마 전 ‘청설’이라는 대만 영화를 봤는데, 가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너의 이름은’ 영화를 보고 일본에 가보고 싶어졌고요.

저뿐 아니라 많은 청년이 갖고 있는 딜레마 같기도 한데, 뭔가를 하면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내부와 외부에서 느끼는 것도 같아요. 마술을 좋아할 때 아빠가 ‘할 거면 해라, 밀어줄게, 나중에 돈 벌어올 수 있겠냐?’고 하시는거예요. 재밌어서 하는 거지,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거든요. 그렇게 계산하면 구체적인 경로를 그려야 되잖아요. 확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미쳐야 산다’는 식으로 압박이 들어오면 손을 놓아버리는 것 같아요.

경진: 농악을 오래 했어요. 이건 제가 연습해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호흡, 연결이 더 중요하거든요. 전 플레이어로 하는 활동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건 내가 직접 생산하는 플레이어보다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쪽이지 않나요? 약간 성향의 차이도 있는 것 같고요.

#덕질에도 격차가 있다? 비서울에서 덕질하기

보현: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개인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가장 기대되는 주제이기도 해요. ‘비서울에서 문화생활 하기’인데, 각자의 경험 중심으로 얘기해주세요.

경진: 예전에는 스타리그(스타크래프트 게임 대회)가 지방에 한 번씩 내려왔거든요. 요샌 서울에서만 하더라고요. 흥행이 돼야 하는데, 서울만큼 안 됐던 거죠. 올해 세계 규모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데 전 당연히 갈 생각을 안 하고 감내하고 있어요. 당연히 서울일 테니까요. 이게 저한텐 제일 와닿는 부분 같아요. 취향이 코어 문화보단 마이너한 쪽이라 더 그렇게 느끼는 것도 같고요.

학선: 대회나 페스티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울 다음으론 부산이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잘 돼 있지 않나요? 마술도 그렇거든요. 부산마술국제축제가 유명하고, 영화도 부산국제영화제가 크잖아요.

민아: 뮤지컬 축제는 서울을 제외하고 대구에서만 해요. 서울에 있는 덕후들이 딤프 기간에 내려오는 거죠. 뮤지컬도 ‘대포(대포처럼 부피가 큰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한 팬)’ 언니들이 있거든요. 말투를 들어보면 서울 사람들이에요. 주말에 한 번 내려오고, 평일에는 서울에 있는 저희 표현으로, 최애 본진의 공연을 봐요. 대구에는 공연이 그렇게 내려온다 해도 평일에는 잘 안 해요. 평일 저녁까지 사람들이 공연을 안 보거든요. 그래서 대구에선 지역 공연을 해도 평일 공연을 하는 경우를 잘 못 본 것 같아요.

경진: 문득 궁금한데, 만약 시가 아닌 군 단위에 살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민아: 광역시에 살기 때문에 이 격차를 더 느끼는 것 같아요. 대구는 그래도 교통의 요지잖아요. 전라도와 강원도를 제외하곤 대체로 갈 수 있잖아요. 그래도 격차는 확실히 존재해요. 숫자를 적어왔는데, 문화 분야 사업체 수 10만 4,000개 중 수도권이 57%, 종사자 수 78대 22, 매출액 87대 12 정도의 차이가 있다더라고요. 특히 공연 문화는 인프라, 프로그램, 인력 3개가 핵심인데 특히 지역엔 인력이 없죠. 저는 특히 배우진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약간 무리해서라도 서울에서 김준수의 공연을 보고 부산에서 조승우 공연을 보고 싶잖아요.

학선: 전 문화격차라는 게 선뜻 안 와닿아요. 서울에 안 살아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일자리 격차라고 하면 뭔가 목줄을 쪼이는 느낌이 들잖아요. ‘문화격차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맞이하는 결말이 뭔가’라 했을 때 잘 상상이 안 돼요. 장기적으로 안 좋을 것 같긴 한데 좀 막연하고, 그래서 ‘이게 위기인가, 심지어 차별인가’라는 감각이 별로 없어요.

