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일본과 닮은 한국, 틀렸음을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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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일본은 동아시아 차원의 노동정책을 펼치는데 숙련노동은 일본인, 비숙련노동은 한국인, 중국인이 맡는 구조로 이뤄졌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저임금을 유지했고, 일본과 만주에서도 한국인, 중국인 비숙련노동에 대해서는 저임금 정책을 고수했다. 숙련노동시장으로 교육, 훈련하기보다는 비숙련노동시장을 채워주는 공급처로서 식민지 한국을 활용했다. 특히, 여성노동자는 12시간 이상 주야 2교대로 일했다. 성인 남성노동자 사이의 한·일간 임금 격차보다 남성과 여성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더 컸다. 한국인 임금은 일본인의 절반이었고, 여성노동자 임금은 한국인 남성의 절반 수준이었다. 군함도는 하시마섬에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100년 전 일본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과 놀랍도록 닮았다. 한국은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라는 외국인 노동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한국인 인력이 꺼려하는 제조업 분야의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제도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발급한다. 해당 비자로 입국한 노동자는 1회 최대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지만, 가족 동반 비자는 주지 않는다. 사실상 노예제로 비판받던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노동권을 일부 보장한다는 건데,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것은 사실상 막고 있다. 또,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문제 제기가 어려워 미등록 상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21일 경주시는 외국인노동자에게 장기 취업이 가능한 비자로 전환하는 ‘숙련기능인력(E-7-4) 비자전환 추천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추천 대상은 E-9(비전문취업), E-10(선원취업), H-2(방문취업) 자격으로 4년 이상 국내 체류외국인으로 일정금액 이상의 연봉으로 향후 2년 이상 근로계약 체결, 기업추천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

이민청 설립을 제시한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가 기업의 인력 확보를 돕는다는 취지로 올해 시작한 제도다. 숙련기능인력으로 비자가 전환되면 이후 거주(F-2), 영주권(F-5) 비자 전환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경주 등록외국인 수는 2023년 9월 기준 1만 724명이다(같은 기준 경주시 전체 인구 24만 8,244명). 이 중 E-9(비전문취업) 비자 체류자가 3,033명이다. 저임금의 비숙련노동인력을 계속 쓰겠다는 정책에서 정주 가능한 정책으로 변화를 내디딘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다만, 기업추천 등의 요건이 족쇄로 작용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정부의 비숙련노동 돌려쓰기 정책이 틀렸음을 스스로 방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정부는 과연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때로는 쉽고, 때로는 어렵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자녀가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조금이라도 권력을 더 가진 쪽에서는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권위, 권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나는 결코 틀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동시에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여길 수도 있다.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 법무부는 할 수 있을까.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