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63년생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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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씨는 1963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위로 연년생인 언니가,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김정희 씨는 3남 3녀 중 둘째다. 쌀과 복숭아 농사를 짓던 부모님을 도와 계절따라 농사를 도우면서 자랐다. 시골집은 소죽을 끓이던 아궁이로 방바닥이 펄펄 끓던 아랫목 방과 부엌 옆방, 그리고 이를 잇는 작은 거실이 있었다. 별채는 남자 형제들의 공간이었다.

언니가 그랬듯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자 대학이 아닌 취업을 생각해야 했다. 부산에 있는 여상으로 진학했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탰다. 아버지는 그 말 처럼 돈을 보태 논도 사고, 집안 살림에 보탰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빤한 형편에 조르기가 어려웠다. 남자 형제들은 모두 대학을 나왔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만난 한 집사님이 중매를 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다. 장씨 성을 가진 그는 3살 위로, 청도 바로 옆 경산 사람이었다. 장남이었던 남편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8년을 함께 살았다. 자녀 계획이라는 것이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딸에 이어 아들까지 2살 터울의 남매를 낳았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데 보건소에서 사람이 나왔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말이 TV에서 흘러나올 때였다. 다행이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으니. 주변에 아들 하나 없는 집이 있으면 딱한 마음도 들었다. 친정에 가면 모두 하나 같이 딸 자식들 뿐이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롯데엔터테인먼트)

맞벌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다. 똑같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도 남편과 임금 차이는 2배 이상이다. 남자와 여자는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일을 하고 와도 집안일은 모두 김정희 씨 몫이다. 남편은 집에 와서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다. 식탁에 같은 반찬이 두 번 올라온 것도 먹지 않는다. 돈 문제로 언성이 높아졌을 땐 밥상을 엎은 적도 있다. 몇 번 그러고 나선 남편에게 싫은 소리는 되도록 안 하려고 다짐했다. 무뚝뚝하지만 재밌는 소리도 곧잘 하는 남편은 든든해 보였다.

김정희 씨는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고, 여자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딸도 똑같이 대학에 보내고, 취업 준비도 하고 싶은 대로 시켜줬다. 그러니 아들, 딸 차별 없이 키웠다고 자부했다. 가끔 딸이 그렇지 않다고, 불멘소리를 해도 딱 잘라서 똑같이 키웠다면서 일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사실 나도 내색은 안 했지만 누나랑 나랑 차별하는 건 좀 있었어”라고 했다. 김정희 씨는 속으로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들이 하는 말이니 일단 진지하게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싶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