다운: 고3 때 학교수업에서 앤디워홀을 배웠거든요. 마침 서울에서 앤디워홀 전시를 하는거예요. 친구들이랑 버스를 대절해서 당일치기로 전시를 보러 갔어요. 새벽에 보호자 한 명이랑 다 같이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했고, 줄을 섰는데 어떤 또래 아이가 엄마 손에 끌려서 왔더라고요. 슬리퍼를 신고 와선 보기 싫다고 엄마에게 투정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격차를 느꼈어요. ‘내가 컸을 때와 쟤가 컸을 땐 분명 다를 것’이라는 느낌이 왔어요.

경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외부 자극보단 자기가 얼마나 절실하고,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 문화격차는 극복할 수 있는 종류라고 생각해요.

보현: 이 주제를 ‘문화생활’ 토론에 넣은 취지를 잠깐 설명하고 넘어갈게요. 수도권으로 문화뿐 아니라 모든 게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 명제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고 봐요. 그래도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만난 지역 영화인들이 특히 그랬거든요. 오오극장이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도 있고요.

다운: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구에선 꾸준히 우리가 지금 해야만 하는 말들을 담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영화 속 외침들이 사람들에게 닿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앞서 민아 님이 겨우 대구까지 내려온 뮤지컬 순회공연 티켓이 주중에는 잘 열리지 않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도 하셨지만, 백번 공감하면서도 주최자 입장이 이해는 가거든요. 주중에 영화 GV(관객과의 대화) 좌석이, 안 그래도 작은 상영관의 반도 차지 않아 민망한 경우를 종종 봐요. 있어도 소비하지 않는 문화와 특정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지만 사람들이 터져나가는 행사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죠. 문화격차를 아쉬워만 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문화생활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민아: 예를 들면 이런거예요. 올해 초 제가 가장 재밌게 본 뮤지컬 작품이 ‘마틸다’예요. 많이들 아시는 작품이죠. 학대당한 아이들이 주인공이에요. 움추려 있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거든요. 원작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작가가 썼는데, 그 작가가 소외당하고 학대당하고 차별받는, 억눌린 아이들이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정작 그 공연은 티켓값이 어린이라도 13만 원, 할인을 받아도 11만 원 정도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야 혼자 가면 되지만 심지어 애들은 혼자 못 오잖아요. 아이 두 명 포함한 4인 가족이 뮤지컬을 보러 온다 하면 60만 원인거예요.

그런데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가면 초등학교 고학년 애들이 반에서 같이 와요. 어떻게 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낮 시간에 체험학습 형태로 오는 거예요. 아마도 집이 서울인 친구들은 그런 문화와 공연과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거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지방 애들은 아무도 못 보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이 뮤지컬은 아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들을 케어하는 것까지 라이센스가 걸려 있거든요. 건강관리도 계약 조건인 아역배우는 지방투어를 할 수 없어요. 이걸 보려면 무조건 서울에 가야 하는거죠. ‘이런 아이들이 봐야 한다’라는 작가의 의도가 있지만, 정작 ‘이런 아이들’은 못 보는 거죠. ‘이런 아이들’에는 자연스럽게 지방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포함되는 거예요.

▲영태 “우리 토론모임 단골 소재이지만 결국 격차 이야기거든요. 문화에 포함되는 노래, 영화, 그림, 사진은 판단을 하려면 일단 봐야 하잖아요”

영태: 우리 토론모임 단골 소재이지만 결국 격차 이야기거든요. 문화에 포함되는 노래, 영화, 그림, 사진은 판단을 하려면 일단 봐야 하잖아요. 그 경험을 쌓기 위해 서울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우린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추가로 생기는 거죠.

