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선거제도’ 앞에만 서면 거짓, 망언 퍼레이드

단순한 무지를 넘어선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의 실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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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연동형은 기형적? 손실 보전 개념과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 모르면 그렇게 보일 수도
-말바꾸기 비난하면서 민주당에게 공약 파기 주문…본인 말대로면 한동훈은 민주당 갔어야

-‘비례제 게리멘더링’? 위성정당 먼저 만든 국민의힘과 따라 만든 민주당은 ‘동료 시민’
-‘병립형 비례제에선 조국 당선 불가능’은 거짓. 조국신당 3% 넘고 당선권에 있으면 조국 당선
-사전투표 특성상 인쇄가 곧 날인인데 한 위원장 ‘수날인’ 고집…“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날인?

선거제도는 그 사회의 정치를 집약해서 보여주지만 정치판에서도 ‘메이저’ 주제는 아니다. 일부 정치학자도 선거제도에 관련해 부정확한 주장을 하거나 사실이나 이치를 거스르는 진술을 한다. 지난해 4월 국회가 ‘선거제도 개선’을 주제로 전원위원회를 소집했을 때도 발언한 여야 의원 100여명 중 상당수가 선거제도에 관련한 상식에도 못 미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조: 당시 일부 의원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수민의 뉴스밑장 에피소드’)

최상위 정치 고관여층인 정치인과 정치학자조차 선거제도에 대해 무지하거나 몰지각한 발언을 하는 현상은 진지하게 연구해볼 만한 대상이다. 선거제도는 철학과 수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회는 그 사회 전체의 대표자이므로 유권자의 표로 의회 전체의 구성을 결정해야 한다면 비례대표제와 대선거구제로, 의회는 각구역 대표자들의 연합인 것이 맞기에 유권자의 투표는 의원 한 명을 결정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연결된다.

선거제도는 ‘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정당체제와도 연결되는데 자연히 수학적 또는 물리학적 사고가 동원된다. 비례대표제의 의석 산출 공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를 고안한 이들 중 여럿은 수학자다.

선거제도는 한 단면만 가지고 이해할 수 없다. 어떤 특정 목표에 얽매이면 그 반대급부에 있는 단점을 감당할 수 없다. 특정 시기 특정 상황의 특정 당파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지부터 계산하는 것은 선거제도 설계에서 최악이다. 선거제도 구상은 끊임없는 검증과 성찰과 유연성 그리고 흔들림 없는 원칙을 다같이 요구받는 작업이다. 그 사회가 지니고 있던 공정성과 지성의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호불호나 옳고 그름을 떠나 근래 한국 정치에서 가장 지적인 혹은 박식한 캐릭터로 통하고는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선거제도 앞에만 서면 망언이나 거짓을 연달아 발설한다. 출세와 당리당략을 집요하게 추구한 결과든, 아니면 진지하게 무식한 편견에 빠진 것이든 한국사회의 적신호임은 틀림없다. 학창 시절 성적이 최상위권이었고, 사법시험에도 조기 합격한 인사가 다년간의 공직 경험까지 했지만 지성인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다.

1. “우리당은 지금의 제도가 너무 복잡해서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는 데다 과거 기형적 방식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낳았기 때문에 원래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월 15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연동형 비례제는 ‘손실 보전’이다. 지지율만큼의 의석수에 비해 지역구 의석수가 낮은 정당은 손실을 본 것으로 보고, 각당의 부족분을 겨뤄 남아 있는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어떤 사람이 받기로 한 사과를 4개 덜 받았다. 또 어떤 사람은 2개를 덜 받았다. 받기로 한 것보다 덜 받은 사람은 이 두 사람뿐이다. 둘이 배급 창구에 갔더니 남은 사과가 5개였다. 사과를 자르지는 않기로 했다. 그럼 5개는 어떻게 배분해야 하나? 양쪽의 사과 부족분은 2대1이다. 5×2/3=3.33…이고 5×1/3=1.66…이다. 둘이서 각각 3개, 2개를 갖는 게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정의에 부합한다. 이렇게 계산할 줄 알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이해할 수 있다. 한동훈 위원장에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수학이 복잡한 모양이다.

연동형 비례제를 두고 어렵다며 엄살을 부리는 사람이 제도에 대해 온갖 말잔치를 벌이는 것도 미스터리다. 세법은 연동형 비례제보다 훨씬 더 어려운데 그렇다고 납세나 세제를 거부하는지, 혹은 누진세를 죄다 쉽게 단일세율로 바꿀 것인지도 궁금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병립형 비례제는 연동형 비례제보다 예측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개표 결과를 미리 알고 있나? 무엇이 예측가능하다는 것인가. 한국의 기존 소선거구+병립형 비례제는 정당 지지율이 나와도 의석수를 어림하기 어려운 제도다. 소선거구제가 가진 의석수-지지율간의 극심한 불비례성 때문이다.

정말 쉬운 제도를 만들고 싶으면 전체 의석을 정당 지지율대로 배분하는 ‘완전연동형’을 실시할 일이다. 물론 3백석 중 47석만 손실 보상용으로 쓰는 제한적 연동형조차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할 리 없다. 그리고 뒤에서 살피겠지만 한 위원장은 병립형에 대해서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2. “민주당 갈 걸 그랬다. 정치하기 너무 편할 것 같다. 뭐라고 이야기해도 얼마든지 말 바꿔도 되고, 거기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2월 2일, 출근길에서)

정치를 떠나 인간적으로 심각한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말과 입장을 바꾸도록 열심히 주문한 장본인이 한동훈 위원장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위성정당 방지 등 다당제 정치개혁을 공약해왔다.

