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인근에 문 연 경산반려동물입양센터···”바른 입양 문화 만들고 싶어”

대구·경북 동물구조단체 러피월드, 사비 들여 개소
여느 유기동물 보호소와 달리 도심에 자리 잡아
입양 희망자와 상담하고 교육까지···"준비 안 된 입양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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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모두가 좋은 가족들 만나면 좋겠어요”

입양을 빨리 보내고 싶은 강아지가 있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다. 지역민들에겐 동물구조 활동가 ‘둘리맘’으로 더 유명한 류미선(55) 러피월드 입양센터장에게 이곳에 있는 모든 ‘아이’가 아픈 손가락이다.

“얘는 애니멀호더(능력 이상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위)에게서, 얘는 철거촌에서 주인이 버리고 가서 구조해왔죠.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구조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요. 사연 없는 애들이 없죠. 애들 구조 사연은 밤새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라요. 애정을 주고 관리를 해주니 사랑스럽게 바뀌어요. 가족은 사는 게 아니라 입양해야 하는 거죠.”

▲ 류미선 러피월드 입양센터장과 곽동진 러피월드 대표가 경산에 개소한 ‘경산반려동물입양센터’에서 보호 중이 개들과 포즈를 취했다. 류 센터장은 “여기 있는 애들 모두 좋은 가족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경북 경산 계양동, 대구지하철 2호선 임당역 부근에 ‘경산반려동물입양센터’가 개소했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물구조단체 (사)러피월드가 운영하는 입양센터다. 류미선 센터장과 곽동진 러피월드 대표가 사비를 털어 마련한 공간이다.

기존 유기동물 입양이 도심 외곽에 위치한 보호소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곳은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카페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민들이 오갈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러피월드는 이곳을 유기동물 입양을 돕는 역할 뿐 아니라 반려인에 대한 교육과 올바른 반려문화를 만드는 공간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수도권에는 이같은 입양센터가 여럿 만들어지고 있지만, 대구·경북에선 경산이 처음이다.

곽동진(33) 대표는 “대부분 보호소는 소음과 냄새 민원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 입양센터를 통해서 사람들이 유기동물 문제를 인식하도록 돕고, 이곳 친구들이 좋은 가정에 입양되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적어도 3번은 직접 센터를 방문해서 입양할 아이와 대면하고 입양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입양희망자와 상담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산책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펫티켓 교육도 한다. 반려동물 양육을 위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지만, 교육을 하거나 담당하는 곳이 없다 보니 결과적으로 파양이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준비 안 된 입양을 막아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내용은 입양계약서를 통해 담아낼 예정이다. 러피월드는 입양계약서에 입양 동물을 타인에게 매매, 양도, 유기 하지 않고 성실히 돌보는 것을 비롯해 ▲분실 방지를 위한 이름표 착용 ▲매달 1회 구충제 및 심장 사상충 예방 약속 ▲적합한 사료와 물, 운동, 휴식, 수면, 예방접종, 질병 발생에 따른 병원 진료와 치료 등을 담았다.

입양센터는 오전 8시 30분부터 밤 9시까지 러피월드 운영진과 봉사자가 상주하며 입양을 위한 상담과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선 러피월드 홈페이지이나 전화를 통해 사전 예약을 하는 게 좋다. 러피월드는 후원자들의 후원을 통해 보호소도 운영하고 있고, 160여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이곳에서 보호 중이다. 연말에는 고양이 특성을 고려해 별도 보호시설 겸 입양센터도 개소할 계획을 갖고 있다.

▲동물구조단체 (사)러피월드가 경북 경산시 계양동 대구지하철 2호선 임당역 부근에 ‘경산반려동물입양센터’를 개소했다. 입양센터 전경.

개소하는 날에도 입양센터에는 10여 마리의 유기견이 새 가족을 기다렸다. 낯선 사람들에게도 특유의 ‘꼬리콥터(꼬리+헬리콥터)’를 선보이거나, 넉살 좋게 누군가의 무릎을 차지한 개도 보였다. 헛짖음이나 입질, 싸움을 하는 개는 찾을 수 없었다.

러피월드를 통해 새 가족을 만난 유기견과 반려인들도 개소식을 찾아 축하했다. 구효정(27, 대구 동구) 씨는 러피월드 보호소 봉사를 갔다가 유달리 자신을 잘 따르던 ‘황순이’가 눈에 밟혀 한 달 전 가족으로 맞았다.

구 씨는 “지금은 콩이로 부른다. 2살 정도 성견으로 추정되는데 너무 예쁘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면서 “보시는 것처럼 사람도 너무 잘 따르고, 배변도 잘 한다. 보호소 입양에 선입견이 있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콩이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 찬찬히 쓰다듬었다. 빨간색 강아지용 하네스를 착용한 콩이는 해맑게 구 씨를 바라봤다.

1년 전 러피월드를 통해 ‘밤비’를 입양한 이시연(39, 경남 밀양시)는 새 가족을 맞이하는 일의 어려움과 노력을 강조했다. 이 씨는 “학대를 당했는지 줄을 보면 너무 무서워해서 목줄을 할 수가 없었고, 산책도 나갈 수가 없었다. 1년 동안 여러 훈련사를 찾아다니며 교정 훈련을 했다. 아직 산책은 어렵지만, 많이 좋아져서 목줄은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 씨는 “파양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든 시간도 있었다. 가족으로 들인 아이를 함부로 파양하냐며 어머니가 오히려 격려해줬다. 밤비가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쳐다볼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이 느껴진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류 센터장과 곽 대표는 입양센터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렇게 전했다.

“학대, 방치, 유기에 놓인 동물들 문제는 결국 사람들이 만든 거니까요. 저희가 하는 일은 그런 책임을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냥 입양을 보내면 하루에 수십 마리도 보내겠지만, 올바른 입양 문화를 만드는데 저희가 앞장서고 싶어요. 책임감 있는 입양 문화를 만들고, 동시에 안타까운 동물이 줄었으면 합니다.”

▲ 지난 7일 경북 경산시 계양동에서 ‘경산반려동물입양센터’가 개소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