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현충일이 외면한 ‘영웅’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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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조기를 게양하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태극기를 샀다. 현충일을 앞두고 학교에서 계기교육을 받은 효과다. 아이들과 진지하지 않게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을 6.25전쟁이 낳은 참상인 민간인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스푼 더 얹었다.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을 TV로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직업정신이 발동했다. 올해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현충일 추념사를 할까 예측해 봤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추념사를 뜯어봤다. 형태소로 분류해서 5회 이상 언급한 단어를 추려보니, 국민이 12번, 국가와 우리가 각각 6번, 자유와 영웅이 각각 5번 등장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듯해서 2000년대 이후 대통령의 첫 현충일 추념사 전문을 같은 방식으로 분석했다. 나름 의미 있는 결과가 보였다.

‘영웅’을 5회 이상 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고, ‘자유’를 5회 이상 쓴 것은 윤석열, 박근혜 둘이다. ‘자유’라는 단어를 애정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는 인색한 분이기에 자유를 더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 중에서도 특징은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발전’을 5번 이상 쓴 유일한 대통령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화’를 5번 이상 쓴 유일한 대통령이다. 아무튼 올해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도 ‘자유’와 ‘영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이름 없는 ‘영웅’을 얼마나 대접하고 있는지도 궁금할 일이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전쟁터로 나선 소년·소녀에 대한 예우가 궁금해졌다. 참전명예수당 수급인원을 근거로 추정한 결과 소년·소녀병 참전자는 총 2만 9,622명(전후생존자 2만 7,049명, 전사자 2,573명)이다.

육군본부 자료에 따르면 후방에서 근무한 학도의용군을 포함하면 27만 5,000여 명인데, 이들은 참전명예수당 대상자가 아니다. 국방부는 병적기록이나 병적기록을 대체할 만한 근거 문서 (사진, 당시 일기 등)가 있어야 국가유공자로 인정한다. 전우의 보증도 인정되지만 고령이라 대부분 숨지고 찾기도 어렵다.

2020년 6월 15일 ‘6·25참전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소년·소녀병과 전쟁 이후 병역의무 이행을 위하여 다시 징집된 이중징집자 등에 대하여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특별한 희생’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올해 2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니 보상금이라는 표현과 예산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소위원회에 참석한 국방부 차관은 “소년·소녀병 징집은 첫째,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 등 관련 법령을 통해서 징집했기 때문에 본문 중에 ‘부당한 징집’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고요. 소년병중앙회에서도 전쟁 후 이중징집은 없었다고 인정한 점을 고려 시 내용 중 이중징집 규정은 삭제하는 등과 같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보상금이 아니라 위로금으로 표현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기획재정부 행정국방예산심의관은 “보훈처 보훈체계라고 하는 것이 특별한 희생과 공헌도에 따라 보상을 하는 건데 지금까지 보훈처, 국방부의 검토 의견하고 저희 쪽으로는 특별한 희생은 이중징집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는 게 입장···”이라고 말했다. 보상금과 특별한 희생에 대한 이견이 오가다가 타협점으로 새로운 대체 법안을 임병헌 의원이 발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내년 4월 총선 전에 통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이미지

얼마 전 고등학교 3학년이 전쟁에 투입됐다는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을 보고서 강제징집된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다시 봤다. (영화에서 원빈이 분한 이진석은 만17세로 강제징집되고, 이은주가 분한 김영신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다.) 현충일 추념해야 할 ‘영웅’ 중에 평균연령 15.6세 소년·소녀병을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살아갈 ‘자유’를 빼앗긴 민간인 희생자를 추념하는 것이 지켜야 할 자유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