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발길이 닿는 곳마다 호국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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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국보훈의 달, 유월이다. 팔도강산 어느 곳에 가도 외세의 침략에 나라를 지키며 항전한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외세의 크고 작은 930여 회 침략을 물리친 자국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후기 때부터 큰 전쟁만 보더라도 30년 동안 몽골과 전쟁, 조선시대 때 7년간 임진왜란, 그리고 병자호란을 겪었다. 구한말 열강의 침략, 35년의 일제 강점기를 들 수 있다. 게다가 6·25전쟁은 현재 정전 상태이다.

때문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6·25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군 13만 7천여 명, 유엔군 3만 7천여 명이 전사했다. 북한군과 중공군의 전사자는 이보다 3배 이상이다. 지금도 이 땅에는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6·25전쟁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 가족, 친척 중에 누군가는 이 전쟁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또, 천만 이산가족을 낳았으니 5명 중 한 사람은 이산가족인 셈이다. 필자의 가족도 외삼촌과 5촌 당숙이 전사했고, 아버지는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필자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지구 전투의 격전지였던 군위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전쟁의 참상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군 복무 중 17번 이사하며 힘들었지만 설렘도 있었다. 새 부임지마다 호국의 성지(聖地)가 반겨 주었다. 고귀한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을 생각만 해도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해 주었다.

현재까지 가장 자주 찾았던 전적지는 백마고지와 다부동이다. 당시 전투상황을 그려보며 수많은 전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의 아픔을 생각해 본다. 부상자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필자의 부끄러운 과거가 떠오른다. 잃은 팔 대신 쇠고리를 찬 상이용사들 보고 도망치기도 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바친 팔을 보고 무서워했으니…

철원에 있는 백마고지는 현재 비무장 지대에 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10여 일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고지의 주인이 24번 바뀌었다. 포탄이 2만 발이나 떨어져 나무 하나 없이 흰 산이 되자,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처럼 보여 백마고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1999년 백마부대에 근무할 때 ‘백마고지 승전 추모제’에 참석했다. 70대 중반의 참전 전우, 유족이 오열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여건이 되면 추모제에 갔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참전 전우의 늘어난 빈자리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이분들은 이 땅을 지키다가 장렬히 산화한 전우의 곁으로 떠나셨지만 백절불굴의 군인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고향에 갈 때마다 다부동 전적지에 들린다. 우리 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낙동강지구 전투에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인천상륙작전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전투는 군인, 경찰, 학도병, 노무자, 여성까지 참전한 국민 총력전이었다. 이 전투에서만 약 1만 명의 아군 전·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피로 물들인 낙동강을 상상해 본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매년 찾아오는 6월이 아니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만나는 6월이다. 상이용사를 보고 도망쳤던 부끄러운 과거를 깊이 뉘우친다. 먼저 이웃에 있는 보훈가족을 찾아뵈어야겠다. 우리나라는 어디 가도 호국의 성지이다. 여기에 깃들어 있는 애국충절의 정신을 이어받아야겠다. 호국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