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6)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자차 없이 살고 있는 시민
존재하되 잘 보이지 않았던 지방 중소도시의 버스 타는 시민들
보행자가 바라본 독일 베를린의 풍경
교통정책 전문인 스테판 겔프하르 독일녹색당 연방의원과의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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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허승규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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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5)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다

▲스테판 겔프하르와 기행단 [사진=허승규]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자차 없이 살고 있는 시민

나는 한국에서, 안동에서 도보, 전기자전거, 대중교통으로 생활한다. 자차가 없는 나는 가족과 지인을 비롯한 ‘남의 차’도 자주 얻어 탄다. 대학, 군대, 직장 등의 이유로 서울에서 20대를 보냈다. 서울에선 그럭저럭 자차 없이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안동에선 대중교통으로 생활하기 여러모로 불편했다. 실시간 버스 도착 정보를 쉽게 알기 어려웠고, 배차 간격이 커서 뜨는 시간이 많았다. 정류장에 기다리고 있는데 시내버스가 빠르게 지나가서 버스를 놓치거나, 손을 들고 급히 버스를 멈추게 한 적도 종종 있었다. 시야가 어두운 야간 시간대일수록 손을 들어 택시를 잡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변에 나와 손을 흔들면서 버스를 잡곤 했다.

특히, 서울에선 ‘마을버스’가 높은 오르막이 있는 동네 구석구석까지 다녔다. 안동에선 걸어가기엔 멀고, 택시타고 가기엔 택시비가 아깝고, 버스타고 가기엔 대기시간과 도보시간을 합치면 걸어가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동선이 자주 있다. 시내버스의 사각지대랄까. 언덕이 많은 안동 시내의 특성상 동네형 마을버스가 곳곳에 배치되면 정말 많은 시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종종 했다. 청소년, 어르신, 장애인, 대학생, 이주노동자 등 많은 시민들이 노선과 배차간격부터 실시간 버스 도착 시스템까지 여러 아쉬움을 감수하고 안동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 이용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로 동네와 시내를 돌아다니면 도로의 턱이 많아서 불편했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좁게 묶여있는 곳에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들이 경합했다. 안동에서 자전거를 통근, 통학, 생활용으로 타려면 여러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자전거는 보편적인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낙동강이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안동의 강변에서 스포츠나 레저용으로 탈만한 수단이었다.

▲정상교차로 [사진=허승규]
▲정상교차로 [사진=KBS라이브오늘]

버스타기도, 자전거타기도 불편하지만 걸어다니기도 쉽지 않다. 안동시 강남동 정상교차로는 몇년째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 인구 밀집 지역인 정하동의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시내버스 중간 종점인 아늑골 정류장이 있는 정상동으로 가려면 기나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 청소년과 어르신이 다수인 버스 이용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눈치껏 횡단보도를 건넌다. 교통사고가 수시로 발생하고, 민원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당국은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고 있다.

정상교차로에 신호등이 생기면 시내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차량 통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우려하는 당국의 고민이 길어질수록, 정상교차로에서 교통사고를 겪는 주민들은 계속 생겨난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위치를 옮긴다던지 보행자 안전을 우선해야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함에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정상교차로처럼 신호등이 작동해야할 곳에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중심의 도로 체계에서 보행자들은 정신차리고 걸어야 한다. 보행자 안전을 지키는 몫은 제도나 문화 이전에 개인의 주의에 달려 있었다.

▲버스타기 좋은 안동 활동 [사진=허승규]

존재하되 잘 보이지 않았던 지방 중소도시의 버스 타는 시민들

시민들의 불편함을 논의하고 해결하는 지역사회 공공의 영역에서 보행자들의 이동권과 대중교통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수십 년 만에 이뤄진 시내버스 노선체계 전면개편 의견수렴 과정에서 청소년, 어르신, 대학생 등의 의견을 담긴 쉽지 않았다. 버스 이용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버스 이용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관거버넌스(협치) 기구는 제도화되지 않았다. 일명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랄까. 부분적으로 대중교통 정책은 개선되었지만, 모두를 위한 이동권을 보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정책 결정권자인 선출직 정치인, 고위 공무원들도 공공교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버스타면 사람이 없다”는 선출직 정치인의 발언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15만 명이 사는 안동에서 내가 본 수많은 시민들은 투명인간인가. 장날이면 도심 버스정류장에 빽빽이 모여 있는 어르신들, 하교 시간대 버스 안에 빼곡히 있었던 청소년들, 버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안동대 학생들, 어르신과 청소년말고도 버스를 이용하는 여남노소 시민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겪은 수많은 풍경들은 지역 정치의 변방에 있었다.

전공은 정치학이고 직업은 정치인인 내가, 개인이 겪는 문제를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문제 해결 또한 사적인(private) 방식이 아닌 공적인(public) 방식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내가 대표인 지역공익단체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에선 ‘버스타기 좋은 안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후위시 시대, 녹색교통을 실현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안동시 시내버스 노선체계 전면개편 대응, 시민 인터뷰, 선진지 견학, 언론 기고 및 출연, 리플렛 제작 및 배포, 버스 체험 영상 제작, 강연회·간담회·토론회 등을 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버스타기 좋은 안동’을 위한 다양한 공약을 내걸고 안동시의원에 출마했다. 올해는 대한민국 최초로 버스공영제를 전면 실시해온 공공교통 모범 사례 지역인 전남 신안군에 견학을 다녀왔다. 버스타기 좋은 안동, 이동하기 좋은 안동을 위한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베를린의 자전거 도로[사진=허승규]

