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좀비 시대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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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열일곱 번째 시집『좀비에 관한 연구』(천년의시작, 2019)에 실려 있는 69편의 시에는 모두 ‘좀비에 관한 연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좀비(Zombi)의 가장 간단한 정의는 ‘살아 있는 시체’이며, 맥스 브룩스는『좀비 서바이벌 가이드』(황금가지, 2011)에서 이들의 특성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좀비들은 딱히 사회 조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루지 못한다. 좀비 무리는 크기와 겉모습을 막론하고 단지 한데 몰린 개체들의 총합일 뿐이다. 좀비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추정된다. 좀비는 같은 거리에 있는 자기 동족과 인간 또는 다른 먹잇감을 어떻게 구별할까? 좀비들은 생명이 없는 물체를 피할 때와 같은 요령으로 서로를 피한다. 친교를 쌓거나 의사소통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 먹잇감을 알아본 좀비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본능적으로 신음 소리를 낸다. 좀비는 먹잇감의 정확한 위치를 향해 나아가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일단 먹잇감을 포착한 좀비는 건망증 걸린 벙어리 자동인형 같던 예전 상태에서 유도 미사일과 꼭 닮은 모습으로 변한다.”

『좀비에 관한 연구』에는 인간 군상만큼 다양한 좀비가 등장한다. 까닭은 시집의 맨 앞에 실려 있는 시가 적절하게 암시해주듯이 “그 좀비/ 우리와 같은 호모사피엔스”(「좀비들의 세상–좀비에 관한 연구 1」)였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출몰하는 좀비들을 유형화하면, 제일 먼저, “조선에서 태어나/ 왜적의 앞잡이”가 되었던 “독립군 잡던 노덕술/ 고문 귀신 하판락/ 친일 고등계 형사 김창룡”(「좀비 열전–16」), “강도 일본을 조국으로 섬긴/ 이광수 최남선/ 모윤숙 서정주 김용제 등”(「좀비의 환생–65」)의 친일 부역자를 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여수 순천 제주 거창 신천 경산 노근리/ 금령골 금오 제천”(「제노사이드–56」)과 “그해 오월/ 분노한 빛고을 거리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좀비 군인”(「망월 언덕에서–57」)이 있고, 마지막으로 “통일 지연 통일 불가 외치는/ 넋 나간 좀비”(「분단 좀비–46」)도 있다.

하지만 이 시집에 가장 자주 등장하고, 크게 무리지어 나타나는 좀비는 따로 있다.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근육 키우고”(「좀비의 욕망–5」), “주식과 몇 군데 부동산/ 세속적 명예 보잘것없는 직책/ 거기에 생애 걸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무수한 좀비”(「좀비들의 세상–1」), “더 좋은 옷/ 명품 가방 더 좋은 자동차/ 고급 아파트 욕심으로 눈에 핏발 선 가련 좀비”(「좀비 시대의 슬픔–25」), “나만 성공하면 장땡이라 외치는 좀비”(「좀비의 여러 부류–28」), 바로 우리들이다. “이제 좀비가 인간보다 많다”(「좀비의 인간화–12」)

풍자문학은 위선을 폭로하고 악을 교정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자가와 독자가 같은 편에서 설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 기준이 무너진 세계에서는 풍자문학이 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니체가 말인(末人) 혹은 세인(世人)의 특징이라고 조롱했던 ‘잘 먹고 잘 삶(Well-being)’이 우리들 공통의 욕망일 때, 풍자의 비수가 향할 급소는 나 자신밖에 없다. 시인이 거듭해서 “거울을 보라/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라/ 내 얼굴이 혹시 좀비로 바뀌어가는지/ 살피고 또 살펴볼 일이다”(「좀비는 누구인가–15」)라고 주문하는 이유다.

좀비를 연구하면서 시인이 포착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더 이상 타고난 그대로로 살고 있지 않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고와 감각을 컴퓨터/인터넷에 양도하고 있는데다가. 사이보그 기술은 야금야금 인간의 신체를 침탈하고 있다. 영화 속의 좀비가 점점 더 인간 친화적으로 진화해온 반면(<웜 바디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더 배타적이거나 공격적이 되었다. 우리는 “컴퓨터에 중독된 디지털 좀비/ 오로지 컴과 소통할 뿐/ 외부 세계와는 완전한 단절”(「디지털 좀비」–31」)을 꿈꾸고 있거나, “모두들 귀엔 이어폰 꽂은 채/ 스마트폰만 골똘히 골똘히 들여다보는 좀비”(「지하철 좀비–32」)가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