학선: ‘문화라는 게 결정적인 순간에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애들을 모아서 문화생활을 시켜주는 활동이 있었거든요. 양식집에 가서 포크, 나이프 쓰는 법을 알려주는 거죠. 딱 봐도 그런 데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애들이거든요. 그리고 교보문고 들러서 책을 한 권 사주고 영화를 한 편 보여주는 식이에요. 이런 걸 인위적으로 해야 할 만큼 사실 문화라는 게 형편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거잖아요.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거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민아: 아이돌 콘서트가 같은 맥락인데요. 요즘은 초등학생도 부모님을 졸라서 콘서트에 가거든요. 그런데 아이돌 콘서트에서 지방 공연, 그러니까 전국투어가 없어진 지 좀 됐어요. 예전 HOT, 동방신기가 한창 활동할 때만 해도 대구 실내체육관 공연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2.5세대 아이돌부턴 해외투어를 돌지, 전국투어를 돌지 않아요. 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내 가수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서 엄마를 졸라서 가거나 포기하게 되는 거죠. 서울 콘서트장을 가보면 어떤 모습이 보이냐면요. 연령대가 어린 친구를 부모님이 차에 태우고 와서 응원봉을 하나씩 사서 쥐여주고 공연장에 넣어놓곤 밖에서 기다려요. 요새 세상이 흉흉하니까, 올림픽 공원 근처에서 돗자리 펴고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대기해요. 지방에서 올라가는 아이들한테는 이 부대비용이 엄청 큰일이 되는 거죠. 버스 대절해서 올라가는 팀을 보면 10대나 그보다 어린 애들도 간혹 있어요. 특히나 요샌 SNS가 워낙 발달해서 집에 앉아 있으면 트위터로 실시간 생중계가 돼요. 내가 못 간 것에 대한 박탈감이 더 크게 오는 거죠.

#’나의 문화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해 본다면?

보현: 얘기를 듣다 보니 이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문화복지카드 같은 게 지금보다 활성화되어서 교통비를 지원해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지역 문화 생태계 차원에선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해요.

민아: 저도 그게 고민이에요. 최근 3년 정도 서울예술단이라는 극단을 좋아했거든요. 재단법인인데 전통무용 하는 분도 계시고 뮤지컬 배우들도 있어서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섞여서 작품을 만들어요. 1년에 4편의 작품 정도를, 1편당 2주 정도 올리는데, ‘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원으로도 매년 가입해요. 한 3년 정도 하고서 생각했죠. ‘대구에는 이런 게 없나?’ 찾아보니 대구시립극단도 있더라고요. 근데 선뜻 가입할 마음이 안 생겼어요. 트렌드가 좀 달라요.

학선: 사치스러운 고민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예를 들어 하루 정도 직장에 연차를 낼 수 있고, 자영업자더라도 하루 영업 안 할 수 있는, 애도 학원에 하루 안 가도 되는 정도의 조건이 완성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고민 같아서···. 결국 어떤 주제든 저는 의식주로 갑니다. (웃음)

명은: 우리 노동시간이 문제입니다. 원시예술 시대에는 벽에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잖아요. 노동시간이 길어져서 예술을 충분히 향유할 수 없게 된 거예요.

학선: 돈을 적게 받는 것도 문제인데 노동시간이 긴 사람들은 다 저임금 노동자들이거든요. 노동시간이 적고 주 40시간을 보장받는 사람들이 정규직인 데다 월급도 많이 받아요. 이 노동시간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보현: 아, 안 됩니다. 주제로 돌아와야 합니다.

경진: 지역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충분히 보고 즐기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까이 있어도 안 볼 사람은 안 본다는 게 저의 지론이거든요. 여러 복잡한 상황이 있지만 문화에도 지역마다의 특수성이 있는거죠. 예를 들어 전 농악 활동을 하거든요. 평택, 전주, 전북 등 유명한 지역이 있는데 지역마다 (스타일이) 다 달라요. 그 차이를 구별하는 걸 스승님한테 배우니까 오히려 촌에 가야 돼요. 제 문화생활 같은 경우엔 필요한 걸 찾아내고 그거에 맞는 곳을 가야 하는 거죠.

