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논란, 분단된 현실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제1회 KNU 목요포럼 개최···신주백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강연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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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논쟁은 분단된 현실에서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정당화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담론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가 가진 중요한 시사점이다.”

지난 21일 저녁 6시 경북대에서 열린 1회 KNU 목요포럼은 신주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을 초청해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과 기념·기억’ 강연으로 이뤄졌다.

▲신주백 소장

신주백 소장은 홍 장군을 둘러싼 논란 중 ▲자유시 참변 발생 구체적 경위와 의미 ▲소련공산당 입당 경위 ▲사망 전 소련 거주를 결정한 이유 등을 중심으로 강연했다.

신 소장은 자유시 참변은 자유대대, 사할린 특립의용대, 러시아공산당 원동부 한인부 총 3개 독립운동 세력이 통합을 논의하려 모였다가 주도권 다툼이 격화한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통합 세력을 재편하려 무장해제 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격화해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신 소장은 “과거 연구에서는 자유시 참변을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를 공격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볼셰비키가 독립군을 공격했다는 구도는 맞지 않다. 핵심은 조선인 독립군 간의 주도권 경쟁”이라며 “복합적인 이 상황을 국방부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고 소련에 거주하게 된 경위도 당시 상황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련공산당 입당 당시 홍범도 장군은 59세였다. 당대 조선인 평균 수명이 40세가 되지 않은 걸 고려하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나이를 넘어섰던 시점이다. 또 머슴 출신인데다 의병 활동 과정에서 가족이 모두 사망한 점도 귀향 결심을 하기 어렵게 했다는 게 신 소장의 설명이다.

신 소장은 “홍 장군이 함경도에서 의병 활동을 할 때 부인이 고문당해 사망했다. 아들도 의병 전투 중 사망했다. 한국 땅에 가족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라도 노동자, 농민을 위한 세상을 추구한다는 소련의 슬로건은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소련공산당에 입당해 선전 활동이라도 한 적도 없다. 홍 장군도 노년을 조금이라도 누리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신 소장은 흉상 이전 관련 국방부 입장에 드러난 분절적 인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앞서 국방부는 8월 “육사는 우리나라의 국난극복사, 6·25전쟁 영웅, 육사의 표상,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함께 기리는 방향으로 교내 기념물 재정비 방안을 검토한다”며 “홍 장군 흉상은 육사 교내보다 독립운동 업적이 선양될 수 있는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신 소장은 “매우 분절적인 기념 방식이다. 국방부는 반공만 하고, 독립운동 기념은 독립기념관에서만 한다는 건, 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두고 편의대로 기념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하나로 설명하지도 못하게 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KNU 목요포럼은 교수노조 등 경북대학교 학내 단체들이 학내 사안이나 사회 현실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작한 모임으로, 월 1회 정기적으로 강연을 준비할 예정이다. 강연은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조 경북대지회, 경북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 PAZ, 경북대크루 등이 준비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