위성정당 창당도 약속 불이행이지만, 한동훈 위원장이 민주당에게 요구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는 그와 마찬가지거나 그 이상이다. 한 위원장 말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민주당에서 정치하는 게 맞다.

3. “이 대표의 입맛에 맞게 게리맨더링 가는 거냐. 저는 비례제로 게리맨더링 하는 건 처음 본다.” (2월 5일, 서울 경동시장 방문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 돌입을 비판하며)

‘비례제 게리멘더링’은 처음 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유권자의 생활권과 크게 어긋나도록 선거구를 기괴한 형태로 만드는 게리멘더링은 지역구 획정에서 등장하는 꼼수다. 선거 관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다 ‘게리멘더링’이라고 하지 않는다.

위성정당을 그리 표현할 수는 있다고 친다면 한 위원장에게 비례제 게리멘더링이 처음 보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 위원장의 기준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만든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2024년 총선에서 만들 ‘국민의미래’ 모두 게리멘더링이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2연속으로 민주당보다 앞서 위성정당 창당 움직임에 들어갔고 만들어져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입법 취지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가령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도입했는데 입법 미비로 처벌 조항을 넣지 못했다 치자.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법의 취지를 존중해 봉투를 구매한다. 국민의힘은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너희가 버리니 우리도 하겠다”며 민주당이 가세해준 덕분에 국민의힘의 제도 파괴는 더욱 힘을 얻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위성정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같이 파괴하는 ‘동료 시민’이다.

4. “조국 전 장관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병립형 제도에서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없다.” (2월 13일, 출근길에서) 

명백한 거짓이다. 거짓 선동의 원동력이 무지인지 억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도 입시비리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 병립형/연동형은 그의 당선가능성을 좌우하지 않는다.

두 가지 시나리오를 보자. 첫째, 민주당이 위성정당 비례대표 순번에 조 전 장관을 끼울 수 있는 당이라면, 병립형 체제에서의 자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도 조 전 장관을 끼울 수 있다.

순번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겠냐고?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연합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므로 타정당 출신 후보자 때문에 조 전 장관의 순번이 더 뒤로 밀릴 개연성은 있다.

둘째, 민주당이 위성정당에 조 전 장관을 끼우지 않는다 치자(최근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은 민주당이 이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보여준다). 조 전 장관은 별도의 신당을 통해 국회의원 입성을 노릴 수 있다. 2020년 총선의 열린민주당처럼 말이다. 이런 노선은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도 똑같이 가능하다.

한국은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가 분리되어 있어 유권자는 양쪽에서 각기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분할 투표(split-ticket voting)‘를 할 수 있다. 조국신당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향해 “비례대표는 조국신당에”를 외칠 수 있다. 민주당은 대부분의 선거에서 30% 이상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올려왔다. 그중 10분의 1만 조국신당을 찍어도 조국신당은 3% 진입 장벽을 넘긴다.

조국신당이 의석을 얻는 득표율을 얻고 당선가능한 상위 순번에 조국 전 장관이 있으면 그는 당선되는 것이다. 이게 다 병립형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한동훈 위원장은 연동형뿐 아니라 병립형도 이해 못하고 있다. 병립형이 연동형보다 쉽다는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고 말았다. 

“병립형이면 조국 당선 불가능”이라는 한 위원장의 논리를 벗어나, 아예 “비례대표제는 누구든 당선될 수 있어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부터가 거짓이다. 비례대표 후보와 그 순번은 투표 이전에 공개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면 조국 전 장관이 순번에 있는데도 찍어주는 사람들이 문제지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한국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국회의원이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훌륭한 제도를 갖고 있다. 이 제도는 반대급부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선거권과 공직 수행의 기회가 있는 제도를 품고 있는 것이다.

5. “사전투표에서 사전투표관리관이 법에 정해진 대로 (투표용지에) 진짜 날인을 해야 한다.” “(현재 사전투표에서 날인된 용지를 출력하는 것은) 법 규정과는 다르지만, 판례에서 ‘그것도 가능하다’라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본투표처럼 사전투표도 하라는 것.” (2월 13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현타’가 올 일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법’무부 장관이었던 사람이 할 말인지 의아하고도 남는다.

본투표에서는 투표용지를 준비해뒀다가 유권자가 투표소를 방문하면 투표 관리 관계자가 직접 날인한다. 쓰지 못한 투표용지는 어차피 그날 투표 마감 이후로는 쓰일 일이 없다.

반면 사전투표는 본투표와 사정이 다르다. 수날인을 택하면 사전투표 종료 이후 본투표 개시 이전까지 관리상의 불안정성을 초래하게 된다. 관외 투표도 있기 때문에 투표용지를 그 자리에서 출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 선관위 날인도 같이 인쇄된다. 출력이 곧 날인인 것이다. 뻔히 인쇄기로 날인하는 현장을 두고 굳이 손으로 날인하라니. 노래 가사처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날인인가.

선거제도의 핵심은 의석 배분 방법에 있다. 각국의 선거제도를 분류할 때도 이것이 최우선 기준이다. 여기에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면서 정치제도에 대해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 일부의 특징이 투표/개표 방식에 몰입하는 것이다.

2010년대에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수개피언’들이 늘어났다. 수개표를 고집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나 송영길 당시 의원 등은 이를 정면으로 받아안기도 했다. 이제 그뒤를 ‘수날리언’ 한동훈 위원장이 따라밟고 있다. 최근 며칠간의 거짓과 망언의 퍼레이드를 지켜보니 이미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