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혁의 야매독서노트] (6) 11월, 뜨거운 겨울 현장의 기록들

11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16, 삶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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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3:19 | 최종 업데이트 2017-01-12 13:19

흔히들 20세기 세계 3대 르포 저술로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를 뽑는다. 각각 중국혁명, 러시아 혁명,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것으로 딱딱한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문학적 상상력 보다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의 부당한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워나가는 현장의 뜨거움을 담아낸 기록이다.

지난 2016년 추위가 시작될 무렵, 한국사회는 역사의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JTBC가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가지고 폭로보도를 연달아 방송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슬금슬금 눈덩이처럼 쌓이고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사태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개헌카드를 꺼내자 시민들은 공화국을 위한 호헌을 위해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국은 요동쳤고,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우리가 설마 했던, ‘아무리 이 나라가 썩어빠져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참아왔던 모른 척했던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광장으로 거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엄했다. 글로만 그리고 말로만 회자되는 주권자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이 뜨거운 열기를 누군가가 기록하기를 바랐다.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동영상, 글자 등 우리가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목소리와 행동의 순간을 남겨 다시는 저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못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삶창’에서 <11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발간됐고, 우연히 손에 쥐었다. 이 책의 미덕은 단지 촛불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 여성, 농민 등 우리 사회가 억압했고 애써 외면했던 이들이 촛불에 참여한 계기와 촛불 속에서 느꼈던 감정 등을 소소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단 하나의 민주주의가 아닌 수많은 민주주의들의 민주주의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남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 사회운동과 혁명의 기록들은 주로 그 와중에도 중심의 기록을 남기는 데 반해 이 책은 제주와 전남, 대구 등 그동안 민주주의 역사에서 소외(?)당했던 지역의 목소리와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당장 대구만 생각해보자.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저항 이후 4.19에 이르는 동안 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1980년 서울역에서 10만여 명의 학생 시위대가 철수하고 광주가 고립되기 시작했을 때 대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책이 말해주던가?

87년 초 겨울 대학생이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고, 6월 9일 또 한 명의 대학생이 최루탄에 쓰러져 마침내 5공화국이 그 역사를 다하게 된 6월 항쟁의 기억들도 죄다 서울의 동영상, 사진, 참가자들의 기억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그때 대구에서도 항쟁이 있었지만, 전문적인 학술 서적을 접하지 않는 보통 시민의 기억에서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지역에서의 목소리를 하나둘씩 모아서 기록하고 있다. 우리도 싸우고 있다.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조선의 모스크바까지. 모두 다 그동안의 적폐와 싸우고 있음을, 서울에서만 싸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에만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구의 도시’ 대구에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동성로에도 시민들이 있음을. 처음 촛불을 들고나온 제주시민에서부터 200여 일에 이르는 동안 사드 배치 철회 촛불을 든 성주 군민들까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촛불은 단지 누군가의 말처럼 바람불면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바람이 불면 들불이 되는 촛불임을 이 책은 당당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저 들불이 들판을 태우고 나면 그 자양분으로 새로운 생명과 가능성들이 만개할 듯한 기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책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남는다. 대구 촛불을 기록하는 작업을 전개할 수는 없을까? 오늘 대구에서 일어난 기적과 같은 촛불은 참가자들 마음에도 세세히 기록되겠지만, 후일의 역사를 위해서, 우리의 자부심을 위해서도 기록물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 딸에게 내가 저기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기록의 미덕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었다. 기록은 기록이 아니라 약자가, 소수자가, 저항하는 이들의 실천이다. 지배자들의 기록이 남기 좋은 역사에서 우리의 기록을 당당한 기억을 남겼으면 좋겠다. 그 당당한 기억 중 하나가 바로 <11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당신의 기록, 우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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