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테크놀로지와 평화는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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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수요일마다 ‘정형철의 멋진 신세계?’를 연재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테크놀로지의 폭주는 우리의 삶을 뿌리째 바꾸고 있습니다. 미래가 현재에 들어와 있고, SF가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기술산업문명이 만들어낸 기괴한 풍경 속에서 대안과 전환을 모색해 봅니다. ]

지난 9월 7일, 성주 소성리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전격 배치됐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촛불을 들고,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외쳤던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은, 결국 사드 발사대를 실은 거대한 차량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스스로 정당성과 실효성, 혹은 절차에 커다란 의문을 제기했던 사드 배치 논란은, ‘북핵 위기와 한반도 전쟁 위협’이라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안보 블랙홀에 여지없이 빨려 들어가고야 말았다.

9월 7일,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 현장

사드 배치 이후에도 위기와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북핵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의 막말 난타전이 연일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장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으르렁대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반도 주변에 전략자산 순환 배치를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전략자산이란 초정밀 전투기, 요격 미사일, 무인 공격기 등이 포함된 최첨단 공격 및 방어 무기 체계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이러한 전략자산 무기체계를 운용하려면 수십조 원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북핵 위기로 촉발된 한반도 전쟁 위협은 사실상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미국과 무기 거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핵무기 보유와 군사적 위협을 통해 자국 체제를 보장받고 인민에 대한 철권통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북한, 한반도 갈등과 위기를 동아시아 패권 장악과 무기 거래의 기회로 삼는 미국, 그 사이에서 평화 정착의 기회도, 자주적 주권 행사의 권한도 잃어가고 있는 한국. 복잡할 것 같아도 실은 이 지점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북핵 위기’라는 현상의 본질인 셈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수산업
2017년 미국 국방예산은 6,112억 달러(694조3000억 원)에 달한다.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다음 순위인 중국(2,157억 달러), 러시아(692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637억 달러), 인도(559억 달러)를 비롯한 2위부터 10위까지 9개국 국방예산을 합산한 금액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전 세계 국방비 총액의 30%를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전년도 국방예산의 10%에 달하는 540억 달러를 증액했다. 전시 상황이 아닌데도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 미사일 실험과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미사일방어체계에 필요한 예산을 대폭 늘렸다. 게다가 지난 달 18일, 미국 의회 상원 인준을 통과한 2018년 미국방예산안은, 트럼프 정부가 요청한 6400억 달러에, 상원의 추가분 600억 달러를 더해 7,000억 달러(약 792조8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올해 우리나라 정부예산(400조7000억 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렇다면 미국의 국방예산 규모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방예산은 주로 무기를 보유하고 군대를 운용하는 데 쓰인다. 날이 갈수록 고도의 기술이 적용되는 첨단무기를 확보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당연히 군수산업 자본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기에 국방예산은 필연적으로 군수산업과 관련되어 있다. 국방예산의 규모를 크게 늘렸다는 것은, 전 세계 분쟁지역에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개입이 늘어날수록 전 세계 분쟁지역은 오히려 갈등이 격화됐다. 아울러 미국이 주도한 분쟁지역 확대는 대체로 미국 군수산업의 호황으로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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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비밀이나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결코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부터 대놓고 자국 군수산업 부흥을 부르짖었다. 트럼프 정부에 월가의 금융인과 더불어 군인 출신 장성이 내각 핵심 인사로 포진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월스트리트의 가장 뜨거운 관심은 군수산업 관련 주식이었다. 집권 이후 지속해서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키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 정부에게 타국의 안위와 평화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익이다. 그 중심에 미국 군수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 군수산업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정부, 국방부, 정보기관(NSA, CIA)의 주도로 막대한 비용을 대는 금융자본, 첨단 기술의 산실인 대학 연구소, 수많은 과학 기술 인력, 관련 기업들과 노동자들이 하나의 거대한 군산복합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불리는, 막강한 위력을 지닌 이 시스템은 미국경제를 ‘전쟁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체제로 만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경제는 군산복합체 성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러한 시스템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군수산업과 테크놀로지의 유착
군수산업의 성장에는 첨단기술(high-technology) 발전이 매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군수산업은 전쟁에 사용된 기술, 즉 첨단무기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기술을 산업과 결합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초기 군수산업 발전은 2차 세계대전 시기 급격하게 발전한 첨단기술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가 밝힌 바대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간 군비와 무기 개발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막대한 공공 자금이 군수산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은 이렇게 지원된 공공 자금 지원 혜택을 받아서 별도의 연구개발 비용 투자 없이도 첨단기술을 마음껏 발전시킬 수 있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IBM이 이후 어떻게 첨단 기술을 보유한 컴퓨터 기업으로 거듭났는지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Andrew Rusk

군사적 목적으로 추진된 각종 방위산업 프로젝트는 그럴싸한 외피를 걷어내면, 결국 첨단기술 산업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수단이 됐다. 촘스키는 레이건 시대에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여 발표한 전략방위구상,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일명 스타워즈 계획)가 근본적으로는 첨단기술 산업을 보조하려는 방편이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무도 이걸 방위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레이건은 그걸 믿었는지 모르지만, 제정신이 박힌 사람 치고 SDI를 군사시스템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최신 소프트웨어, 복잡한 컴퓨터 시스템, 5세대 컴퓨터, 레이저 등 차세대 하이테크놀로지의 개발을 보조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국가 안보와 무기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첨단기술 산업을 보조하고 지원한 결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이후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다. 군사용 목적의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공공 자금 투입은 국민의 눈을 속이고 기업에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민중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군수산업과 기술기업의 이익을 확보해 주려는 방편에 불과했다. 미국의 무기 경쟁은 자국 민중의 통제, 제국의 유지, 경제활성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 디지털 혁명을 가져온 주요 기술들이 대체로 이러한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은 독일군 암호해독이 필요했던 2차 세계대전에서 자신이 고안한 기술을 적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후 컴퓨터는 군사기술 발전에 적용되고 응용되는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적 발전을 가져온 인터넷은 미 국방부가 안정적인 군사용 컴퓨터 통신망 구축을 위해 개발했던 아르파넷(ARPAnet)에서 비롯됐다. 요즘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는 위치확인시스템(GPS)은 군사위성기술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렇듯 첨단 테크놀로지는 군사적 목적의 기술 개발과 뗄 수 없는 관련을 맺으며 발전해 왔다. 군사적 목적을 위한 기술이란 애초부터 인간적 사용 범위를 벗어난 극단적 기술을 의미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필요한 기술이 결코 아니다. 적대적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특수한 목적의 기술이 이제는 우리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 이렇게 들어와 있는 첨단기술 대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자율적 공생의 도구와는 한참 거리가 먼 대상들이다.

