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초점] 나를 둘러싼 수치심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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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수능 시즌이 지나고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올 무렵이다.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교문 앞에 거대한 현수막을 달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서울’로 가는지 자랑한다. 현수막에는 SKY서성한중경외시라 하는 10대 인서울 대학 이름이 순서대로 적혀 있고, 대구에 있는 지방거점국립대학인 경북대학교는 맨 마지막에야 이름을 올린다. 최근엔 예능PD 출신의 강사가 진로설명회에서 “PD=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며 성공의 기준을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지방대학은 대학 줄 세우기에서 꼬리칸에 위치해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해부터 지역소멸을 주요 의제로 삼았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는 특집 3부작으로 지역소멸을 다뤘다. 지역의 청년 유출 문제를 엄중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TV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서울권 대학을 나온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추앙한다. 서울대 출신 앞에서 움츠러드는 건 유머 코드로 사용된다. 방송뿐 아니라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역구에 출마하는 정치인은 늘 “개천에서 용 나는 도시”를 만들겠노라 선언한다. 지역은 자연스럽게 개천이 되고, 지역에 남은 청년은 미꾸라지가 된다.

그렇게 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유, ‘수치심’이 주입된다. 개인을 둘러싼 수치심은 가족이나 학교에서 주입된 암시와 고정관념에서 출발한다. 학교 교문에 걸린 현수막이 그 예시다. 다음으로 공동체, TV와 같은 미디어가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인서울 대학을 나온 출연진은 뜬금없이 상식 문제를 내며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고 다른 출연진을 무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나올 때면 방송 자막에는 ‘H대’나 ‘Y대’ 등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권력을 가진 모습이, 누군가는 움츠러들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시청자는 그 상하관계를 보고 웃다가도 자연스럽게 권력을 가진 이에게 몰입한다. 권력을 가지려면 인서울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관념이 주입된다. 하지만 수능을 치른 대부분은 지방대를 가기에, 그러지 못한 이들은 권력을 얻을 수 없는 ‘실패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을 ‘침묵의 유행병’이라 명명한다.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기는 꺼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 수치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서서히 파괴한다. 학력 콤플렉스를 가지거나 지방대를 ‘지잡대’라며 무시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수치심이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을 실패했다고 ‘느끼는’ 것은 원동력이 될 수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을 갉아먹기만 할 뿐이며 개인에게 형성된 고정관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박혀 들어가 상처를 줄 수 있다.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인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컨대 수치심을 느꼈다면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건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하라고 했다. 인식과 유대를 통해 사회의 큰 그림을 그리고, 수치심 촉발제와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회공동체적 기대의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의 역할도 필요하다. 당위적으로 지역 소멸을 다루는 게 아닌, ‘이해의 웃음’을 주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선 지방대학을 나온 이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푼 ‘지잡대 달글’이 인기를 끌었다. 댓글 중에는 택시 기사에게 학교로 가달라고 하니 혼났다는 댓글, 입학식에서 여러분은 패배자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며 냅다 패배자를 만들어다는 댓글 등에 웃음이 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방대학을 다니며 들은 타박을 말하고, 그에 대해 웃고, 자신들만 그런 상황을 겪은 게 아님을 깨달으며 “같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해의 웃음이다.  수치를 주는 웃음이 아닌, 왜 수치를 주는지 밝혀냄으로써 나오는 웃음을 만들어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