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자갈마당’ 폐쇄 집담회 열려…여성종사자·토지주, “왜 당사자만 빼놓나”

자갈마당 토지주, "착취 없다"며 자체 재개발 노력 강조
여성 종사자들 여성단체에 반감..."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라"
대구여성인권센터, "뒤섞일 수 있는 것, 더디지만 많은 변화"

23:05

대구시가 주최한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 폐쇄 집담회에 참석한 토지주, 여성 종사자는 자갈마당 폐쇄와 개발 계획에 당사자가 빠졌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21일 오후 3시 대구시 시정혁신추진위원회(위원장 김승수 대구시 행정부시장, 김영철 계명대 교수)는 대구시 중구 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 폐쇄 촉구를 위한 집담회’를 열었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주석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갈마당의 역사와 앞으로 정비 방향에 대해 2개월 동안 연구한 자료를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자갈마당에 대해 “일제시대 여성 착취 방식이 명칭만 바뀐 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낀 채 참석한 한 여성은 “우리도 다 직업으로 하는 겁니다”라고 소리쳤고, 다른 여성은 “10년 동안 가만히 있다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소리쳤다. 또 다른 남성은 “도시 환경 개발이면 그 이야기만 하면 되지, 누가 착취를 했다고 난리냐”고 항의했다. 모두 자갈마당 종사자들이었다.

▲주제 발표 중 항의하는 자갈마당 토지주

본인을 ‘자갈마당 지주’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자갈마당 당사자는 한 명도 초청 안 하고, 지금 와서 옛날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터무니 없는 말을 하면 우리가 뭐라고 생각하겠냐”며 “현실과 천지 차이다. 착취를 누가 하고 있나. 현재 자갈마당 지주들이 자체적으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왜 호도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10여 분 동안 소란이 이어지는 속에서 김 연구위원은 발표를 마쳤다. 곧 이어진 토론에서도 자갈마당 종사자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종사자들의 계속된 반발과 애초에 토론 주제가 정해지지 않은 탓에 토론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토론자로 나선 신은화 교수(경북대 철학과)가 마약, 안락사 등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예로 들어 “자유 시민과 노예의 차이는 신체에 대한 배타적 점령권이다. 타인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그 결정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노예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자, 자갈마당 종사자들은 “노예라는 표현은 너무 심하십니다”, “노예라는 말 빼세요”, “언제부터 시민들이 우리 신경 썼다고 그럽니까”, “비유 자체가 잘못됐잖아요”라며 항의했다.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가 토론을 시작하자 항의는 더 거세졌다. 신박진영 대표가 첫 마디를 떼자, 여성 종사자 회장인 A 씨는 앞으로 나와 “여성단체는 필요 없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돈 받아준다 해놓고 어디다 팔아먹었어”라며 소리쳤다.

신박진영 대표는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토론을 이어갔다. 신박진영 대표는 “영등포, 청량리 집결지 개발로 집결지가 없어졌건, 지속했건 여성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건물주나 토지주들의 이익, 공권력이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만 이야기됐다”며 “여성들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건 개발 때문이었지만, 평생 그곳에 계실 수 있는 분은 없다. 100년 전, 50년 전 그 여성들은 어디 계실까.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말씀하시지만, 그 당시와 달라진 게 저절로 됐나. 이 부분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토론이 시작되자 지주라고 밝힌 남성이 첫 발언에 나섰다. 그는 “우리가 섭섭한 건 이런 토론회를 하는데 우리한테 초청이 없었다. 당사자 한 명도 없이 토론하는 자체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며 “또 옛날 인식을 가지고 착취 이야기를 하니 굉장히 감정이 상했다. 성매매 폐쇄와 도시 정비가 어떻게 같나. 우리는 자체적으로 (재개발) 하려고 노력하고, 오늘도 노숙자 무료 급식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플로어 가장 앞자리에 앉아 계속 항의하던 여성 종사자도 발언에 나섰다. 자갈마당에서 15년 일했다는 이 여성은 “땅은 없지만, 저금도 해놨고 작은 방도 있다. 못 배웠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은 다 직업이 있는 거다. 신경을 많이 써서 지금 살도 많이 빠졌다”며 “막말로 법적으로 안 되는 거면 확 밀어 버리지 우리 의견도 안 들으면서 이런 거 할 필요 없다. 자꾸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이 끝나자 함께 온 자갈마당 종사자 10여 명은 우르르 자리를 떠났다. 이 여성은 “우리도 퇴근해야 해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우리도 무식한 사람이 아닌데, 죄송합니다”며 밖으로 나갔다.

사회를 맡은 윤종화 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대표는 “애초에 이해 당사자들을 다 초청하려고 했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해서 좀 바꾼 것이 아쉽다”며 “이후에 어떻게 이해 당사자들과 대화해 나갈지 방법을 고민해주면 좋겠다”고 장내를 정리했다.

신박진영 대표는 “업주들은 개발의 당당한 주체라는 걸 이야기했다. 여성 분들은 업주와 함께 있어야 본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본인의 생계가 절박한 게 현실이다. 그런 입장을 오해 없이 알아주셨으면 한다”며 “아직 더디긴 하지만 정말 많은 변화다. 이제는 우리와 뒤섞일 수 있다는 거다. 그들이 격리된 채 통제받는 게 아니라 다 드러나야 한다. 100년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100년 전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시는 자갈마당 출입구에 CCTV 추가 설치, LED 경고문 설치, 자갈마당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사업 등으로 자갈마당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