테크놀로지와 평화는 공존할 수 있는가?
지난 8월,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 딥마인드 테크놀로지의 무스타파 술레이먼 등 전 세계 26개국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 전문가 116명은 UN에 공동서한을 보내 자동살상무기, 이른바 ‘킬러 로봇’을 금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킬러 로봇’이 전쟁에 사용될 경우 제3세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동화 무기 개발 경쟁으로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빠질 것으로 예측하면서, “치명적인 자동화 무기들은 일단 개발되면 이전보다 더 큰 규모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무력 갈등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킬러 로봇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다시 닫기가 어렵다”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영국의 무인기 ‘타라니스 스텔스 드론’, 미국 해군의 자율운항 무인 함정 ‘시 헌터’, 보잉의 무인 잠수정 ‘에코 보이저’, 러시아의 무인 탱크 ‘MK-25’, 그리고 삼성의 ‘센트리 건 로봇’ 등을 금지해야 하는 ‘킬러 로봇’의 사례로 들었다.

▲영국의 무인전투기 타라니스 스텔스 드론(Taranis stealth drone) Copyright © 2017 BAE Systems. All rights reserved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킬러 로봇’ 개발은 인류사회에 심각한 재앙을 가져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이미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와 하버드 로스쿨 인권연구소는 함께 펴낸 보고서를 통해 ‘킬러 로봇’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껏 국제사회는 그 어떤 합의와 규약도 마련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규제의 움직임은 극히 미미한데, 이미 상당한 속도로 개발이 진행 중이며, 상용화 기술 단계에 접어들었음이 여기저기서 확인되고 있다. AI의 위험성을 가장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엘론 머스크는, 북한의 핵보다 AI가 더 위협적이라며, 3차 세계대전은 AI가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자동살상무기인 ‘킬러 로봇’은, 테크놀로지가 인간에 의해 안전하게 통제될 수 있다는 기술진보론자들의 낙관적 주장을 여지없이 반박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기술발전 속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킬러 로봇’ 상용화가 이루어진다면 SF에서나 볼 수 있었던 참혹한 광경이 인류사회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앞서 UN에 서한을 보내 ‘킬러 로봇’이 가져올 재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로 인공지능과 로봇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기술이 얼마나 위험하고 가공할 만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맹목적 신봉자들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기술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며, 더 나은 기술 발전을 통한 문제 해결 가능성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첨단기술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들과 유사한 생각에 젖어 있다. 근대기술문명 전체가 하나의 ‘거대 기계’와 같다고 통찰한 루이스 멈퍼드의 지적처럼, 우리는 기계화된 세계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면서 유기체적 생명의 감각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존엄 혹은 자율적 존재로서의 가치는 소멸하고, 편의와 안락한 사슬에 묶인 채 비천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테크놀로지를 대신한 에콜로지, 그리고 평화의 가능성
재임 중 어느 대통령보다도 많은 핵무기를 개발했고 군수산업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했던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1953~1961)은 퇴임 직전 군수산업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미국은 국내 기업의 순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매년 군사 안보 분야에 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군수산업의 막대한 영향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스스로 국방의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나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이익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할 가능성은 결코 없다고 지적하며, “오직 깨어 있고 총명한 시민만이 군산복합체를 몰아내고 안보와 자유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수단과 목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우리사회, 나아가 인류사회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평화적 실천뿐이다. 아울러 평화를 위협하는 테크놀로지의 폭주를 막아내는 것도 결국 기술 개발과 사용에 관한 시민 참여를 확보하는 것과 이를 통한 사회적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권력을 쥐고 대다수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살상무기의 버튼을 회수해야 한다. 아이젠하워가 말한 바처럼 “오직 깨어 있고 총명한 시민”만이, 이제는 상시적 공포가 되어버린 전쟁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근대산업문명은 필연적으로 테크놀로지의 극단적 발전을 추동해 왔다. 달리 말하면 테크놀로지의 극단적 발전은 근대산업문명을 가장 강력하게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근대산업문명의 절대적 목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종류의 테크놀로지도 용인됐다. 그것이 생명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거나 참혹한 폭력을 수반하는 경우에도 말이다.

테크놀로지는 태생적으로 반생명적이다. 테크놀로지에 인간과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지 못한다면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압도하는 세계에서 기계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정작 기계인 줄도 모르고, 인간이나 생명인 줄 착각하면서 말이다.

평화는 생명의 문화에서 꽃핀다. 테크놀로지가 인간과 자연의 범주를 극단적으로 넘어설 때 평화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평화는 결코 관념적 이상도 낭만적 구호도 아니다. 평화는 처절한 생존 투쟁이며 유예할 수 없는 희망이다.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세상을 뒤엎고 에콜로지의 세계로 귀환하는 길만이 평화를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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