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구미문화원 폭파 누명 사건 재심하라”…검찰 항고 기각

누명으로 불법 구금, 고문당한 피해자 명예회복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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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19:56 | 최종 업데이트 2017-08-22 19:59

1983년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 주동자라는 누명으로 불법 구금되고 고문까지 받은 민간인들의 명예 회복 길이 다시 열렸다. 구금된 민간인들은 폭파 사건과 무관한 국가보안법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지냈다. 2016년 3월, 당시 판결에 대한 재심을 법원이 결정했는데,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고했다. 2017년 8월,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기각하며, 재심의 길이 열렸다.

18일 대구지방법원 제5형사부(부장판사 김경대)는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검찰은 항고 이유로 1983년 사건 당시 수사과정에서의 고문 등 피해는 ▲피해자(함종호(61), 손호만(59), 박종덕(58) 씨 등 5명)들의 객관적 증거가 없는 추정에 불과하며 ▲피해자들이 당시 유죄 판결 이후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 항소를 하지 않아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문은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 등의 직무에 관한 범죄가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증명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5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 심리를 마치고 나온 이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원판결 증거물 등이 확정판결에 의해 위·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 등 기존 판결의 증거 등이 허위인 것으로 드러난 경우 ▲판결과 관련된 법관, 수사기관 등의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로 밝혀진 경우 재심을 할 수 있다. 법관, 검사, 사법경찰관 등의 범죄를 이유로 재심을 청구한 경우,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을 때 그 사실을 증명해야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원심판결에서는 피해자들의 수사 도중 고문 등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 바 있다. 원심 재판부(대구지방법원 제2형사단독)는 피해자들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으며 고문 전문가로 알려진 이근안 씨가 수사에 관여한 사실에서 고문 행위가 인정된다고 봤다.

또, 피해자 박종덕 씨의 경우 1983년 9월 22일 대구미문화원 사건 발생▷ 9월 30일 박 씨의 자취방 압수수색▷ 10월 8일 박 씨에 대한 진술조서를 받은 후 10월 26일 구속영장이 집행된 점에서, 구속영장이 집행되기도 전에 불법구금된 점을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항고심 재판부도 원심 재판부의 판단을 대부분 수용했다.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 등의 직무에 관한 범죄가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1983년을 기준으로 불법체포·감금죄, 폭행·가혹행위죄의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라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을 때는 확정판결을 대신할 수 있을 만한 증명을 할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확정판결을 대신할 수 있을 만한 증명에 해당한다고 보고,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항고심 재판부의 결정에 검찰이 재항고 하지 않는다면 재심 재판이 열린다. 재심 재판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불법구금과 가혹 행위를 밝히는 것은 물론, 과거 피해자들의 유죄 판결 사유였던 ‘시위예비음모’, ‘반국가단체 고무·찬양·동조’,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대해서도 다시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피해자 측 김진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검찰은 명백하고 객관적 증거가 없으니 항고한 것이겠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있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적어도 불법 구금 사실은 충분히 증명됐다. 피고인의 상대방이기도 하지만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있으면 피고인을 위해서 싸워야하는 공익의 대변자로서의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피해자들은 1983년 9월 22일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미문화원에 설치된 폭탄이 터진 당일 인근 식당에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원대동 대공분실로 연행됐다. 피해자들은 당시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1984년 1월, 미문화원 폭파와는 무관한 국가보안법·집시법 위반죄 등으로 실형(징역 1년 6개월~3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수사의 빌미였던 미문화원 폭파 사건은 1983년 11월 수사가 종결됐다.

대구시경찰청 수사본부는 당시 수사에 대해 "관련 혐의자나 목격자를 발견할 수 없다"며 "북괴공작원 2~3명이 직접 침투하여 폭파 후 복귀한 것으로 판단되어 더 이상 수사를 계속하더라도 성과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므로 본 사건 수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인 故우상수 씨는 2010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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