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감삼동 전세사기···“집이 감옥 같은데, 나올 수가 없다”

보증금은 결혼자금, 신혼집, 20대를 바쳐 모은 돈
특별법 시행됐지만 적용까진 최대 2개월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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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감삼동의 한 건물에서 전세 피해가 발생했다. 1~2층 상가, 3~9층 오피스텔, 10~19층 아파트인 A 집합건물 102세대 중 피해가 발생한 12세대는 부동산 시행사인 B 법인이 소유하고 있다. 12세대의 전세보증금을 모두 합하면 28억 원이다. 피해자들은 2년 동안 각개전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다 6월초 한자리에 모여 공동대응을 시작했다. (관련기사=대구 감삼동 집합건물 12세대 28억 원 전세 피해 우려 (23.06.12.))

<뉴스민>은 감삼동 A 건물에서 전세 피해를 입은 12세대 중 4세대의 세입자 5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각 세대의 2억 원대 보증금은 이들이 20대를 바쳐 모은 돈, 결혼자금, 신혼집을 마련할 돈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피해 입증도, 돈을 달라고 쫓아다니는 것도 모두 피해자 몫이다.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도 여전히 팽배하다”며 “집이 감옥 같아서 나오고 싶은데,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A 건물에 입주한 이들의 삶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보증금은 결혼자금, 신혼집, 20대를 바쳐 모은 돈

박형석(40대, 가명) 씨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건물에 입주한 건 2021년 7월이다. 계약 당시 “법인 전세라서 불안하다”고 말하자, 공인중개사는 “안전하다, 등기부등본이 깨끗하지 않냐. 1순위로 올라가 있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박 씨를 안심시켰다. 하나은행에서 대출을 내 38개월의 전세계약을 맺었다.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대출이 나오니 마음이 좀 놓였다.

▲2022년 4월 박형석 씨 현관문에 붙은 경매 진행 개시 용지. (사진=박 씨 제공)

문제는 곧바로 터졌다. 입주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초, 현관문에 경매 진행 개시 용지가 붙었다. 박 씨와 전세 계약을 맺은 B 법인 대표는 “공사 대금으로 인한 분쟁이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해 11월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속만 끓었다. 다행히 3개월만에 가압류가 풀렸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해 4월 다시 가압류 설정과 경매 진행 개시 종이가 붙었다. 현재까지도 5억 6,000여 만 원의 가압류가 남았고, 세금 체납 때문에 수성세무서와 달서구로부터 압류가 된 상태다. 그사이 금리는 올라 대출금 2억 원에 대한 이자는 40만 원에서 110만 원까지 늘었다.

문제 대응을 아내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 경남 하동에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과 자영업을 시작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아내는 우울증이 생겼다.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큰 성과는 없고, 다툼이 잦아졌다. 부부 상담에서 아내는 “결혼하자마자 이런 상황에 처하니 불안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성민지(30대, 가명) 씨가 전세 계약을 맺을 때도 공인중개사는 “안전한 매물”이라고 강조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잠깐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찾았다. 월세보단 전세가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성 씨는 20대 내내 일하고 받은 퇴직금에 하나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보태 보증금을 마련했다. 올해 말에는 결혼할 사람과 분양받은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성 씨의 계약 만료일은 이달 3일, 벌써 열흘이 지났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집을 뺀 세대도 있다. 2021년 6월, 김민석(30대, 가명) 씨는 1년 전세계약을 맺고 이곳에 입주했다. 다음해 6월 분양받은 신혼집에 입주할 계획이었다. 처가에서 1억 원을 빌리고 그동안 모은 돈을 일부 더해 보증금을 마련했다. 계약기간 만료 즈음 신혼집 잔금을 치러야 하니 집을 빼겠다고 하자 돈을 못 돌려준다는 통보가 돌아왔다. 아내는 일을 시작했고 아이는 유치원에 하루 종일 있어야 했다. 임대를 놓은 회사인 법인 사무실에 찾아가 사정사정해 2,000만 원을 돌려 받았다. 전체 보증금 2억 4,000만 원의 10%도 안 되는 돈이었다. 임차권 등기를 설정하고 우선 집을 뺐다.

30대 이현수, 현아(가명) 자매도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1년 전세계약을 맺었지만 여전히 집을 빼지 못한 상태다. 두 사람은 수도권 부모님 집에 살다가 언니 현수 씨 일 때문에 대구로 왔다. 자매가 20대 내내 모은 돈과 하나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더해 전세금 2억 7,000만 원을 마련했다.

1년 전세계약이 만료되던 지난해 8월, 두 사람은 다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전세 문제가 걸리면서 돌아가지 못했다. 코로나19에도 근근히 버티던 사업은 타격이 쌓이면서 생활고까지 찾아왔다. 임대를 놓은 법인 사무실을 찾아가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무릎 꿇고 일부라도 돌려달라며 읍소해 2,000만 원을 돌려 받았다. 두 사람은 부모님에게도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 시행됐지만 적용까진 최대 2개월

이들은 각자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다가 지난 6월초 카톡방으로 모였다. 박형석 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12세대를 모아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외부와 소통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현수, 현아 씨 자매는 B 법인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대응하고 있다. 성 씨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살펴 지원받을 수 있는 내용을 관련 기관에 확인하고 카톡방을 통해 공유한다.

▲12세대의 전세 피해가 발생한 죽전역 인근의 A 건물. 부동산 시행사인 B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12세대의 전세보증금을 모두 합하면 28억 원이다.

세입자들은 전세계약이 이뤄지자마자 가압류와 경매가 진행된 점과 애초 전세계약을 맺은 법인 대표가 바뀐 점을 들어 임대 놓은 법인 측이 사기 의도가 가졌다고 본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B 법인은 주택‧아파트 신축, 분양, 매매업 등을 영위하는 부동산 시행사다. 2021년 6월에서 8월 사이 12세대와 전세 계약을 진행했고 같은 해 10월 20일 대표가 바뀌었다.

박 씨는 “법인은 세입자 보증금을 가져다 개인 빚을 갚거나 사업에 썼을 거라고 추정한다. 사실상 우리에게 무이자 대출을 받아 간거다. 반면 세입자들은 고금리의 이자를 갚으면서 약속한 기한이 지나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다들 삶이 바쁘다 보니 시간 내서 모이기조차 어렵다. 맞벌이나 부업을 해서 이자라도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현아 씨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겠다. 사전에 충분히 알아볼 장치도, 문제가 생긴 다음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전세사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이런 구조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라 대구시에 피해임차인 신청을 한 상태지만 결과가 나오는데는 최대 2달이 걸린다. 12일자로 대구시가 조사를 마치고 국토교통부로 넘겼고, 안건이 상정되면 국토부는 30일 이내로 임차인에게 결과를 송달해야 한다. 피해 임차인이라는 결정이 나면, 그다음 임차인은 관련기관에 지원 혜택을 신청할 수 있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경찰도 조사에 나섰다. 성서경찰서 측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사기 혐의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