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우리가 맞고 너희는 틀리다 /김수상

18:27

우리가 맞고 너희는 틀리다

김수상

이장님은 마을 방송으로 말했다
“경찰들은 들어라, 소성리는 사드가 들어온 4월 26일 이후로는 법이 없어진 동네다”
맞는 말이다
시원한 말이다
법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무력경찰을 동원해
소성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양들을 보호해야할 양치기 개가 양들을 뜯어먹고 있다
그런 개는 이제 필요 없다

할매들이 말했다
마을회관 앞 도로의 탁자 하나를 지키려고
유월 땡볕에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할매들이 말했다
“이제는 밥 차도 들여보내지 말거라!”
나만 보면 맨날 밥 먹고 가라던 금연 할매가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저놈들에게는 밥도 주지마라고 할까
탁자 하나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면
국가는 21만평에 이르는 금쪽같은 우리 땅을
불법으로 미국에게 양도했다
양도한 것도 모자라서 불법으로 폭력으로
사드를 기습 전개했다
누구의 죄가 더 막중한가
미군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는
롯데골프장의 잔디도 알고 있다

하루 종일을 탁자 하나 때문에 경찰들과 싸운 것도 억울한데
길바닥에서 저녁 한 끼를 때우려는데
이건 또 어디에서 나타난 미국의 개들인가
소성리 길가에 성조기를 흔들며
서북청년단이 나타났다
마을 어른들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거침없이 “빨갱이 새끼!”라고 했고
길바닥에서 늦은 저녁을 드시는 할매들을 보고
“놀고 자빠졌네!”라고 했다
정말 서북쪽에서 왔는지
아니면 어느 정신없는 우주에서 왔는지 모를
그들의 한심한 사과를 결국 받아내긴 했지만
말은 화살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박혔다

억울하고 억울하다
우리도 엑스밴더 레이더처럼 웅웅 울고 싶다
우리의 땅과 하늘과 바람과 별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우리의 논밭으로 가는 길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빨갱이 새끼, 라니
놀고 자빠졌네, 라니
정권이 바뀌면 우리를 좀 안아줄 것 같았는데,
정신없는 나라를 대신해 싸워준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넬 줄 알았는데,
겨우 하는 짓이 탁자 하나 파라솔 하나를 철거하겠다고
소성리를 에워싸고
야윈 할매들을 염천의 길가로 내몰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서북청년단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성조기를 성주 땅에 흔들며 돌아다니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를 믿어야 한다
믿을 건 마을회관의 밥솥과 국밥과 컵라면이다
힘내서 우리는 우리의 빼앗긴 땅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우리의 빼앗긴 봄을 찾아와야만 한다
할매들의 반팔 만세가 옳았고
할매들이 길가에 누워 길을 막는 자세가 옳았다
달마산 산길에 자꾸 새겨지는 우리들의 발자국이 옳았다
사드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나는 날이면
달마산 꼭대기에 올라 골프장을 향해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그래야 맞다
그래야 이긴다

고철 사드의 아가리에 평화의 깃발을 꽂아주어야 한다
고철 사드의 아가리에 평등의 깃발을 꽂아주어야 한다
고철 사드의 아가리에 소성리 논둑에 핀 꽃들을 꽂아주어야 한다

우리가 골프장을 접수해서 골프공처럼 날려 보내자
저들의 거짓과
저들의 폭력과
저들의 전쟁과
저들의 야만을
우아한 평화의 자세로 태평양 건너 미국 땅까지 날려 보내자

우리가 맞고 너희는 틀리다
사드는 가고 평화여 오라!
전쟁은 가고 평화는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