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골에서 부르는 ‘아버지’…“한국전쟁 전후 집단학살 사죄와 특별법 제정해야”

대구 가창골에서 열린 10월항쟁 71주기, 민간인 희생자 67주기 합동위령제

15:56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가창댐 수변전망대 앞에서 울음 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를 수 없었던 그 이름, 아버지. 백발이 서린 채영희(70) 10월항쟁유족회장이 ‘아버지’를 목 놓아 불렀다. 1946년 10월항쟁,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해 정부와 국군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가족은 1년에 한 번 함께 울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를 잠시 묻어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해 “집단학살에 대한 사죄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유가족들의 한을 풀 것”을 요구했다.

▲진혼무를 올리는 무용가 박정희 씨.

6일 오전 11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수병전망대에서 10월항쟁 71주기, 민간인희생자 67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1946년 대구경북 일대에서 미군정에 저항한 10월항쟁, 그리고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었지만,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국가에 의한 학살을 외면했고, 오히려 ‘빨갱이 자식’이라는 오명을 안겼다. 제삿날도 몰랐고, 대규모 학살이 이뤄졌다는 가창골(가창댐 준공 이후 수몰)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이 나고서야 가창골에 모였다. 2009년부터 매년 7월 31일 합동위령제를 지냈고, 올해부터는 억울한 넋들을 기리기 좋다는 한식(양력 4월 5일 또는 6일에 해당)에 맞춰 제를 모시기로 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10월항쟁유족회와 더불어 강병현 진주유족회장, 이중흥 제주4.3행불인유족협의회장,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 김필문 제주4.3유족회 영남위원장, 이창준 해남유족회장, 이원우 경주기계권유족회장, 조동문 (사)한국전쟁유족회 사무총장, 허맹구 포항피폭 회장 등 전국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또, 김혜정 시의원과 함께 류규하 대구시의회 의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했고,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대구 수성갑)이 추도사를 보냈다.

먼저 희생된 영혼을 위한 종교의례가 열렸다. 능화사 주지 혜강스님, 왜관 성베네딕토 수도원 황이사악 신부, 누가교회 정금교 목사가 추모 기도를, 무용가 박정희 씨가 진혼무를 올렸다. 기도와 진혼무를 바라보던 유족들은 눈물을 훔쳤다.

▲4월 6일 오전 11시 가창댐 수병전망대에서 10월항쟁 71주기, 민간인희생자 67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사진 오른쪽이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

채영희 회장은 “독일국민들은 유태인에게 잔인한 학살의 죄를 짓고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독일은 자기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고 한다”며 “늦었지만 우리들 가슴에 대못을 뽑아주고, 특별법을 통과시켜 잘못된 역사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바로잡아 일등국가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영희 회장은 “내년에는 이 골짝에 위령탑을 세워 떳떳하게 원혼들을 모시고 제사를 모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합동위령제 참석자들이 정부와 국회에 사죄와 진상조사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류규하 대구시의회 의장은 “10월 항쟁과 국민보도연맹, 대구형무소 사건으로 무고하게 돌아가신 민간인 희생자 영령 앞에 머리 숙여 추모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민간인 희생자의 명예를 되살려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이루고, 민주국가를 만들어 영령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재경 자치행정국장이 권영진 대구시장 대신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했고, 김부겸 의원을 대신해 참석한 황재언 사무국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끝으로 참가자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가에 의해 불법적으로 저질러진 반인륜적 집단학살에 대한 즉각 사죄 ▲유가족에게 배보상과 유해발굴, 지역단위 추모 공원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미신청 유족을 위한 조사 기관 연장과 미해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제2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역사교과서 수정과 반전, 평화, 인권교육 강화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0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10.1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2009년 대구사건관련자 및 대구보도연맹관련자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지난해 7월 27일 ‘10월 항쟁 및 민간인 희생과 위령 사업 등에 관한 조례’가 대구시의회에서 통과했다.

또, 올해 2월 24일 강석호 의원(자유한국당) 등 국회의원 18명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3월 9일 이개호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11명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기본법안’을 발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