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권영국을 찍었다는 건···“우린 생명력 강한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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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권영국은 0.98%의 득표율을 얻었다. 당의 목표에 못 미치는 성적표지만 언론과 대중은 계속해서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아리셀참사 1주기 추도제, 태안화력 비정규직 고 김충현 씨 영결식, 쿠팡 노동자의 폭염대책 촉구 기자회견 등 권영국이 선 곳은 대선이 끝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권영국은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0.76%, 0.8%의 득표율을 얻었다.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치다. 반면 내란과 선 긋지 않은 보수정당 후보는 70% 가까이 득표했다. 우리에겐 이 마음들을 해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한민정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대구에서 권영국을 찍은 1만 2,000여 표라는 숫자 너머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시작은 20대부터다. 대선이 끝나고 17일 만인 지난 20일 저녁 7시 ‘대구에서 권영국을 찍은 20대 간담회’가 열렸다. 참가자 10명은 0.98%라는 결과에 대한 소감, 인상적이었던 장면, 권영국을 찍은 이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풀어놨다. 그건 대부분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6월 20일 저녁 7시, ‘대구에서 권영국을 찍은 20대 간담회’가 광덕빌딩 8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박중엽 기자)

대학생 이건희 씨(25)는 대선 과정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으로 권 후보가 고공농성장을 찾았던 때를 꼽았다. 권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이던 5월 12일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만나는 걸로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97일간 고공농성을 이어 온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김형수 지회장(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님이 내려오셨잖아요. 그 장면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아요.”

직장인 서진(가명, 23) 씨는 개표 방송을 보면서 속상했던 일을 털어놨다. 권영국 후보는 1.3%라는 출구조사 결과를 받았으나, 몇 시간 뒤 최종득표율은 1% 아래로 나왔다. “사실은 5%를 기대했는데 1.3%가 나와서 실망했고, 최종득표율은 그보다 떨어져서 속상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꽃다발을 들고 인터뷰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가겠다는 뜻을 전하더라고요. 나도 슬퍼할 게 아니라 정신 차리고 열심히 잘 가야겠다고 생각한 기억이 나요.”

민주노총 대구본부 동아리모임 ‘달곰이지부’ 조합원이자 전국의 투쟁현장을 지원하는 말벌동지로 활동 중인 팡자(가명, 20대) 씨도 한마디 보탰다. “전 두 번의 탄핵 광장에 모두 있었어요. 한 번 겪었음에도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잖아요. 이번 광장에선 또 반복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 모인 에너지와 의제를 잘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절실함도 있었고요. 권영국 후보의 존재가 광장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청도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소일(가명, 27) 씨는 권영국 후보가 있음으로써 대선 과정에 접한 일상적 순간들이 좋았다고 말했다. “청도에 붙은 ‘차별 없는 나라’ 현수막을 보고 ‘진짜 최고다’라고 생각했어요. 대선 토론, 뉴스기사에 이상한 말이 3개 있으면 그 아래 권영국 후보의 한마디가 덧붙여져요. 권 후보가 없었으면 나오지 않을 것들이 눈에 띄어서 선거 기간 내내 기분이 좋고 힘이 났습니다.”

설(가명, 20대) 씨는 권 후보를 뽑은 이유를 말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전 20대 여성이고, 대구에 살고 있으며 장애인의 딸,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20살에 학원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2년간 묻어뒀다가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뒤 신고를 결심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권 후보가 제가 상담받은 성폭력센터의 운영위원장이더라고요. 내가 받은 도움을 생각해서라도 권 후보를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어요. 저희 할머니나 친구 등 몇몇도 권 후보를 뽑도록 설득했고요. 실제 국민을 돕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어요.”

병원 재활치료실에서 일하는 나인(가명, 29) 씨는 정의당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풀어놨다. “사고나 질병으로 영구적인 후유장애가 남을 수 있는 질환을 겪는 분들이 일상생활로 복귀 혹은 현재의 기능 상태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요. 병원에서 일하기 전과 후 제가 보는 시각이 달라졌거든요. 노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당연한 순서처럼 정의당을 지지하게 됐어요.”

▲건희 씨는 “대구에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건 “경직된 지역의 정치에 균열을 내고 신선한 바람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중엽 기자)

마지막으로 한민정 위원장이 ‘대구에서 권영국 후보를 찍은 것,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20~30대 지지자를 모으면서 보물찾기 같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참여할지 걱정도 했고요. 내란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당원 중에도 권 후보를 안 찍은 사람이 있어요. 이런 배경 속에서도, 대구에서 권 후보를 찍은 분들은 어떤 분일지 궁금했습니다.”

나인 씨는 자신을 잡초에 비유했다. “대구에서 권 후보, 진보정당을 찍는 우리는 잡초 아닐까요. 우리가 편하게 잡초라 부르지만 사실 그 풀 하나하나에 다 이름이 있잖아요. 어디서나 보이는 것 같지만 잘 보이지 않고, 그럼에도 없어선 안 될 존재가 잡초라 알고 있어요. 생명력이 강하기도 하죠.”

소일 씨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오늘 여기 모인 것처럼, ‘이번에는 다른 후보를 찍었지만 다음엔 진보정당 찍어야지’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최소한 투표용지에 이름이 있어야 고민이라도 해볼 수 있잖아요.”

팡자 씨도 “우리 모두 정체성이 다르고 지지하는 이유도, 방향성도 다르지만 살아남기 위해 하나로 모여서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대구·경북에 있기 때문에 더 보여줘야 할 것, 설명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느껴요. 지방선거를 하면 더불어민주당조차 제대로 후보를 안 내는 지역인데, 그렇기 때문에 0.76%라는 숫자도 저희한테는 의미가 있죠”라고 말했다.

설 씨는 “제가 겪은 선거 가운데 이번 대선만큼 말을 많이 했던 적이 없어요.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말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그게 누구냐’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어요. 차라리 1번이라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답이 돌아왔겠죠. 오히려 설명하면서 바로잡을 기회가 많아서 좋았어요”라고 말했고, 건희 씨도 “경직된 지역 정치에 균열을 내고 신선한 바람을 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보현, 박중엽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