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법원, ‘아랍의봄’ 시위 참여자 가족도 난민 인정

무슬림형제단으로 반군부 활동 나선 A 씨와 그 가족들
A 씨 궐석재판에서 징역 10년 선고 받은 후 2018년 망명길에
재판부, A 씨 박해 가능성 인정···가족 결합 원칙에 따라 배우자·미성년 자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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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법원이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은 이집트 출신 난민 가족을 모두 난민으로 인정했다. 2013년 ‘아랍의 봄’ 시위 참가자인 A 씨와 그 가족 등 5명에 대해 대구지방법원이 A 씨가 받을 박해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가족 결합의 원칙’에 따라 가족까지 모두 난민으로 인정했다. A 씨는 시위 참여 후 경찰에 잡혀가 고문 및 폭행 당하고, 6개월간 면회 금지 상태에서 구금됐다가 궐석재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아, 가족들과 한국으로 망명했다. (관련 기사=대구법원, 난민 첫 인정···’아랍의 봄’ 참가자 난민불인정 취소 판결(‘23.6.9.))

지난달 31일 대구지방법원 행정1단독(재판장 허이훈)은 아랍의 봄 시위 이후 징역 10년을 받고 한국으로 망명한 A 씨의 난민 지위를 불인정한 법무부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A 씨를 난민으로 인정하면서 A 씨와 함께 한국에 온 그의 아내와 미성년자, 세 자녀 또한 함께 난민으로 인정했다.

2018년 4월, A 씨 가족은 한국에 입국하면서 난민 인정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는 면접을 거쳐 2021년 이들의 신청을 불인정했다. 이들은 법무부 처분에 불복해서 이의신청을 했지만 마찬가지로 인정받지 못했고, 대신 인도적 체류 허가는 받았다. 이후 A 씨 가족은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재판부는 A 씨 진술이 신빙성 있으며 증거로도 뒷받침되고, 이집트로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으리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 씨는 1999년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하고, 무슬림형제단에 기반을 둔 자유정의당에서 활동했다.

A 씨는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30년을 장기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된 후 선출된 첫 민선 대통령(무하마드 무르시)마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자, 2013년 7월경 람세스 광장 등에서 군부 반대 시위에 수차례 참여했다.

2014년 7월 A 씨는 무슬림형제단으로 국가 기물을 훼손하려는 모의를 하는 것 같다는 혐의로 경찰 잡혀가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A 씨는 2015년 1월까지 6개월간 구금상태에서 면회 또한 금지당했으며, 석방 후에는 형사법원에 기소됐다. A 씨는 참석하지 않은 궐석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A 씨는 외출 중 징역형 선고와 경찰이 집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하지 않은 채 은신하다가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감시와 체포가 이어지자 한국으로 망명했다.

재판부는 “이집트로 돌아갈 경우 정부로부터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진 사람으로서 국적국인 이집트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인정된다”며 “부부 중 1인이 난민 인정의 요건을 충족하면 가족 결합의 원칙에 따라 그 부양가족으로서 최소한 배우자와 미성년인 자녀에게도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한민국이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한 1994년 이후 대구에서 이뤄진 난민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난민 인정 판결이 나온 사례는 A 씨 가족 건을 포함해 2건 뿐이다. 지난달 31일 대구법원은 A 씨 가족 사건과 또 다른 무슬림형제단 소속 난민 신청자 B 씨 등의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까지 이뤄진 재판 1,390건 중 계류 중인 91건을 빼면 모두 법무부가 승소하거나 난민 신청인 측이 재판을 포기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