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초점] 더 많은 ‘Love wins all’ 논란이 필요하다 /조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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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아이유를 대통령으로’ 훌륭한 가창력과 잦은 기부 등 본업은 물론 선한 영향력 행사까지 부족함이 없는 가수 아이유를 두고 밈처럼 오가는 말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호감형 이미지를 떨치고 있는 아이유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으론 문화가 사회정치적인 힘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대개 문화를 아름다움과 재미를 제공하는 영역이라 여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아름답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지, 나아가 어떤 것에 예민하고 무딘지에 대한 단서들이 가득하다. 즉, 문화는 정치와 동떨어져 있는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조용히 누적되고 있는 곳이다.

최근 음원차트를 휩쓴 아이유의 신곡 ‘Love wins all’ 또한 정치와 무관하다 볼 수 없다. 본 곡의 이전 제목은 ‘Love wins’였으나,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린 후 성소수자 권리를 상징하는 표현 ‘Love wins’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 속에 제목이 수정됐다. 또한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 해당 곡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과도한 PC주의에 피로감이 든다’ 등의 반응도 나왔다.

‘Love wins’라는 곡 제목은 성소수자 권리를 상징하는 ‘Love wins’의 본 맥락을 퇴색시키는 문화 전유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화 전유란 특정 문화·정체성의 요소를 다른 문화의 구성원이 가져다 이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특히 문제가 되는 문화 전유는 지배적인 문화의 구성원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들의 문화를 가져오는 형태이다. 문화는 그 맥락에서만 갖는 깊은 의미가 있고, 다른 문화의 구성원이 고민 없이 이용하면 그 의미가 옅어지기 마련이다.

해당 곡은 번번이 아이유의 곁을 선택해 주는 팬들을 위한 ‘팬 송’으로 제작되었고, 뮤직비디오에서는 이성애자 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 하에 아주 일반적인 범위의 사랑만을 다루며 ‘Love wins’의 본 맥락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아이유가 소속된 EDAM 엔터테인먼트는 이 곡의 제목으로 인해 중요한 메시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하는 의견을 수용하며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

한편 일부 대중은 여전히 문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화의 탈정치화를 강요하는 흐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과거 국가는 모든 곡을 검열하며 사회비판적이거나, 우울한 시대상을 담고 있는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현재는 넥슨의 게임 메이플 스토리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집게 손 제스처를 둘러싼 사상검증 논란 등 일부 개개인의 차원에서 문화의 정치적 맥락을 추측하고, 검열하는 사태가 불거지기도 했다.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중 예술가의 입장에선 탈정치화하는 것이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하기 이로운 전략일 수밖에 없다. 특정 예술가에게 우호적인 대중 또한 무의식중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예술은 그저 예술로 봐달라’며 예술가를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진정 예술가를 위하는 일은 그들의 작품을 정치화 여부와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소비하고, 그 내용이 약자를 배제하는 경우, 있는 그대로 비판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SNS의 발달로 문화 소비층이 넓어지고, 그 파급력도 높아지고 있는 시대다. 이 시대의 예술가에겐 분명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열광할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예술은 그저 예술로 봐달라’는 관점에 따라서 봐도 결론은 같을 수 있다. 박노해 시인의 ‘나 거기 서 있다’에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 공동체에서도 가장 아픈, 즉 가장 약한 곳을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 예술이 그저 아름답고 재미있는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들이든, 특히 소수자나 약자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여전히 국내 성소수자가 대중문화에서 받는 차별은 실존한다. 지난해 말 MBC 심의부는 국내 성소수자 보이 그룹 라이오네시스의 ‘It’s OK to be me’에 대하여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리며 그 이유를 ‘동성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Love wins all’에 대한 논란이 단순히 피로한 이슈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 콘텐츠 제작에 있어 소수자와 관련된 용어를 쓰지 않겠다는 단순한 대처에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연구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를 만난 경험이 있거나, 대중매체로 간접 체험한 적이 있는 응답자의 경우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수치가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를 구체적으로 다룬 콘텐츠가 갖는 문화적·사회정치적 힘을 보여준다. 우리 대중문화계에는 소수자와 약자를 다룸에 있어 더 큰 노력과 많은 논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