보행자가 바라본 독일 베를린의 풍경

이런 나에게 독일의 교통 풍경은 주요 관찰거리였다. 독일 베를린은 우선 자전거 천국이었다.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에 수많은 자전거들도 함께 달린다. 한국으로 치면 자동차 도로인 구간을 자전거들에게 내주었다. 자전거들이 자동차 도로를 누비더라도 운전하다가 짜증나서 누르는 자동차 크락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독일의 어린이들은 자전거와 수영을 필수로 배운다. 독일의 운전자들 대부분 자전거 면허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배운 독일 운전자들은 자전거 운전자들을 배려한다. 보행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독일의 횡단보도 신호등을 비교하면, 한국이 좀 더 초록불인 시간이 길며, 몇 초가 남았는지도 알려준다. 독일 횡단보도 신호등은 한국보다 더 빨리 신호가 바뀌며, 몇 초가 남았는지 예고도 없다. 횡단보도 신호등만 보면 한국이 더 보행자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보행자가 더 안전하다고 느낀 것은 횡단보도 신호등을 둘러싼 전체적인 시스템과 분위기 차이 때문이 아닐까.

이와 함께 2회차 연재에서도 언급한 49유로(약 7만원) 티켓만 있으면 1달 동안 독일 전역의 버스, 지하철, 트램, 일부 기차 이용이 무제한이다. 한국의 기차 탑승처럼 독일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에 티켓 검사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로 교통카드를 찍지 않아도 되니 버스나 지하철 탑승 시간이 단축된다. 시내버스는 대부분 저상버스였다. 휠체어, 유아차, 자전거, 반려견 모두 편하게 버스에 타고 내릴 수 있었다. 여러모로 다양한 보행자들에게 독일 베를린은 이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은 인구 380만의 베를린이 아닌 독일 지방 중소도시의 대중교통 환경이다. 베를린에서도 충분히 내가 살고 있는 경북 안동에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지만, 세계적인 녹색도시인 인구 23만의 프라이부르크의 사례가 더 적합한 사례다. 4박 5일간의 베를린 일정 이후 다른 지방 중소도시의 풍경이 기대되었다.

교통정책 전문인 스테판 겔프하르 독일녹색당 연방의원과의 간담회

베를린 일정 4일차 오전에는 교통정책 전문인 독일녹색당 연방의원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1976년생인 스테판 겔프하르 연방의원은 2000년 독일녹색당에 입당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베를린 주 의원을 지냈고, 2017년부터 베를린 지역구에서 당선된 재선 연방의원이다. 독일녹색당에서도 지역구 재선 의원은 드문 사례다. 한독의원친선협회 소속이어서, 한국에도 여러번 온 적이 있다. 그는 서울의 자전거 도로 인프라는 잘 구축되어 있었지만, 그에 비해 자전거는 별로 못 봤다는 인상평을 들려주었다. ‘교통 및 디지털인프라 위원회’ 소속인 만큼 독일의 교통정책에 관한 대화가 기대되었다.

▲스테판 의원과 기행단[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스테판은 교통정책의 복합적인 특성을 말했다. 교통정책은 경제적인 문제이자 일상적인 문제이며, 시민들의 체감도가 높은 정책이다. 특히 교통정책은 환경정책과 연계가 높으며, 환경과 경제를 연결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mobility(이동) 전환은 정의로운 전환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교통정책은 자유, 안전과도 연계된 정책이며, 예시로 고속도로 속도 제한과 청소년 자전거 통학을 들었다. 과거 독일에선 고속도로 속도 제한이 없었고, 시속 400km로 운전하는 경우가 있었다. 과연 이러한 정책이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인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청소년 시민이 자전거로 통학하는데 있어서 안전 문제가 뒤따른다. 이처럼 교통정책이 경제, 환경, 자유, 안전 등 여러 가치와 연계된 정책임을 그는 강조했다.

교통안전과 관련한 여러 시민 그룹을 언급했다. 주로 시내와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대표적으로 학부모 그룹을 예시로 들었다. 그의 베를린 지역구 재선 지지 기반에는 이러한 교통안전 그룹의 뒷받침이 있었을 것이다.

스테판은 현재 자동차 도로를 자전거 도로로 당장 전환하는 것은 어려우니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동차가 문제야’라는 구호보다 ‘자전거 도로가 필요해’라는 구호를 예시로 들었다. 재산에서 자가 다음으로 자동차 소유 지출이 크다. 자동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중산층과 기득권의 반발을 수반한다.

모든 정책은 여론이 뒷받침되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반대 여론이 많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전복할 수가 있다. 독일의 자전거 교육은 의무교육이며, 독일 시민의 자전거 보유율은 70%를 넘는다. 자전거 교육을 받았고, 자전거를 소유한 독일 시민들은 녹색당 교통정책의 지지 그룹이 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자동차 도로를 줄이고 자전거 도로를 늘리기 위해선, 아래로부터 대중교통·자전거·보행자 중심의 교통 정책에 공감하는 시민 여론을 넓혀야 한다.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시민 그룹을 조직하고, 이들과 연계한 활동을 기획하고 정책을 추진해나가면 우리 지역의 풍경도 바뀔 수 있다. 가칭 ‘안동 차 없는 날’ 이벤트를 통해 시민 여론을 조성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할 즈음, 내연기관 배터리 전환과 관련해서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기행단의 질문이 시작될 즈음, 난데없는 벨소리가 울렸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의원들을 긴급히 소집할 때 요란한 벨소리가 울린다고 한다. 스테판 의원은 죄송하다며, 올해 하반기 한국에 가니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짧고 아쉬운 간담회를 마무리하면서 귀국 이후의 실천을 생각했다.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을 보면서, 버스타기 좋은 안동, 이동하기 좋은 안동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