▲명은 “원시예술 시대에는 벽에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잖아요. 노동시간이 길어져서 예술을 충분히 향유할 수 없게 된 거예요”

민아: 누군가는 원류를 잘 지켜야 하겠죠.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처럼 매스미디어 영향을 많이 받는 문화예술은 잘 모르겠지만 농악 같이 지역색이 분명히 있는 분야는 특히 그렇죠. 또 한편에선 대중화하는 사람도 필요해요. 두 가지가 같이 잘 갈 때 언젠가는 둘 다 빛을 발하겠죠.

제 생각엔 최근 뮤지컬 트렌드가 판소리예요. 작년에 제가 5번 본 작품이 ‘적벽’이거든요. 판소리 뮤지컬인데, 너무 재밌어요. 부채 하나로 적벽대전도 하고 오만 걸 다 만들어요. 그런데 올해 딤프 창작 지원작과 공식 선정작에 판소리 작품이 꽤 많아요. 실제 국악 반주를 쓰는 뮤지컬이 계속 늘고 있거든요. 작년까진 여성 서사 뮤지컬이 대세였어요.

경진: 이게 아까 민아 님이 말한 트렌드군요.

민아: 맞아요. 이렇게 트렌드에 따라 작품 흐름이 바뀌어요.

보현: 자, 이제 각자 한마디를 하며 모임을 마무리해 볼까요?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동일해요. ‘나의 문화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해 봅시다. 서로의 문화생활과 덕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해지거나 바뀐 생각이 각자 있을 것 같아요.

경진: 전 돈을 주고서라도 나를 살찌우는 것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학선: 늘 닿고 싶지만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그래서 더 시기하고 질투하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더 멀어지는 것, 밀당 같아요.

민아: 미리 써왔습니다. 좋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게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생활 경제 강사로서 짚어보면 좋은 삶을 위해선 시간, 공간, 관계가 필요해요. 4가지 부라고 해서 경제적 활동을 기반으로 사회적 관계망도 잘 만들어야 하고, 나와 맺는 시간도 잘 가져야 하고, 자연환경·공공재 같은 인프라도 중요하죠. 문화생활을 잘하기 위해선 이 모든 게 필요해요. 특히 공공의 영역을 잘 갖추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행히 대구는 구별론 극장이 하나씩 있어요. 딤프가 수성구, 남구, 서구 등 구별로 극장 배분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서구를 낙후된 지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창작 지원작을 넣으면서 젊은 사람들이 서구로 가게 하는 등의 노력이 있는 거죠. 이런 조건이 잘 갖춰져야 우리가 한 편이라도 뮤지컬을 볼 수 있어요.

명은: 전 요즘 경험을 안 해본 영역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파워풀 축제에 갔는데 딤프 티켓 부스가 있더라고요. 추천을 받아서 2개 공연을 봤어요. 클래식 공연도 도전해 볼까 싶어서 콘서트하우스 공연을 찾아봤어요. 생각보다 비싸지 않더라고요.

영태: 제가 겪어볼 수 없는 걸 대신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문화생활 같아요. 영역을 확장할수록 내 삶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운: 어릴 때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간접 경험을 포함해서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확장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최근엔 좀 게을러진 것 같아요. 외부 자극에 무뎌지면서 삶이 팍팍해지는 것도 같아요.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학선: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합니다.

보현: 저도 비슷합니다. 여유가 좀 있고 나의 취미, 취향이 분명하면 일과 삶의 구분이 지금보단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온전히 쉬고 즐기는 것보다 SNS에 전시하는 걸 신경 쓰는 것도 같고요.

영태: 제가 그래서 어제 인스타그램을 지웠습니다. 아이디를 없애진 않았고 앱만.

보현: 전 페이스북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지웠다가 다시 깝니다. (다 같이 웃음)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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